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제품과 전혀 다른 계통의 화학물질인 CMIT·MIT를 살균성분으로 만든 제품으로 현재까지는 심각한 피해자를 양산하지는 않았으나 인과관계 연구가 드러나면 공포스러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데….
정말 어렵게 자식을 얻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란 악마는 기어코 이란성 쌍둥이 아들과 딸을 모두 앗아갔다. 혜수 아빠는 딸 혜수가 죽던 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어떻게 얻은 아이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다니….” 그는 말문을 닫았다. 그날 밥도 목 안으로 넘길 수 없었다. 그는 세월호 아이들이 진도 앞바다 차가운 바닷속에 배와 함께 수장돼 사실상 주검으로 변해가고 있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청와대 관저에서 ‘혼밥’을 즐기며 점심과 저녁 모두 뚝딱 맛있게 먹었다고 하는 청와대 조리사의 전언을 방송을 통해 듣고 나서 부모로서 아무리 대통령의 행동을 이해하려 애써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사용 일주일 후 고열 호흡곤란 증세
부모가 되어 본 사람은 모두 안다.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죽는 슬픔을, 아픔을. 하물며 460g으로 태어나 8개월간 인큐베이터 생활을 하며 기적처럼 그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데 성공한 아이가 퇴원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갑작스레 호흡곤란을 겪다 숨지고 말았다. 의료진조차 손 쓸 틈도 없는 순식간이었다. 2010년 12월 26일이었다. 그래서 고영수씨는 12월이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고통에 몸부림치다 가족 곁을 떠난 딸을 그리워한다. 유독 12월이 되면 온몸이 더욱 아려온다. 마음의 고통은 그 어떤 강력한 진통제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큐베이터에서 갓 나온 딸 혜수를 집에서 엄마가 돌보는 모습. 하지만 한 달도 되지 못해 혜수는 세상을 떠났다. / 고영수씨 제공
고씨 부부는 2008년 3월 첫 아이를 얻었다. 이때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겨울철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기 엄마가 동네 대형마트에서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인 가습기메이트를 발견했다. 이렇게 좋은 상품이 있는 것을 뒤늦게 안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제품은 편리했다. 애경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가운데 하나가 아니던가. 제품에 대한 신뢰가 더욱 갔다. 이 제품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아이를 더 갖고 싶었지만 정상적 방법으로 잘 되지 않아 불임 극복 첨단의학기술인 시험관 아기 시술로 아내가 2009년 12월 임신을 했다. 딸, 아들 이란성 쌍둥이였다.
임신 6개월째이던 2010년 3월 아내가 갑자기 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산부인과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는 산모와 아기가 모두 위험할 수 있다며 조기출산을 권했다. 어쩔 수 없이 강제출산을 했다. 이 과정에서 남자아기는 죽었다. 딸아기는 아기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았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아기였지만 고씨 부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자식이었다. 이미 한 아기를 잃고 난 뒤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때부터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병원 의료진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아기는 잘 견뎌내며 생명을 이어갔다. 인큐베이터 생활을 8개월 만에 청산했다. 아기는 완벽한 상태가 아니었지만 12월 2일 퇴원해 고씨의 아버지 집 방 한 칸에서 부부, 큰 아이, 갓난아기 네 명이 옹기종기 지냈다. 추운 겨울이라 창문은 모두 비닐로 밀봉해 바람을 막았다. 당시 가습기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를 24시간 사용했다.
일주일 뒤부터 아기에게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났다. 아기를 낳은 대학병원을 다시 가야 했다. 의료진은 신생아호흡중후군이란 진단을 내렸다.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난 뒤 아기는 다시 콧물과 고열을 동반한 괴이한 증세에 시달렸다. 친자식처럼 돌봐주던 여의사는 아무래도 아기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내렸다. 의사는 원인을 잘 몰랐다. 그냥 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폐가 급속히 굳어간다고 말했다. “선생님! 이유라도 알고 싶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의사는 어두운 얼굴을 한 채 말없이 그냥 걸어갔다. 불안이 엄습했다. 아기의 핏속 산소포화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숨을 쉬던 아기는 누가 보아도 숨쉬기 어려워하며 고통에 가득 찬 모습을 했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날이 아니라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날이었다. 마지막 고통의 날을 보낸 뒤 12월 26일 아기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사망진단서 사인(死因)란에는 급성호흡기증후군이란,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의학용어만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혜수는 그렇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한 형제 곁으로 황망하게 갔다.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2011년 가을 어느 날 누나가 고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조금 전 한 방송 심층프로그램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루었는데, 이 프로그램에 나와 피해를 증언하는 사람들의 사례가 혜수가 겪었던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했다. 그 프로그램을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그때부터 질병관리본부에 연락도 하고 관련 의무기록도 떼어서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허망했다. 피해 판정을 하는 데 필요한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인큐베이터 생활을 오랫동안 하고 그 생활을 청산한 지 불과 20일 남짓 만에 심각한 증상이 생겨 일주일여 만에 숨졌기 때문에 판정에 필요하다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폐 조직검사를 할 겨를도, 할 수도 없었다. 죽은 혜수뿐만 아니라 본인과 아내, 지금은 아홉 살이 된 아들 모두 정부의 조사 판정을 받았다. 부인은 3단계, 아이와 고씨는 각각 4단계 판정을 받았다.
고씨는 올 봄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여름에는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와 청문회까지 열리자 혜수의 억울한 죽음과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요즘에는 그 기대를 사실상 접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 3·4단계 피해자 구제 문제를 전향적으로 재검토하거나 중증 폐손상 이외에 비염 등 다른 질환 등에 대해서도 인정기준 범위에 포함시키는 결정이 내려지면 혹 모를까.
고씨는 요즘 부인과 아들이 늘 비염을 달고 살아 가족 건강이 무척 신경 쓰인다. 특히 아내는 심장이 좋지 않아 혹 이것도 가습기 살균제 노출 때문이 아닌지 걱정된다. 아내는 얼마 전부터 왼쪽으로 누워 잠을 자지 못한다. 왼쪽으로 누우면 심장 압박감과 함께 심장이 죄는 듯한 이상 증상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오른쪽으로 누워 자고 있다.
2010년 8개월간의 인큐베이터 치료를 끝내고 퇴원한 혜수가 집으로 와 오빠(지금은 9살) 곁에 누워 있는 모습. 오누이의 꿈을 가습기살균제가 앗아갔다. / 고영수씨 제공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65만개 판매
정부는 3단계 피해 판정자에 대해서는 피해구제금 지원 등은 전혀 해주지 않지만 건강모니터링 대상으로는 지정해주어 1년에 한두 차례 가습기 살균제 질환 모니터링 지정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 가서 상담과 검진을 받는다. 이곳에서 의사들에게 흉통과 가슴 압박 등을 호소하면 의료진의 대답은 한결같다. “우리는 폐만 봅니다. 심장 쪽을 보고 싶으면 개인적으로 비용을 내고 정식 진료 신청을 해서 보세요.” 3단계와 4단계는 이처럼 늘 찬밥 신세다.
고씨가 사용했던 애경의 가습기메이트는 옥시레킷벤키저가 내놓았던 PHMG 성분의 구아니딘 계열(여기에는 PGH도 포함)과는 전혀 다른 계통의 화학물질인 염화메틸이소티아졸론·메틸이소티아졸론(CMIT·MIT)을 살균 성분으로 집어넣어 만들어진 제품이다. 1994년 ㈜유공(지금의 에스케이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효시인 ‘가습기메이트’를 내놓았을 때 사용했던 바로 그 성분이다. 이 유공 제품은 그 후 10년간 팔렸고 2002년부터 애경이 같은 이름의 제품을 내놓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화학성분 계열의 가습기 살균제 가운데 절대다수가 애경 제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씨처럼 애경 하면 믿을 만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선전도 한몫했으리라 본다. 애경은 2002년부터 판매 중단을 당한 2011년까지 165만개를 팔았고, 이어 이마트가 이 성분의 자체상표제품(PB)을 35만개 팔았다. 이밖에도 헨켈(가습기 한 번에 싹), 다이소, GS리테일 등이 상대적으로 소량인 1만~3만개 정도를 2007~2011년에 판매했다.
CMIT·MIT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는 구아니딘 계열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에 견주어 현재까지는 사망을 포함한 심각한 피해자를 양산하지는 않았다. 판매량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탓도 있지만 독성도 상대적으로 덜 치명적이었던 게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가 일으킨 피해의 전체 그림은 피해 판정이 아직 절대다수에 대해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 이 성분의 독성과 질환 유발에 대한 인과관계 연구가 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뉴가습기당번과 희생된 아이.
가습기 살균제는 대부분 대기업과 다국적기업들이 한국에서 만들어 판 제품들이다. 국내 기업들 중 SK케미칼(SK), 롯데마트(롯데), 이마트(신세계), 홈플러스(삼성), LG생활건강(LG), GS리테일(GS) 등 모두 손가락 안에 드는 그룹들이다. 옥시, 애경, 다이소와 같은 기업들은 대기업이라고 할 수 없지만 해당 분야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다. 세퓨, 엔위드를 만든 클라나다, 가습기클린업을 만든 글로엔앰 정도가 인지도 없는 중소기업에 속한다. 외국계 다국적기업들로는 영국의 레킷벤키저, 영국의 테스코(홈플러스), 아일랜드의 메덴텍(엔위드), 독일의 헨켈, 일본의 다이소, 미국의 코스트코, 덴마크의 케톡스(세퓨 원료)가 있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SK케미칼(당시 유공)이 처음 만들어 판매한 이후 2011년 11월 11일 정부의 강제 리콜 결정까지 모두 24개의 제품이 판매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성분이 달라지거나 판매사가 달라지면 다른 제품으로 분류) 제품별 판매 시작연도를 기준으로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4년 유공(현 SK케미칼)이 CMIT/MIT를 살균성분으로 한 ‘가습기메이트’ 제품을 만들어 2001년까지 8년간 직접 판매했다.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다. 1년 뒤인 1995년에 옥시(당시 동양화학 계열사)가 프리벤톨R80 살균성분으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만들어 2000년까지 6년 동안 팔았다. 2001년에 옥시가 영국 회사 레킷벤키저에 넘어갔고, 옥시레킷벤키저는 살균성분을 PHMG로 바꾸고 ‘뉴가습기당번’을 만들어 2011년까지 11년간 415만4000개를 팔았다.
옥시 제품이 나온 지 2년 뒤인 1997년에 세 번째와 네 번째 제품이 나왔다. LG생활건강이 BKC&Tego51이라는 살균성분으로 ‘119가습기세균제거’ 제품을 7년간 판매했다. LG제품은 2016년 초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었는데, 2003년 판매부진을 이유로 제조를 중단했기 때문이지만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아 2016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비도덕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애경이 CMIT/MIT 성분의 ‘파란하늘맑은가습기’라는 제품을 만들어 3년간 7만5000개 팔았고, 2002년부터 SK의 ‘가습기메이트’를 넘겨받아 10년간 165만3000개를 팔았다.
2003~2009년 7년 동안 1~2년마다 18개의 제품들이 앞다투어 출시됐다. 2003년에 대형마트로서는 처음으로 롯데마트가 PHMG 살균성분으로 ‘와이즐렉’(wise selection)이라는 이름의 자체 PB상품을 만들어 2011년까지 9년 동안 6만8000개를 팔았다. 2년 뒤인 2005년에 홈플러스가 PHMG 성분의 PB상품을 만들어 2011년까지 7년간 30만개를 팔았다. 2005년에는 클라나드가 아일랜드에서 수입한 정제형(알약) 가습기 살균제 ‘엔위드’가 2011년까지 7년간 14만1000개 팔렸다. 2006년에는 이마트가 CMIT/MIT를 성분으로 한 ‘이플러스’ PB상품을 애경으로부터 공급받아 2011년까지 6년 동안 35만7000개 팔았다. 2007년에는 GS리테일의 PB상품 ‘함박웃음’ 1만1000개, 다이소의 PB상품 ‘산도깨비’ 2만7000개, 살충제 홈키파로 유명한 독일회사 헨켈의 ‘가습기싹’ 1만1000개, 매장 판매로는 코스트코에서만 판매된 ‘가습기클린업’ 8만개가 2011년까지 각각 판매됐다. 2009년에도 4종류의 가습기 살균제가 새롭게 출시됐다. PGH를 살균성분으로 한 ‘세퓨’(1만7000개)를 버터플라이이팩트가 만들어 팔았다. ‘아토오가닉’도 PGH가 살균성분인 제품이다. ‘아토세이프’라는 이름의 제품도 출시되었다. 소개한 제품 중 엔위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액상제품이다. 엔위드 이외의 고체상 제품이 3개 더 있는데, 옥시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23만2000개를 팔았고, ‘가습기살균볼’이라는 제품이 5만6000개 팔렸으며, 2009년에 출시된 ‘가습기항균볼’이라는 제품도 있다. 이밖에 한국까르푸의 ‘가습기 세정제’, 연희산업의 ‘닥터OK안전가습’, 신희의 ‘홈워시 가습기세정제’, 맑은나라의 ‘맑은나라 가습기살균제’, 써브라임의 ‘써브라임 한방 가습기보충액’ 등 5개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지만 판매시기와 판매량, 살균성분 등의 구체적인 제품정보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