안보 이슈보다 탄핵 이슈가 관심사… 여권에 큰 선물 되지 못해
다시 북풍이 부는 것일까. 김정남(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피살사건이 2월 14일 말레이시아에서 터지자 정치권이 부산해졌다. 2월 12일 북한의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도 ‘신북풍 정국’에 한몫을 하고 있다. 조기 대선국면에서 또다시 안보 이슈가 부각될 가능성이 커졌다. 16일 국회에서는 안보 관련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마련한 토론회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역임한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안보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안희정 우클릭, 안보 이슈서 이득 챙겨
이날 참석한 바른정당 의원들의 주요 타깃은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었지만, 정작 공세는 다른 한 곳으로 향했다. 정병국 대표는 “선두를 달리는 대선주자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판의 대상은 대선정국에서 대세를 차지한 문재인 민주당 후보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영우 의원(국회 국방위원장)은 “이렇게 위기인데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사드를 배치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논란을 벌이는 자체가 대북정책의 실패”라고 말했다. 또 한 명의 토론자인 하태경 의원은 “문재인 후보는 대선 후 김정은을 만난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김정남 피살사건을 물어볼 것인가”라면서 “문 후보의 (안보 관련) 정책은 근시안적이고 낭만적”이라고 비판했다. 하 의원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반반’이라고 했는데, 문 후보의 안보관이야말로 ‘반반’”이라고 말했다.
2월 1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김정남 사망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바른정당은 이번과 같은 안보위기 국면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가 결연하다. 바른정당으로서는 당 지지율 침체와 당 대선주자 지지율 침체를 돌파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참석자들은 정치권에서 사드 배치를 맨처음 주장했던 유승민 의원을 치켜올렸다. 김영우 의원은 “안보에 관한 한 선견지명이 있다”며 칭찬했다. 토론회에서 안보 이슈에 관한 한 바른정당이 강하다는 것을 자찬했다. 하태경 의원은 “바른정당은 지지율이 뜨지 않아도 원칙을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고, 유승민 의원은 “북핵위기 앞에서 바른정당은 다른 정당보다 바른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른정당의 지지율은 꿈적할 줄 모르고 있다. 한국갤럽의 2월 셋째 주 정례조사(2월 14∼16일)에서 바른정당 지지율은 6%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의 44%에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고, 국민의당 12%,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 11%에도 못미치고 있다. 대선주자 지지율은 더 초라하다. 유승민 의원은 2%에 그쳤고,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보수의 개혁을 주장하면서 안보에 관한 한 굳건한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겠다는 바른정당이 안보정국에도 불구하고 뜨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민주당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사드 배치에 대해 결정은 잘못됐으나 한·미 군사동맹의 합의를 깰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이미 오래전 안보에 관한 한 우클릭한 상태다. 민주당 내부에 대안이 있는 상황에서 안보불안이 바로 바른정당의 지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지지도 29%에서 32%로 상승
남 지사의 대선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정두언 전 의원은 15일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서 바른정당의 지지율 침체에 대해 “바른정당이 갈 길을 안희정이 가고 있다”고 표현했다.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정 전 의원의 표현이 하나둘씩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안희정 지사는 2월 셋째 주 갤럽조사에서 22%로, 처음으로 20% 고개를 넘어섰다. 다른 당 후보를 포함한 전체 대선국면에서는 처음으로 문재인 후보와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반대로 문재인 후보 측은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보수진영의 공격을 받고 있다. ‘신북풍 정국’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포문이 대세론의 중심에 선 문재인 후보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문 후보는 안보 이슈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문 후보는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외교자문그룹 ‘국민아그레망’ 출범식을 열고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안보관에 대한 보수 측 공세를 저지하고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문 후보는 이날 “사드 배치에 대한 최종 결정을 다음 정부로 넘겨준다면 그 문제를 외교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복안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 후보 측으로서는 보수진영이 유독 문 후보의 안보관에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안 지사의 안보관에는 다소 후하다는 점이 불만스럽다. 한 친문(親文) 의원은 “안 지사의 개혁적 마인드에 대해 친문 쪽에서도 공감을 하는 바이지만 사드 배치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는 왜 저런 주장을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과연 자신의 생각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2월 16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교자문그룹 '국민 아그레망' 발족식 행사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안 지사의 우클릭이 안보 이슈 부각 국면에서 어느 정도 이득을 챙기고 있는 사이, 국민의당도 바른정당처럼 큰 재미를 못 보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지난해 총선 당시 중도를 표방하면서 안보에서 보수를 견지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지난해 사드 논란 때 사드 배치 반대를 주장했다. 안 후보는 최근 한·미 간 사드 배치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때문에 국민의당은 당론 변경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안 후보 측은 사드 반대라는 당론의 변경을 바라고 있지만 박지원 대표를 비롯한 대다수 호남 출신 의원들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때문에 당론 변경에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안철수 후보는 사드 논란이 촉발될 당시 처음에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이라면서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후보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곰곰이 살폈으면 처음부터 사드 불가피론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월 중순의 때늦은 북풍이 야권에는 큰 피해를 주지 못하고, 여권에는 큰 선물이 되지 못한 이유는 탄핵 판결을 앞두고 있는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안보 이슈보다 탄핵 이슈가 여전히 국민들에게는 더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갤럽의 2월 셋째 주 조사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전주의 29%에서 32%로 3%포인트 상승했고, 안희정 지사는 19%에서 22%로 지지율이 올랐다. 반면 보수 쪽에서 유일하게 두 자릿수 지지율을 자랑하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9%로,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시대정신연구소 엄경영 대표는 “지금은 정권교체 욕구가 워낙 커서 아직까지 안보 이슈는 유권자들의 눈에 안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탄핵 판결 때까지는 ‘야권 대 박근혜 대통령’의 대치 구도로 가기 때문에 웬만한 안보 이슈가 먹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동안 탄핵국면에서 ‘공범자’라는 비판을 받아오던 보수층에는 새롭게 등장한 안보 이슈가 심상치 않게 느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한 친박 의원은 “물론 탄핵 여부가 국민들의 중요한 관심사이겠으나, 지금의 안보위기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위기를 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나 현실적으로 있는 위기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6일 천영우 이사장의 국회 긴급토론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발언이 나왔다. 천 이사장은 “안보불감증이 전설적인 수준”이라고 표현하면서 “해난사고로 몇백명 죽으면 큰일인데, 몇만명의 생명이 위험에 빠질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괜찮다고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북핵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보수 측 주장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2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초청 긴급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유 의원, 천 이사장. / 연합뉴스
보수세력은 집요한 공세 펼칠 듯
보수진영에서는 경북 성주에 설치하기로 한 사드를 다른 지역에도 더 추가해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의 한 친박 의원은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패트리엇미사일로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사드가 이를 막을 수 있으므로 추가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른정당도 자유한국당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김정남 피살사건으로 촉발된 안보정국은 대선정국에서 그 자체로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남 피살사건이 국내 대선에 영향을 끼칠 만큼의 초대형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 김정남 피살은 이미 북한이 오래전부터 계획해 왔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북한이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런 일을 벌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장 연구원은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라든지 김정남 피살사건 같은 경우는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을 과장하거나 위협론을 확대해 국내 정국에 이용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탄핵국면이 다소 늘어지면서 안보 이슈가 야권을 위축시키거나 우클릭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안 자체가 북풍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김 의원은 “김정남 피살사건에는 야당의 책임이 전혀 없기 때문에 보수 쪽에서 북풍으로 몰고갈 여지가 없다”면서 “다만 야권의 대권주자가 이런 국면에서 말 실수를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 대선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대선 때까지 새로운 북풍정국이 초래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엄경영 대표는 “북한의 김정은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예측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면서 “양측이 강대강으로 갈등하게 되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우려가 있어 대선에서 안보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대선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 대선주자를 둘러싸고 안보관 공방이 있을 수 있다. 리서치뷰 안일원 대표는 “북풍은 여권이 돌파구로 삼을 수 있으나 이전 선거에서 이미 유권자들에게 학습효과를 가져와 유권자들은 둔감해진 상태”라면서 “하지만 대선정국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보수 쪽이 끊임없이 안보 프레임을 만들어 집요한 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보 이슈는 대부분 보수진영에게는 유리하고, 개혁·진보진영에게는 불리한 국면을 만든다. 하지만 보수층과 개혁·진보층은 뚜렷한 지지 후보가 있게 마련이어서 전체 국면에서는 결집도 양상만 변화시킬 뿐 구도에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중도층은 다르다. 중도층은 어떤 이슈가 부각되느냐에 따라 보수성향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도 하고, 개혁·진보성향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도 한다. 이런 중도층의 선택 때문에 복지 관련 이슈가 뜰 때면 개혁·진보성향의 후보가 유리하고, 단순한 안보 관련 이슈가 뜰 때면 보수성향의 후보가 유리한 예가 많다. 다만 안보 이슈는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피격사건이 터지고 여권에서 이를 이용하려다 오히려 선거에서 패배한 것처럼 역풍의 가능성도 존재하고 있다. 어떻든 안보 이슈는 중도층의 표심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중도 전략’이 관심을 끌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대연정 전략이 대표적이다. 안 지사는 여기에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기존의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는 중도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런 이유로 갤럽의 2월 셋째 주 조사에서 안 지사는 국민의당 지지자에게서 25%의 지지율을 얻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46%에는 못 미치지만 의미가 있는 수치다. 바른정당 지지자 중에서는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가 24%인 데 비해 안 지사는 27%로 1위를 차지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그 당의 후보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는 대선후보가 된 것이다. 시대정신연구소 엄경영 대표는 “안 지사는 50대, 그리고 충청·PK(부산·경남)·경기·인천 등지에서 폭넓게 포진된 중도층을 흡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 지사의 중도 전략이 주효하면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역시 중도층 소구 전략을 펼치고 나섰다. 사드 배치 반대에서 사드 배치 불가피론으로 돌아서는 등 중도층을 향해 손을 적극적으로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역시 보수의 개혁을 주장하며 중도층에 구애를 펼치고 있다. 엄 대표는 “보수 측에서는 탄핵 공동책임론 때문에 중도층을 향하더라도 지지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리서치뷰의 안일원 대표는 “보통 대선에서 당내 경선에서는 집토끼, 즉 전통적인 지지층을 잡는 전략을 쓰고, 후보가 확정되면 중도층을 겨냥한 비전을 제시한다”면서 “하지만 이번 조기 대선국면에서는 탄핵이라는 이슈 때문에 중도 확장 전략이 일찍 시작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대선주자와 상관없이 당 자체적으로 이미 중도층을 대거 흡수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과정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지지계층인 개혁·진보층 외에도 중도층이 대거 민주당을 지지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되던 지난해 가을만 해도 20%대에 이르던 당 지지율이 갤럽의 3월 셋째 주 조사에서 44%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20%에 이르는 중도층이 대거 민주당 지지층으로 흡수됐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의 지지율이 이미 45%에 이르고 있다”면서 “당으로서는 중도층의 흡수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 모집으로 중도층의 대거 흡수를 기대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 경선에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할 수 있다면 역선택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면서 “민주당 경선이 곧 대선 본선이 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경선이 뜨거운 관심을 모으면서 선거인단이 200만명을 넘길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다른 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국민경선으로 이뤄지더라도 100만명을 넘길 수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일원 대표는 “민주당 경선이 치열하게 진행되면 중도 우클릭 이슈가 상당히 소멸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민경선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비율적으로 보면 중도층보다 민주당 지지강도가 높은 투표자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겨냥한 선거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