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정치 그 자체만으로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수 없다. 반드시 그 에너지를 결집시키고 구체화하며 제도로 안착시키는 기나긴 개혁 과정이 필요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녹색이라는 용어를 망쳐놓았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신뢰와 원칙이라는 용어를 망쳐놓았다. 상당수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신뢰할 만한 사람, 원칙을 지키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신뢰는 비선실세와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소수의 측근들 사이에서만 지켜지는 것이었다. 원칙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으며, 특혜를 매개로 수많은 뇌물이 오고 갔다. 신뢰와 원칙이 이렇게 왜곡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말도 믿을 수 없고, 동시에 어떤 말도 믿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 공공성이라든가 정의의 가치는 자리 잡을 수 없고, 모두가 사적인 이익을 탐닉하는 각자도생의 생지옥이 펼쳐지게 될 수도 있다.
제도권 정치와 광장의 정치, 협력 전략 필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다행히, 많은 국민들은 각자도생의 길보다는 공공성의 가치를 회복하는 집단행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0대를 비롯한 미래세대가 광장으로 몰려나와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하게 되면서 향후 우리 사회의 귀중한 정치적 자산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광장 정치 그 자체만으로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수 없다. 반드시 그 에너지를 결집시키고 구체화하며 제도로 안착시키는 기나긴 개혁 과정이 필요하다. 제도권 정치와 광장의 정치가 협력하는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제도권 정치에서는 기성 정치인들이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단합된 결집력으로 대통령 퇴진 이후의 정치 일정에 대해 합의를 해야 한다. 동시에 광장 정치는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민의를 수렴하는 동시에 제도권 정치가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견고하게 견인해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의 대외적 신뢰도와 국가 경쟁력은 최악으로 치닫게 되고, 더 심할 경우 군사적 위기상황이 올 수도 있다.
11월 29일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세 번째 대국민 담화는, 비록 대국민이라는 표현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특정한 청중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비박계 새누리당 의원들, 다음으로는 나머지 새누리당 의원들과 야당 의원들을 겨냥한 것이다. 얼핏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국회에 더 많은 분열을 일으켜 개헌을 앞세운 사이비 개혁 프레임을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헌을 이야기하지 않는 세력들은 졸지에 반개혁 세력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엉겁결에 개헌 구도에 갇히게 되면 정치체제의 실질적 개혁은 실종되고, 현재처럼 보수세력 기반의 다수당 지배체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촛불 민심에서 드러난 민주적 개혁의지를 철저하게 배신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난 1987년처럼 말이다. 야당은 대통령의 꼼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촛불 민심을 믿고 의연한 행보를 보여야 한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정치체제 개혁의 핵심은 권력의 분산과 실질적인 시민 참여가 보장되는 투명한 정치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최우선 과제는 선거제도의 개편이다. 선거제도의 개혁 방향은 소수의 목소리도 충실히 대변하는 다당제로의 전환이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편하는 것이다. 굳이 처음부터 논의할 필요도 없다. 2015년 2월, 중앙선관위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는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 안을 토대로 논의를 시작해도 된다. 또한 선거 가능 연령을 현재보다 더 낮추는 문제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이미 10대들의 정치적 역량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지금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이 이루어진 후의 중기적 과제는 검찰과 언론, 그리고 재벌의 대대적 혁신이다. 우선 검찰의 개혁이 급하다. 검찰을 중립적이고 독립적이며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자랑스러운 공적 기구로 거듭나게 만들어야 한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검찰에 대한 견제가 가능한 수단들을 마련해야 한다. 언론도 객관성과 공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언론도 다시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작동할 수 있도록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재벌들의 개혁은 오랜 숙원 사업이다. 경제개발 초기의 효율적 구조일 수도 있었던 재벌 위주의 경제운용 시스템은 이미 수명을 다했고, 오히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목격했듯이 정경유착으로 시장경제를 왜곡시키고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경제논리, 그것도 천박한 경제성장 제일주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사회의 원리가 경제운용 과정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경제구조가 개편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헌법에 어떤 가치를 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우리나라의 기득권들이 얼마나 지대추구적인 이해집단인지, 규칙과 시스템을 마음대로 위반하고, 대중들을 개·돼지처럼 무시해 왔는지 드러났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에 살면서 존재가치를 자유롭게 꽃피울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권리를 존중할 의무도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고, 어떤 권리가 다른 권리보다 더 존중받아야 하는지, 어떤 것을 목표로 사회가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논의의 결과가 헌법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에서 신자유주의와 발전주의 담론에 대항하는 가치로서 ‘부엔 비비르’(좋은 삶과 자연의 권리)라는 개념을 헌법에 명시한 사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직 소유의 크기로만 존재를 증명하는 폭력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 이외에 수많은 다양한 가치들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도록 격려해줄 수 있는 가치가 바로 부엔 비비르이다. 이것을 헌법에 명시했다는 것은 그 나라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화해를 추구하고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준다. 이것에 대해 “그 나라들 경제적으로 못 살지 않나?”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아직 ‘경제성장 제일주의’ 종교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여전히 존재의 결핍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과 다르게 살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장·한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