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즐겨 다룬다. <초속 5센티미터>는 맺어지지 않는 첫사랑을 다뤘다. <언어의 정원>도 끝내 이뤄지지 않는 첫사랑을 담고 있다. 마코토 감독에게 사랑이란 절절한 그리움을 남기는 행위다. 그리워하지만 아니 만나야 좋을 사람도 있다고 말한 피천득의 <인연>과 닮은 구석이 있다.
신작 <너의 이름은.>은 그간 작품과 다르다. 새드엔딩이 아니라 해피엔딩이다. 주인공은 시골 이모토리에 사는 명랑소녀 미츠하와 도쿄에 사는 미소년 타키, 두 사람이다. 미츠하는 언제부터인가 꿈속에서 타키가 된다. 반대로 타키는 꿈속에서 미츠하가 된다. 꿈을 깨면 두 사람은 꿈속에서 상대방으로 살던 기억을 잊는다. 그런데 꿈을 꿨던 만큼의 시간 동안 자신도 모르는 일들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된다. 알고보니 꿈을 꾸는 동안 두 사람의 몸이 바뀌고, 상대는 바뀐 몸상태로 여러 가지 사고들을 쳐놨다. 뒤죽박죽된 생활에 당황하던 두 사람은 서서히 상대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어느 날 두 사람의 ‘체인지’가 중단된다. 타키는 미츠하가 3년 전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년 전 1200년 만에 찾아오는 혜성이 폭죽처럼 터지며 이모토리를 덮쳤다. 타키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츠하를 찾아 떠난다.
다른 시간대를 사는 두 사람이지만 둘은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그 상징이 타키가 손목에 찬 매듭끈(무스비)이다. 미츠하가 타키에는 준 선물이다. 일본에서 매듭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잇는 상징이다. 미츠하의 할머니는 말한다. “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모두 신의 영역이야.”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호모 소시올로지쿠스(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연결은 본능에 가깝다. 결혼은 혈연을 만든다. 학교를 통해 학연을, 태생은 지연으로 이어진다. 이 같은 연결본능은 기술을 진보시켰다. 우편제도와 전화가 탄생했고, 인터넷으로 확장된다. 인터넷이 만든 네트워크 사회는 데이터와 사물, 심지어 사람까지 연결시켰다. 이른바 ‘초연결사회’다. 초연결사회는 다양한 비즈니스를 창출했다. 사물인터넷(IoT)은 스마트홈, 스마트카, 스마트팩토리를 완성시켰다. 초연결사회는 여론 형성과 정책·의사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보는 카카오톡과 메신저를 통해 순식간에 퍼진다. 심지어 가짜뉴스도 말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트 등 SNS는 사람을 이어준다. 오래된 친구, 멀리 있는 가족도 페이스북을 통해 즉시 안부를 알 수 있다.
타키와 미츠하는 스마트폰에 남긴 메모를 통해 연락한다. 하지만 체인지가 중단된 뒤 스마트폰은 더 이상 둘을 연결시켜주지 않는다. 타키와 미츠하를 이어주는 매개는 전통주 가미사케다. 가미사케는 미츠하가 밥을 입에 넣어 침으로 범벅을 시킨 것을 발효시킨 술이다. 타키가 가미사케를 마시는 순간 두 사람은 비로소 만난다.
연결할 방법이 다양해진 초연결사회라지만 네트워크가 무작정 사람을 묶어주지는 않다. 선택은 개인이다. 페이스북의 친구맺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둘은 맺어질 수 없다. 초연결사회는 자칫 원하지 않는 만남을 양산할 수도 있다. 스토커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연결도구가 열악한 곳이라도 마음만 있다면 끈은 이어질 수 있다. 미츠하를 찾아 떠난 타키가 그렇다. 인연에는 때로 노력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나의 가족, 친구, 연인, 이웃이다. 잠시 잊고 있어도 만나면 반가운 얼굴들이라면 무스비로 연결돼 있음이 틀림없다. 초연결사회에도 무스비로 연결된 사람은 한정된다. 오늘은 타키가 미츠하의 손바닥에 남겼던 메모를 그들에게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랑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