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뒤 열린 10일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놓여진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구명조끼에 촛불을 놓아 불을 밝히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언론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대규모 집회가 있을 때마다 발랄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모아 ‘달라진 집회 문화’라는 이름으로 보도한다. 이 중에는 미디어를 위한 그림으로 끝나는 시도도 있고, 수면 아래 있던 문제를 드러내고 싸움의 지형을 바꾸는 시도도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말 ‘병신년’을 풍자의 언어로 사용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참여연대는 이번 탄핵 정국에서 경찰의 집회금지 통고에 법원 가처분 신청을 통해 청와대 근처로 한 발짝씩 다가가면서 시민의 권리를 확고하게 굳혀갔다. 전농의 트랙터 상경은 해남·진주부터 서울까지 여러 시·군을 거치며 릴레이로 트랙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상경한 트랙터는 1000대이지만 전국의 농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여성들은 광장에서 오래전부터 여성운동이 해 왔던 요구를 관철시켰다. 폭력시위, 법률가 만능주의, 올바른 언어 사용에 대한 지나친 집착, ‘낡은 방식’으로 비판받아 왔던 것들이 ‘2016년 광장’의 맥락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냈다. 비판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미디어의 조명을 못 받는 지루한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다름’이다.
해외 언론도 주목한 장면이 있다. 230만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는데 질서정연했다. 뉴스로만 이 사실을 접하면 한국인들은 반정부 시위에서조차 순종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는 평화와 거리가 멀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자기 책임’의 논리를 학습해 왔다. 보수정부 9년은 시민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불어넣다 못해, 시민들을 군대의 야전사령관처럼 만들었다. 정부가 시민들을 감시하고 온라인 여론전쟁에 직접 뛰어든 탓이었다. 이 230만명의 기업가 겸 야전사령관들은 폭력과 비폭력의 대차대조표를 만들고, 스스로를 강력하게 규율해 자신들을 규율해 왔던 권력이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무력화시켰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니라 평화롭지 못했던 시간이 이를 가능케 했다.
조직된 시민들의 창의성과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질서정연함은 뿌리가 같다. 이기는 데 집착하며, 전략적으로 행동하고, 자기규율에 익숙하다. 사람들이 집요함을 품게 된 이유로 꼽는 것은 세월호 참사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당연히 잘 해결될 줄 알았어요.” 그 후 2년, 광장은 이런 모습이 됐다. 달라졌다고 믿는 풍경의 껍데기를 살짝만 벗겨내면 오랜 시간 달라지지 않았던 서늘한 현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