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반장은 ‘저항의 상품화’, 이를테면 티셔츠에 프린트된 체 게바라의 얼굴이 지닌 모순된 현실을 깊이 생각한다. ‘저항’이 음악적 표지가 되고 아이콘이 되고 급기야 내용 없는 상징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
미국 팝 문화 이외의 비서구 사회 음악, 이른바 ‘월드 뮤직’으로 통칭되는 지역의 음악을 듣는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그 첫째는 미국 팝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 몸이 대단히 이채로운 리듬과 이질적인 선율에 휩싸이는 절묘한 감각 반응이다. 미국의 팝 문화, 그리고 그에 크게 영향을 받는 우리의 대중음악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묘하게 뒤틀리는 박자와 절묘하게 엇갈리는 선율들이 놀랍게도 우리 몸을 감싸안는 순간 몸과 마음이 오래전부터 그런 박자와 선율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듯, 미묘하게 일렁거린다. 쿠바의 쏜, 아르헨티나의 탱고, 브라질의 보사노바와 열대주의 등 라틴의 음악들이 특히 그러하다.
피로 물든 선율이며 땀에 젖은 박자
이 감각적 반응의 뿌리를 더듬다 보면 두 번째 과정으로 이어지는데, 실은 알고 보니 이 음악들이 피로 물든 선율이며 땀에 젖은 박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노예무역의 뿌리 깊은 상흔, 제국주의의 압력과 독립운동의 핏방울, 가속화된 산업도시 발달과 내동댕이쳐진 가난한 자들의 설움 등이 라틴의 음악에 젖어 있음을 알게 되면서, 그 음악을, 또 그것을 배태한 그 나라의 현대사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과정 말이다.
레게·소울 밴드 ‘김반장과 윈디시티’의 리더 김반장./크래프트앤준
그리하여 세 번째 과정에 도달하게 된다. 이른바 ‘월드 뮤직’이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지구 반대편의 지역 문화요 종족 음악이랄 수 있는데, 그것이 태평양을 넘고 대서양을 건너 우리에게 소개되면서 우리 스스로 창작한 비서구적인 음악들이 나타났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일제강점기 때 성악을 전공하여 도쿄음악학교(현 도쿄예술대학)까지 마친 인텔리 가수 현인이 해방 이후에 라틴 음악의 번안으로 ‘베사메 무초’를 만들고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장밋빛 인생’을 번안했던 일로 시작하여 1960년대의 포크, 1980년대의 탱고, 1990년대의 레게 등을 심미적으로 복기하게 된다.
이 과정 전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뮤지션이 ‘김반장과 윈디시티’다. 그들은 자메이카의 레게를 적어도 국내에서는 최고 수준으로 들려준다. 오늘 나는 그들의 음악을 얘기하고 싶다.
그렇다면 우선 레게란 무엇인가. 김흥국의 ‘레게 파티’? 실제로 들어보면 레게라기보다는 기묘하게 착종되고 변형되어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수준 낮고 어색한 ‘라틴음악’일 뿐이다. 사실 우리 음악 환경에서 ‘라틴’ 하면 푸른 바다, 야자수, 늘씬한 훈남훈녀, 밤의 파티 등의 낡은 이미지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긴 하다. 해방 직후에 번안된 현인의 ‘베사메 무초’를 2012년에 에일리가 KBS2의 음악경연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나와 다시 불렀는데, 이렇게 70년 가까이 이른바 ‘라틴 음악’은 ‘정열적인 사랑의 노래’로 굳어져 왔다.
이런 이미지는 비단 우리만의 경우가 아니고, 우리에게 그 문화를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서구, 특히 미국의 영상 이미지가 대량으로 생산하고 지속적으로 유포한 것들이다. 그런 이미지는 유럽이 카리브해 일대를 점령하고 지배하던 무렵부터 지속적으로 생산되어 세계적으로 유포된 일종의 견고한 오리엔탈리즘으로, 경기도 용인의 물놀이 테마파크 ‘캐리비언 베이’가 어떤 조형 요소로 채워져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고정된 이미지, 시간이 정지된 과거의 이미지, 서구가 생산한 몰역사적인 이미지에 저항하며 자메이카 레게 음악의 대표자인 밥 말리는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말까지 사용했다. 이 단어에 뼈아픈 식민의 기억, 가혹한 노동의 추억, 그리하여 20세기 내내 격렬한 자기 모색을 감행해야 했던 자메이카 킹스턴의 생생한 현실이 압착되어 있다.
밥 말리와 그의 레게는 압착된 자메이카의 일그러진 현대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밥 말리는 중년의 백인 아버지와 10대의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국인 백인 남성과 10대의 흑인 소녀, 그 출생에서부터 밥 말리에게 드리워진 자메이카의 식민성이 확인된다. 그런 그를 구출한 것은 음악과 종교였다. 자메이카의 현대사에서 그들의 자생적인 음악과 종교가 실천적으로 결합된 문화운동을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이라고 한다. 1930년, 에티오피아의 황제로 즉위한 하일레 셀라시에의 영향 아래 탄생한 이 종교 문화 운동은 아프리카의 역사적 정당성과 그 문화적 가치를 당당히 천명한 것으로, 이는 비단 아프리카 대륙만이 아니라 아프리카를 (강제로) 떠나 미국이나 카리브해 일대로 이주한 흑인들의 현실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60년대 이후 자메이카의 문화적 독립운동은 바로 이 종교 문화 운동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었으며, 그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레게다.
모든 음악가들이 여러 경로를 거쳐 다양한 의미로 이식된 문화를 그 역사적 뿌리까지 더듬어가며 작곡하고 노래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주력하는 장르나 형식의 근원이 무엇이며 그것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저 라틴 음악 하면 화려한 의상과 격렬한 댄스에 그 무슨 ‘열창’이라는 식으로 굳어진 이미지의 단순한 반복과 재현은 너무나 낡은 형태라서 위험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지극히 게으르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자메이카에 머물렀던 김반장
그런 점에서 김반장과 윈디시티는 각별하다. 우연히 자기 몸속으로 들어온 레게의 리듬, 그 뿌리를 만져보기 위해서 김반장은 오랫동안 자메이카에 머물기도 했고, 그 선율의 국제적인 흐름을 더듬어 보기 위해 일본, 태국, 호주 등의 레게 뮤지션들과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김반장은 “하와이 원주민의 레게, 호주 원주민의 레게, 일본 아이누족의 레게가 각각 있어요. 레게는 각 지역의 토속문화와 결합하면서 국지화하는 동시에 그럼으로써 지구를 하나로 묶어 세계화하는 음악”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것을 그는 단순히 복제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적 성장과 그 스케일 안에 스며들도록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김현식이나 조덕배의 노래에 심취했고, 인디음악계의 보석과도 같았던 모던록그룹 언니네이발관에서 드럼을 쳤고, 그로부터 독립하여 밴드 멤버 각자의 색채가 뚜렷한 아소토 유니온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결국 자신의 밴드 ‘김반장과 윈디시티’에 정착하는 짧지 않은 음악 이력 속에서 레게는 씨앗이었다가 꽃망울이었다가 마침내 자기 몸의 욕망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옷으로 장착되었다. 그 과정에서 김반장은 자메이카에서 밥 말리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래게의 전설 얼 스미스를 만나 교류하는 등 끊임없는 자기 모색 끝에 자메이카를 복제하는 것이 자기 음악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라고 판단하게 된다.
한때 전성기에서 반강제로 물러났던 조용필이 그랬고 김민기가 은일자로 있으면서 그랬듯이, 김반장도 판소리와 민요와 굿과 장터의 소리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 그것들과 레게가 김반장의 몸속에서 뒤섞이게 된다. ‘잔치 레게’가 그 대표작이다. 한편 큼직한 사회적 이슈들, 역사적인 문제들,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사건들, 예컨대 광화문광장의 촛불 무대에도 김반장과 윈디시티는 어김없이 달려가는데, 그것이 단순히 ‘밥 말리의 레게 음악이 갖고 있는 저항정신을 잇는다’는 식의 기계적인 변주는 아니다.
오히려 김반장은 ‘저항의 상품화’, 이를테면 티셔츠에 프린트된 체 게바라의 얼굴이 지닌 모순된 현실을 깊이 생각한다. ‘저항’이 음악적 표지가 되고 아이콘이 되고 급기야 내용 없는 상징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김반장과 윈디시티는 더 많은 저항의 장소에 나타나고, 더 격렬한 음악적 실험을 모색하고 있으며, 더 일상적으로 비주류적인 생활영역을 지키려고 한다. 비록 MBC 오락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김반장의 모습은 프로그램의 성격상 어느 정도는 ‘자기 희화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모순된 지점을 일부러 배척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도 김반장과 윈디시티는 주목할 만한 뮤지션이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