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퓨 제조업체의 실체가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전문가, 정부도 깜짝 놀랐다. 국문과 출신의 화학물질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 제품을 만들어 판 것에 한 번 놀라고, 기업이 너무나 영세해 또 한 번 놀랐다.
“이게 나라냐.” 지난 10월부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외쳤을 말이다. 100만, 200만 촛불들은 엄동설한에도 이 말을 목놓아 소리쳤다. 외치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같은 생각을 한 사람만도 4500만이 넘을 것이다. 말(馬) 때문에 말(言)이 많았던 올해의 ‘말, 말, 말’에 충분히 들어갈 자격이 있는 말이다.
1인 회사에 가까운 구멍가게 수준
이보다 훨씬 앞서 이 말을 외쳐온 이들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다. 특히 옥시와 달리 언론의 조명을 별로 받지 않은 버터플라이이펙트라고 하는, 일반인이 이름을 듣도 보도 못한 기업(기업이라기보다는 1인 회사에 가까운 구멍가게 수준의 회사임)이 만들어 판 세퓨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은 2011년부터 이 말을 줄곧 외쳐 왔다. 옥시레킷벤키저나 애경, 롯데마트, 이마트 등이 제조·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사용하다 사망 등의 피해를 입은 가족들은 피해배상을 받을 곳이라도 있다. 하지만 세퓨 제조회사인 버터플라이이펙트는 영세기업이어서 사건이 불거진 직후인 2011년 말 곧바로 문을 닫고 말았다. 세퓨 피해자들은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세퓨 쪽은 2년여간의 소송 과정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피해자들의 폐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서만 한 차례 제출했을 뿐, 법원에 출석해 적극적으로 소송에 임하지 않았다. 오유진 대표는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이에 세퓨 피해자들은 트위터 등 SNS에서 울분을 토했다.
오 대표가 구속된 상태인 11월 16일 서울중앙지법의 1심 소송 결과가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에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첫 번째 판결이었다. 옥시, 롯데 등의 피해자들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와 기업, 소송원고 변호인 등이 합의를 종용하는 바람에 적절한 배상액을 받기로 합의한 뒤 소송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세퓨 피해자들 소송이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판결이 된 것이다. 이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2011년 8월 31일 이후 5년 3개월 만의 일이었고, 1994년 유공(현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을 처음 우리나라 시장에 내놓은 뒤 22년 만의 일이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의 사망 또는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세퓨가 피해자 또는 유족에게 각 1000만~1억원씩 총 5억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국가의 관리·감독 소홀로 인한 책임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실상 큰 의미가 없는 판결이었다. 가해기업에 피해배상을 하라고 했지만 그 기업은 그럴 능력도, 그럴 처지도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가 책임을 물어야만 세퓨 피해자들이 쥐꼬리만한 액수라도 배상을 받을 수 있는데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1월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 때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강찬호 대표가 연단에 올라 군중들에게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필자 제공
많은 생명을 앗아간 사건의 실체가 2011년 가습기 살균제임이 드러난 뒤 세퓨 제조업체의 실체 또한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전문가, 정부도 깜짝 놀랐다. 국문과 출신의 화학물질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 제품을 만들어 판 것에 한 번 놀라고, 기업이 너무나 영세해 또 한 번 놀랐다. 그래서 “이게 회사냐”라는 말을 외쳤다. 그리고 첫 판결 이후 판결 결과에 실망해 “이게 나라냐”라는 말도 함께 소리 질렀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강찬호 대표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강 대표의 딸도 세퓨를 사용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운 좋게 벗어났다. 그는 판결 직후 “세퓨 피해자들도 배상 받지 못할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판결문이라도 영정 앞에 놔줘야 하겠다는 심정으로 소송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반쪽짜리 판결의 내용으로는 가습기 살균제의 진실이나 피해자들의 실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20대 국회는 서둘러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혼부부, 젊은 부부, 고학력 부부 피해
그는 판결이 나던 날 2011년 6월 어느 날을 떠올렸다. 딸 나래는 다섯 살이었다. 아내가 간호사로 있던 서울대병원으로 나래를 데려갔다. 아이가 잦은 기침을 해 이상하다 싶어 갔지만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희망을 섞은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원인 미상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장담할 수 없으며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겠지만 부모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불길하고도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그래도 나래와 강씨는 운이 억세게 좋은 피해자에 속한다. 증상이 나타난 뒤 상대적으로 일찍,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 가운데 하나인 서울대병원을 찾았던 것이 목숨을 살렸는지도 모른다. 나래는 상태가 호전됐다. 지금도 호흡기 쪽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중증 후유증을 겪고 있는 많은 피해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다행스런 결과다.
세퓨 피해자 가족인 안성우씨가 아들 재상과 함께 나들이를 가 비극을 잠시 잊고 밝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재상이도 피해자 인정을 받았다. / 안성우씨 제공
또 다른 세퓨 피해자 가족인 재상이 아빠 안성우씨는 강 대표와 달리 아직도 세퓨 가습기 살균제가 할퀸 상처에 온몸과 마음에 깊은 생채기가 났다. 2011년 아내는 재상에 이어 둘째를 가졌다. 임신 7개월로 만삭이 다 되어가던 아내는 출산 준비 겸해서 설 명절에 시댁이 있는 부산에 내려가려고 했다. 유럽연합에서도 인정한 안전한 물질로 만들었다고 선전하던 세퓨 살균제 성분인 PGH(염화에톡시폴리구아니딘)는 바로 그날 본색을 드러냈다. 성우씨는 그날 안방에서 재상이랑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배가 제법 부른 아내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성우씨를 큰소리로 찾았다. “여보! 갑자기 숨을 잘 안 쉬어져. 나 죽을 것 같아.” 안씨는 놀라고 당황했다. 119에 전화를 했다. 구급차가 왔다. 병원 응급실로 함께 갔다. 아내는 그 이전에도 숨차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만삭의 산모에게서 흔히 생기는 거겠지’ 하고 무심코 넘겼다. 아내도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심한 호흡곤란이 왔다. 병원 응급실에서 엑스선 촬영 등 여러 검사를 했다. 아내는 더욱 호흡곤란이 심해졌다. 중환자실로 옮겼다. 아내의 폐는 전체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의사들은 어떻게 손을 써야 좋을지 몰랐다. 아내는 7개월 태아와 함께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랫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내가 죽은 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정상적 생활을 할 정신적 여유를 찾지 못했다. 직장도 그만두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부산에 있는 재상이 할아버지에게 맡겨 기르고 있다. 2015년 겨울 부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보름 걸려 서울까지 올라오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피해자를 한 명이라도 더 찾기 위한 캠페인을 몸소 벌였다. 그 뒤 그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운동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런 활동을 하면 아내와 둘째아이 죽음 이후 몸 안 깊숙이 쌓인 울화가 풀려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천착할수록 분노는 더 커졌다. 거대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피해자 몇몇이 이를 확 뜯어고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잡일도 하고 알바도 하며 재상이 학비 마련을 위해 뛰어보지만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들기만 하다.
세퓨 피해자들 가운데는 신혼부부, 젊은 부부, 고학력 부부들이 많다. 세퓨를 만들어 팔았던 오 대표의 ㈜버터플라이이펙트는 큰 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옥시나 애경, 롯데 등과 달리 TV광고를 할 여력이 없었고 유통망도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판매와 유럽 인정 원료 등을 들먹이며 젊은층을 파고들었다. 그 전략은 유효했다. 하지만 살균제나 화학물질의 독성에 대해 무지했던 회사는 다른 제품보다 훨씬 더 독성이 강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최악의 길로 치달았다. 돈벌이에만 신경을 썼던, 정말 어처구니없는 한 사람의 무지와 욕망이 날갯짓을 한 나비효과(버터플라이이펙트)가 대한민국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가정을 파괴한 연쇄살인범이 되었다. 버터플라이이펙트 오 대표는 독비늘을 지닌 죽음의 나비였다. 자신의 날갯짓이 그로서는 사랑스러웠을 11개월짜리 딸의 생명도 앗아갔다. 현재까지 드러난 세퓨 피해자 41명 가운데 14명의 사망자가 있다. 그 속에 그의 딸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독나비의 날갯짓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강찬호, 안성우씨와 같은 사람들이 ‘이게 회사냐’ ‘이게 나라냐’라고 울부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일으키는 세포 염증반응을 시작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건강문제들. / 임종한 교수 추계학술대회 자료
가습기 물통에서 물과 섞인 살균제는 가습기 가동과 함께 일부는 물통 속에서 살균기능을 하고, 일부는 물과 함께 가습기 밖으로 배출된다. 공기 중에서 물입자는 금방 증발되고 살균제 성분은 응결되어 미세한 나노 크기의 입자로 날아다니다가 사람이 호흡하는 과정에서 코와 입을 통해 체내로 들어온다. 일부는 피부에 달라붙는다. 가습기는 주로 추운 겨울철 야간의 수면시간에 사용하기 때문에 방과 창문을 닫아 환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7~8시간 고농도로 집중적으로 노출된다.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유입된 살균성분은 크기가 매우 작아 기관지를 거쳐 폐 깊숙이 침투한다. 살균제의 일부 종류는 산소와 함께 혈액으로 유입되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2011년 초 서울아산병원의 호흡기내과 응급실에 7명의 산모와 1명의 성인남성이 원인미상의 호흡곤란으로 실려왔다. 이들은 모두 비슷한 증상을 보였는데, 스테로이드 치료 등 기존의 치료방법으로 낫지 않고 상태가 나빠지다가 4명이 사망했다. 3명은 폐이식 수술로 겨우 살아났다. 폐이식한 산모 1명은 나중에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병원 측은 2009년에 유행했던 신종플루와 같은 유행병일지 모른다고 판단해 보건당국인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해 곧바로 역학조사가 진행되었다. 2011년 8월 31일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산모 사망의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폐손상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기 위해 환자들의 집에서 사용하는 수십여 가지의 제품들과 각종 환경요인을 조사했더니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비가 47.3으로 가장 높았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폐손상 발병 가능성이 47.3배나 높다는 말이다. 흡연자 폐암 발병 위험비가 10~20 정도라니까 이 역학조사 결과는 원인을 확실히 밝혀낸 것이었다.
이후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대해서 노출재현 시험과 세포독성시험, 흡입독성 동물실험을 실시한 결과 사람에게서 나타난 폐섬유화가 확인된 6개 제품을 강제회수하고 다른 제품들도 사용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전국의 3차 병원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환자 발생 여부를 모니터링했는데 2006년부터 매년 봄철에 나타나곤 했던 유사한 호흡곤란 환자들이 리콜 조치 이후인 2012년부터는 발생하지 않았다.
처음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기도를 따라가다 폐로 연결되는 말단기관지를 중심으로 폐포가 딱딱하게 굳는 폐섬유화 등의 심각한 폐손상을 일으키고 폐 전체로 급속히 확산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이를 기준으로 피해신고자들의 관련성을 판정하고 있다.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752명의 피해신고자들에 대해 판정을 했는데, 전체의 37.1%인 258명만이 지원대상으로 인정되고 있다. 절반이 넘는 62.9% 437명은 폐손상 관련성이 낮거나 거의 없다고 해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신고자들은 폐 이외에 천식, 비염, 폐렴과 같은 호흡기계 질환과, 눈병, 피부질환, 심장질환, 간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가습기로부터 분출되는 수증기에 사용자가 노출되는 경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가습기 살균제는 전신에 노출되므로 거의 모든 신체 장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는 폐손상 일부에 대해서만 관련성을 인정해 왔다. 그동안 진행된 각종 동물실험에서도 폐 이외에 간, 심장, 피부 등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판정기준에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는 2016년 6월부터서야 폐 이외 질환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천식과 비염, 태아사망이나 조산 등이 관련 질환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0월 초 한국환경독성보건학회의 추계학술대회에서 인하대학교 임종한 교수(학회장)는 가습기 살균제 판매기간 동안 폐렴으로 사망한 7만명 중 2만명이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폐렴은 다른 어떤 질병보다도 흔하고, 특히 노인사망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동안 가려져 온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폐암과 같은 만성질환이 발생할 가능성과 기저질환(기존의 질환)이 더 악화될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