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선거 때마다 사석에서 캠프 관계자들로부터 ‘선관위 단속을 피하는 자신만의 노하우’에 대한 자랑을 듣는다. 정확히 말하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법이다. 선거운동사무소에서 젓가락을 사용하는 음식을 대접하면 향응 제공에 해당하지만, 손으로 집어 먹는 것은 합법이다. 사탕은 되지만 도시락은 안 된다. 김밥은? 젓가락을 제공하지 않고 손으로 집어먹게 하면 합법이다.
‘공진단’ 이야기도 2010년쯤 재·보궐선거 때 들었다. 녹용, 산수유, 당귀, 사향 등의 재료로 만든 공진단은 한 알에 수만~10여만원 한다. 한 박스에 몇십만~100만원이 넘는다. 캠프 사무실 책상에 흔히 박스째로 굴러다닌다고 한다. 이런 공진단은 누가 사서 캠프 사무실에 놓는 것일까.
2012년 대선 당시 충북 제천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박근혜 후보가 손에 선물받은 공진단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주 “특정 유력후보의 불법 대선 사조직으로 의심된다”는 제보를 받고 기자가 방문한 정치권 주변 인사들 중심의 ‘시민단체’ 사무실이나 문건에는 ‘특정 유력후보’의 이름이 언급되진 않았다. 다만 ‘좋은 대통령 만들기’가 목표라는 구호가 걸려 있었고, 그 ‘좋은 대통령’이 누군가는 단체에 참여하는 사람들 각각 다 다르다고 했다. 애초의 제보 내용 및 관련 문자에는 특정 유력 대권주자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긴 하지만 취재를 해보니 모인 사람들이 각각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단체의 계획은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야권이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하면 그때부터 단체 내 핵심 인사의 ‘결단’에 따라 후보 지지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비선캠프는 아니지만, 전국적으로 일정한 세를 형성해서 특정 후보와 집권 이후 지분을 두고 거래를 하겠다는 구상이다. 핵심 관계자에게 “대선 이후의 논공행상을 바라고 하는 활동이냐”고 물어보니 “먼저 요구하진 않겠지만 자리를 준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혹시 잘못 알아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역시 돌아오는 답은 엇비슷했다.
선거판을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들은 이런 단체들을 선거를 앞두고 창궐하는 ‘정치 이권단체’라고 했다. 구태라고 하지만 또 쉽게 근절되지도 않는다. 정치권에 줄을 대서 뚝딱 이권을 챙기는 데 성공한 경우가 너무 흔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 구태를 끝판왕 급으로 드러낸 것이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이다. 탄핵 이후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꿀까를 두고 바닥부터 되짚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