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들이 만나고 싶지 않은 단어로 추천되었다. 그 이면에는 국정이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고 하겠다.
2017년 새해에는 뉴스에서 부디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단어를 꼽아달라고 SNS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불과 하루 사이에 꽤 많은 분들이 댓글로 다양한 의견을 올려 주었다. 익히 기대했던 단어들이 여럿 있었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단어들도 꽤 많이 있었다. 미리 밝히지만 이 단어들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된 응답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저 댓글로 모아 본 의견일 뿐이다. 당연히 우리 사회의 여론을 대표한다고 감히 일반화할 수는 없다. 또 소셜네트워크에서 형성된 친구 관계란 대부분 의견과 취향의 편향성을 띠게 마련이다. 게다가 댓글로 의견을 올리는 적극적인 행동까지 보이는 분들의 의견이라면 편향성은 한층 더 두드러진다. 그러니 결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결과물이라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댓글로 추천된 단어 대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소개하기에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하여 추천된 단어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봤다.
새누리당 등 집권세력을 지칭하는 단어들
댓글 목록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유형은 특정 인물의 이름이다. ‘박근혜’, ‘최순실’, ‘우병우’, ‘김기춘’ 등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들이 새해 뉴스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단어로 추천되었다. 이미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속에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 인물들이니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명확한 진상 규명과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져 조속히 이 사건이 마무리되고 국정이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고 하겠다.
이들 외에 몇몇 다른 이들도 새해 뉴스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로 추천되었다. 현재 대통령직 권한 대행을 맡고 있는 ‘황교안’과 차기 대선에서 유력 여권 후보로 거론되는 ‘반기문’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정치 상황과 여권 내 차기 대선구도에 대한 불편한 심정이 이들의 이름을 통해 대변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그동안 친박계의 대표 인물로 많은 지탄을 받았던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나 최근 청문회 과정에서 잇달아 구설수에 오르며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까지 혜성처럼 등장한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의 이름은 전혀 추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뉴스 가치가 떨어지는 인물로 전락하여 어차피 새해에는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댓글 목록에 나타난 두 번째 유형은 선거와 관련된 단어들이다. 아무래도 대선이 치러지는 해라는 점이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일단 ‘새누리당’, ‘친박’, ‘박사모’ 등 현 집권세력과 그들의 지지 집단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을 뉴스에서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은 곧 다가올 대선에서 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보인다. 나아가 보다 궁극적으로는 이들 집단의 해체나 소멸을 열망하는 마음까지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선거와 관련하여 이보다 더 많이 추천된 부류의 단어들이 있다. 지금까지 역대 선거에서 나타났던 온갖 부작용들을 대표하는 단어이다. ‘부정선거’, ‘지역감정’, ‘세대갈등’, ‘종북’, ‘좌빨’, ‘북풍’, ‘국정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선거 혼탁을 조장하고 국민 분열을 선동하는 이런 섬뜩한 단어들이 차기 대선에서만큼은 부디 사라져주기를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최근 몇 년 동안 신문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각종 사건·사고와 관련된 단어들이다. ‘헬조선’, ‘갑질’, ‘아동학대’, ‘성폭력’, ‘자살’, ‘불황’, ‘생활고’, ‘전·월셋값’, ‘비정규직’, ‘취업난’, ‘불평등’, ‘부정부패’, ‘미세먼지’, ‘수질악화’, ‘살처분’, ‘핵발전소’ 등 수많은 단어들이 새해 뉴스에서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추천되었다. 모두가 사회구조적 문제이거나 정책의 실패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민생과 직결된 단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의 삶 속에서 견뎌내야 하는 버거움이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 겹겹이 걸쳐져 있음을 여과 없이 말해준다.
마지막 네 번째로 분류된 유형은 부정적인 심리나 태도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것들은 다시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만연해진 증오감과 관련된 단어들이다. ‘여혐’과 ‘남혐’, ‘분노’, ‘위기’, ‘자괴감’ 같은 단어가 여기에 해당한다. 살기는 점점 힘든데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여기에 사회양극화 현상까지 가속화되면서 확산된 증오의 사회심리가 새해부터는 제발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해석된다. 부정적 심리와 태도의 또 다른 한 축은 정치인, 고위관료, 재벌 등 사회 기득권층을 겨냥하고 있다. ‘거짓말’, ‘책임회피’, ‘후안무치’, ‘표리부동’, ‘복지부동’ 등이 앞으로 뉴스에서 그만 만나고 싶은 단어들로 추천되었다. 이것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확인한 대통령과 청와대 및 정부의 고위 인사들, 그리고 재벌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단어이다. 이들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상실감을 새해부터는 결코 또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는 절실한 심정의 표현이라 하겠다.
삶에서 가장 만나지 말아야 할 단어는 ‘포기’
이렇게나 보고 싶지 않은 불쾌한 인물들이 많다. 이렇게나 겪고 싶지 않은 나쁜 정치가 많다. 이렇게나 피하고 싶은 사건·사고와 그로부터 비롯된 상처와 고통이 많다. 그리고 이렇게나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 많다. 뉴스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단어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은 곧 지금 온 나라가, 그리고 온 국민이 집단적 트라우마에 빠져 있는 상황임을 방증한다. 그럼 정말 새해부터는 이런 단어들을 뉴스에서 만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우리 모두는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껏 언급한 그 많은 단어들은 새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여전히 번갈아가며 뉴스 지면에 오르내릴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진작부터 이를 눈치챈 어떤 이는 눈치 없게도 SNS에 이런 댓글을 남겨 놨다. “댓글 포기합니다! 분명 언론에 나올 것이 분명하므로!”라고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희망을 말하는 새해가 아닌가. 누구나 크고 작은 소망 하나쯤은 조용히 마음에 품어보는 새해가 아닌가. 그러니 뉴스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단어들과의 가슴 후련한 작별을 굳이 새해부터 지레 포기하지는 말자. 어쩌면 ‘포기’야말로 우리가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꼽은 단어들과 관련된 자들이 가장 반색해 마지않을 말일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정녕 뉴스에서, 그리고 우리 삶에서 가장 만나지 말아야 할 단어는 바로 ‘포기’이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