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수백·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당연히 다양한 증상들이 보고되었지만 정부는 이러한 특징들을 판정기준에 반영하지 않고 처음의 판정기준만으로 모든 피해사례들을 재단해오고 있다.
2016년 10월 초, 국회 본관에서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마지막 회의가 열렸다. 3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시간이었지만 진상규명, 피해대책, 재발방지라는 세 가지 과제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는 상황이어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가 국정조사특위를 연장해 일을 제대로 하라는 요구가 컸다. 야당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인정해 특위를 연장하자고 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반대했다. 이만큼 했으니 이제 사안을 해당 상임위인 환노위로 넘기자고 했다. 피해신고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고, 청문회 과정에서 정부는 전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제조사들도 마찬가지여서 검찰 수사를 핑계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책임을 회피했다.
병원 입원해 조사 못 받자 4단계 판정
20개가 넘는 제품에 대한 성분과 판매량, 판매기간 등의 기본적인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 됐다. 19대 국회 때와 마찬가지로 국정조사가 진행된 3개월 동안 새누리당은 최대한 발을 빼려고 했다. 검찰 수사가 왜 늦어졌는지 따지는 문제가 중요했는데도 검찰 출신 의원을 국조위원으로 넣으려고 했다가 반발을 샀다. 현장조사 등 전 과정을 언론에 공개해 문제해결 과정을 투명하게 할 것을 기대했지만 제조사가 부담스러워 한다며 비공개로 하자고 우겼다. 청문회 일정은 새누리당이 연찬회를 한다고 하루를 줄였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며칠 안 되는 일정마저도 여야 간의 정쟁을 빌미로 하루를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간사인 대구 서구 지역구 출신의 김상훈 의원은 노골적으로 “나는 가습기 살균제 특위에 오고 싶지 않았다. 이 문제를 다루고 싶지 않다”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고 다녔다. 피해자들이 국회 특위를 연장하라는 요구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몇 차례 건의했는데, 그때마다 국조특위 김상훈 간사가 반대한다는 이유를 댔다. 김상훈 의원은 국정조사 활동보고서에 정부 부처의 의견을 고스란히 적어넣은 것이 확인됐다. 결국 새누리당이 국정조사 특위를 연장하지 않은 건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 관료들의 뜻이었고, 여당을 통해 이를 관철시킨 것이었다.
2016년 10월 6일 김미란씨가 옥시싹싹으로 2015년 사망한 아버지 김명천씨의 영정을 들고 국회 앞에서 국정조사특위 연장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이런 한계가 있었음에도 국정조사 특위에 소속된 18명의 여야 의원들은 나름 열심히 문제를 파헤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막지 못했나, 옥시를 비롯한 제조사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위험한 제품을 만들고 팔게 되었나, 옥시의 영국 본사는 책임을 은폐하기 위해 어떻게 개입했나 등등의 문제의식을 갖고 수백 개의 자료를 들춰냈다. 하지만 20개가 넘는 제품, 10여가지의 성분, 30여개의 관련 기업, 10여개의 관련 정부 부처의 문제점들을 단순히 짚어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랐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다룬 국정조사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수사권과 강제권이 없는 국정조사는 증인들이 아예 나오지 않거나 뻔한 거짓말로 둘러대도 호통만 칠 뿐 어쩌질 못했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김미란씨는 2015년에 아버지를 잃었다. 5년 넘게 폐질환을 앓던 아버지 김명천씨는 급기야 산소호흡기를 낀 채로 가뿐 숨을 내쉬며 생을 마감했다. 남편과 함께 수시로 친정아버지를 찾던 김미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1년 동안에는 거의 매일 병간호에 매달렸다. 고통스런 삶을 지켜보는 자식의 마음은 찢어졌다. 2013년에 아버지의 폐질환 원인이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걸 알고 신고했다. 정부 조사단이 방문해서 조사를 한다고 연락이 왔을 무렵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조사를 받을 형편이 못 됐다. 결국 정부의 1차 판정에서 제외됐다. 김명천씨의 판정은 2016년 8월에야 나왔다. 4단계였다. ‘관련성이 거의 없음’에 해당하는 결과였다. 그동안 나름대로 피해대책활동에 참여하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3~4단계 피해자 문제를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본인이 4단계 판정을 받고보니 황당했다.
환경독성보건학회, 사망자 2만명 추산
김명천씨는 경기도 안양에 살 때인 2007년 1월 애경 가습기메이트를 처음 구입했다. 그해 급성아토피결막염이 발병했다. 흔히 감기라고 하는 인두염과 상세불명의 만성부비동염도 왔다. 2008년쯤부터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서 썼다. 2010년에 경미한 호흡곤란이 왔다. 알러지성비염도 진단됐다. 그해 6월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7월 초 섬유증을 동반한 간질성폐질환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소위 특발성 폐섬유화라는 질환이다. 2011년 11월 서울 금천구로 이사하면서부터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정부 발표도 나온 시점이었다. 그러나 증상은 계속 나빠졌다. 폐렴에 천식, 급성기관지염이 동반됐다. 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집에 대형 산소통을 구비해놓고 산소호흡기를 착용했다. 결국 2015년 10월 7일 고대구로병원에서 사망했다.
김미란씨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후에 아이가 죽은 사례, 부인이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폐이식을 기다리는 사례,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사례 등의 피해자들과 함께 3~4단계 피해를 규명하기 위해 피해내용을 분석하는 피해자모임을 꾸렸다. 이들은 자신들의 피해내용을 병원 진단서를 보며 하나하나 기록하고 확인했다. 병원 기록은 일반인의 눈으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의료용어를 하나하나 번역해가면서 진단명을 파악했다.
김명천씨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이후에 기록된 병원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난 질환들은 ‘섬유증을 동반한 상세불명의 폐질환’, ‘폐렴’, ‘피부질환’, ‘기관지염’, ‘부비동염’ 등이었다. 그런데 정부 판정은 이러한 질환 모두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성이 거의 없다’는 4단계였다. 정부 판정기준은 같은 폐섬유화라고 해도 짧은 기간에 나타나는 급성이어야 하고, 폐 전체에 뿌옇게 유리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음영이 보여야 하는 등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단다. 김명천씨의 경우와 같이 5년 넘도록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폐섬유화는 가습기 살균제 노출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병원의 공식 질환명인 ‘특발성 폐섬유화증’은 원인을 모르거나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특정 원인을 지목할 수 없는 폐섬유화증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 가습기 살균제가 그 원인 중 하나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알 수 없다고 한다.
정부의 판정기준은 2011년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역학조사를 할 때 대상이었던 수십 명의 폐손상 환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증상들이다. 그런데 이후 수백·수천 명으로 피해자들이 늘어났다. 당연히 다양한 증상들이 보고되었지만 정부는 이러한 특징들을 판정기준에 반영하지 않고 처음의 판정기준만으로 모든 피해사례들을 재단해오고 있다. 2016년 10월 환경독성보건학회의 학술대회에서 충격적인 보고가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렴 사망이 2만명으로 추산된다는 내용이었다. 폐렴의 원인인 염증반응은 피부질환, 비염, 천식, 중증 폐섬유화, 자가면역질환, 간독성, 신장독성, 폐암, 유산과 조산의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고 연구자는 학회에서 설명했다. ‘가습기 살균제 독성기전과 관련질환’이라는 내용의 연구였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제조사 책임자들에 대한 첫 형사재판에서 법원이 검찰 구형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은 6일 가장 많은 피해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의 신현우 전 사장에게 검찰 구형량인 징역 20년의 절반도 안 되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외국인 사장 존 리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세퓨 오유진 전 대표 징역 7년, 롯데마트의 노병용 전 대표와 홈플러스 김원회 전 그로서리매입본부장은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12월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이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공동으로 기획해 전문기관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51%는 무기징역을, 31%는 징역 20년 이상을 선고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중 8명은 검찰 구형량보다 많은 20년 이상을 선고해 엄벌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휴대전화 여론조사 결과다. 응답률은 11.1%이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이번 판결은 피해자와 유족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도 동떨어진 결과다. 재판부는 판결 이유를 설명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제조사들이 안전조치 없이 판매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유례없이 참혹한 사고’라고 했다. 그래놓고는 판결 내용은 ‘유례없이 참혹한 사고’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 징역 7년, 금고 4년을 선고했다. 옥시와 롯데, 홈플러스 회사에는 1억5000만원의 벌금을 내렸다.
위의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SK, 애경, 이마트, 삼성, 옥시 본사와 정부 책임 등에 대해 수사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향후 수사 주체에 대해 묻는 질문에 ‘검찰이 적극 수사해야 한다’ 47.5%, ‘특검을 통해 수사해야 한다’ 42.2%로 답했다. 국민 10명 중 9명은 검찰이나 특검을 통해 제대로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작년 7월부터 3개월간 진행된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특위’가 진상규명, 피해대책, 재발방지 세 가지 목적에 미흡했기 때문에 국조특위를 연장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찬성’ 74.9%, ‘반대’ 9.8%로 찬성이 7.6배나 높았다.
정부가 내놓은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이 가습기 살균제 유사사건을 예방할 수 있을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책이 미흡해서 제2의 유사사건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76.8%, ‘정부 대책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15.6%가 답해 대부분이 정부 대책이 미흡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대책 마련 등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제정해야 한다’가 81.8%, ‘제정할 필요 없다’가 9.9%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매해 연말에 환경보건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2015년 12월에 실시된 조사 결과 응답자의 22%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었고, 유경험자 중에서 20.9%는 ‘호흡기 질환 등 건강상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대규모 인명피해를 야기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에 대한 처리방안에 대해 응답자의 68.4%는 ‘많은 소비자들이 죽거나 건강을 해쳤으므로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86.6%는 ‘한국 소비자 보호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는 다국적기업은 퇴출해야 한다’고 답해 옥시레킷벤키저가 더 이상 한국에서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2015년 12월은 언론 보도도 많지 않았고 검찰 수사도 진행되지 않아 대중의 관심이 적은 상황이었지만 응답자의 89.9%가 ‘옥시 제품에 대한 소비자 불매운동이 일어날 경우 동참하겠다’고 답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