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섬’ 강화도. 일렬종대로 늘어선 산에서, 갑자기 새떼들이 활개를 치면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일순간에 내려치는 교향악의 팀파니 주자 같은 힘을 느끼게 된다.
한 해 동안, 이 귀한 지면을 통해 음악에 대하여 글을 썼지만, 이번에는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이 있는 풍경, 음악이 들리는 풍경, 그러니까 음악이 없어도 음악적 깊이가 저며드는 풍경에 대해 쓰고 싶다.
그런 풍경들이 있다. 음악이 전혀 들리지 않아도 눈앞의 정경에서 음악이 들려오는 풍경 말이다. 풍경들 속에 이미 음악이 깃들어 있다가 잠시 스쳐가는 바람이며 햇살 때문에 슬며시 풍경 속에서 빠져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음악 이전의 음악, 소리 이전의 소리를 들려주는 원초적인 상태의 풍경들이 있다.
이 풍경들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음악을 자아내는 풍경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저 밋밋한 들판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음악이란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애틋한 음악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한낱 소음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것이 음악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기억해 보는 몇 군데의 풍경은 오직 나에게만 음악을 들려주는 풍경일 수 있으니, 혹시라도 음악이 들리지나 않을까 하여 일부러 그곳으로 찾아가는 일은 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풍경, 당신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당신만이 아는 당신만의 장소가 따로 있을 터이므로.
쓸쓸함이 내려앉은 변산 격포. / 정윤수
브람스의 4번 교향곡에 닮은 곳
우선 강화도.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가까운 곳이라서 금세 생각이 나는 장소다. 강화도는 넓고, 또한 깊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가볍게 드라이브나 할까’ 하고 나서기 쉬운 곳이지만 김포의 끝까지 가서 교량을 건너 섬이라고 하는 곳에 들어가면, 그 섬이 꽤나 넓어서 여행자가 원하는 장소를 찾아가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김포에서 강화를 건너는 곳까지는 길이 반듯하게 펼쳐져 있지만 강화도로 들어가면 길들이 여러 갈래로 나뉘면서 좁아지고 비틀어지면서 여름의 휴가철이라도 되면 강화도까지 가는 시간보다 그 안에서 최종 목적지에 이르는 시간이 더 걸리는 수도 있다. 또한, 강화도는 깊다. 물리적으로도 어느 한 곳을 정하여 갔다가 다른 장소로 가려면 길게 우회하거나 갔던 길을 되돌려 나와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섬이 하나의 요새처럼 깊고 아득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산의 섬이기 때문이다. 화도면에 있는 높이 469m의 마니산이 가장 높지만 그밖에도 고려산, 별립산, 진강산, 해명산, 혈구산, 견자산이 섬을 이룬다. 산들이 서로 어깨를 받치며 길게 늘어서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안으로 스며들어가서 살았고, 바다가 바로 밑에서 받쳐주기 때문에 또한 사람들은 물로 나와서 양식을 취했다.
일렬종대로 늘어선 산들을 보면 강건한 음악이 위엄있게 전반적인 분위기를 압도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조성의 규칙이 뚜렷하고 선율은 강건하여 정교하게 진행되는 소나타 형식의 자연스런 풍경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런 산에서 갑자기 새떼들이 활개를 치면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일순간에 내려치는 교향악의 팀파니 주자 같은 힘을 느끼게 된다. 만약 일부러 하나의 곡을 대입한다면 브람스의 <4번 교향곡>에 닮은 곳이다. 아, 강화도는 과연 준엄한 곳이구나, 하는 그런 느낌! 사진작가 이상엽의 작품과 강화도의 시인 함민복의 시에서 힘의 교향악을 느끼게 되는데, 함민복의 ‘산이 난다’를 읽어보자.
큰 새들의 날개는 산을 닮았다
기러기가 날아올 때 선(線)으로
된 산도 함께 날아 온다
갈매기가 머리 위를 지날 때
면(面)으로 된 산도 지난다
산이 운다
울며 날아가는 산(山)아!
사람들이 서로 껴안을 때
사람들의 팔도 산모양인 것
너희들도 보았느냐
다음,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역시 이 겨울 강원도의 높은 산들이 떠오른다. 며칠 전에도 나는 홍천으로 가서 설악면의 풍경들을 보고 왔다. 강원도의 겨울 산은 다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애써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 실존의 깊은 지점, 좀처럼 확인하고 싶지 않은 삶의 비밀을 마주하는 듯한 아득함을 들려준다. 브룩크너의 <교향곡 9번>? 굳이 음악으로 특정하자면 이 비범한 미완성의 <9번 교향곡>을 떠올리게 한다.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강원도 홍천의 겨울산 풍경. / 정윤수
강원도 겨울산은 브룩크너 교향곡 9번
강원도 도계에서 태어나 짧게나마 이 산악지방에서 성장한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어릴 때 기억으로는 양쪽에 깎아지른 계곡이 있어요. 그런데 새까매요. 물도 새까맣고. 그런데 눈이 오면 기가 막힌 콘트라스트가, 까만 언덕에 하얀 눈이 내려서, 금방 녹아서 질척거리게 되지만, 정말 아름다운 수묵화 같은 느낌, 그게 남아 있어요.”(월간 <태백>, 2017년 1월호)라고 기억한다.
그런 풍경을 며칠 전, 홍천의 깊은 산중에서 한참이나 보았다. 깊은 밤에 비가 내렸고, 밤의 안개가 산들을 뒤덮었고, 아침에도 그 안개들이 미처 사라지지 않고, 산들이 서로 어깨를 겹친 끝도 없는 능선으로 안개가 천천히 흘러갔다. 흡사 끝이 나도 그 잔향이 남아서 끝이 나지 않은 듯한 브룩크너의 <9번 교향곡> 3악장처럼.
마지막으로, 부안 변산반도의 음악적 풍경을 생각한다.
이 일대는 직접 가지 않아도 다만 그 지역의 몇몇 장소들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벌써 음악적 풍미가 기품 있게 흐른다. 토머스 탈리스라고 말할 때, 빌 에반스라고 말할 때, 전인권이라고 말할 때, 그 음악들을 듣기도 전에 그 이름만으로 벌써 음악이 들려오는 것처럼 변산반도 일대의 장소들, 그러니까 격포항, 내소사, 곰소만, 줄포면, 적벽강, 모항, 개암사 등은 저마다의 희미한 풍경으로 희미한 음악들을 들려준다.
이 일대 어디에나 서 있어도 음악이 들려온다. 위엄 있는 개암사의 가을, 깊이 있는 내소사의 겨울, 격포와 적벽강의 저물면서 더욱 붉어지는 황혼, 줄포에서 곰소로 하여 모항 거쳐 격포에 이르는 30번 지방도로의 비틀거리는 선율!
이 일대는 일부러 악착같이 코스를 정해 두고 어디가 맛집이며 어디가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서푼어치 정보를 일일이 체크해가며 돌아다니는 것은 조잡한 일이다. 어느 방향에서든, 어느 장소에서든, 어디를 시작으로 하고 어디를 종착으로 하든, 변산 일대의 장소와 풍경은 미묘하게 일렁거리는 음악적 풍경, 풍경의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에 서푼어치 여행 정보란 무의미하다.
남들은 여름이 좋다 하여 해수욕도 하고 가을이 낫다 하며 등산을 한다지만, 변산반도 일대는 겨울, 특히 폭설이 내려 극도로 운전을 주의해야 하는, 그런 겨울이 진실로 아름답다. 그런 날에는 이 일대에 아무도 없으며, 쓸쓸한 격포항이며 차디찬 바람이 부른 곰소만에서 당신은 변산반도 일대가 들려주는 스산한 풍경의 음악을, 오로지 혼자서 들을 수 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라고 하면 조금은 지나친 선택이고, 적어도 빌 에반스나 허비 맨이 들려주는 섬세하고 여린 음악들 말이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