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람들, 그 부끄러움의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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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사람들, 그 부끄러움의 결핍

입력 2016.11.28 17:01

[비상식의 사회]박근혜 사람들, 그 부끄러움의 결핍

청와대 안에서 범죄를 은폐하고 범인을 보호하는 데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여, 이제 두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그곳에서 나오라. 국민에게 항복하라.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은 에덴동산에 사는 인간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아담과 여자는 선악과(善惡果)를 따먹는 죄를 저지른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고, 벗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무화과 잎을 엮어 부끄러운 알몸을 가리게 된다.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는 죄를 지었지만, 그럼으로써 선과 악을 구분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지혜를 갖게 되는 역설이 생겨난다. 그 이후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가 되었다.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그런데 자신이 벌거벗겨지고 있는데도, 그래서 자신의 치부가 온 세상에 드러나고 있는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박근혜다. 차마 어디 가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엽기적인 그의 행동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조차 결여된 최순실이라는 절친이 그의 둘도 없는 국정 파트너였다. 우리가 이제야 알게 된 박근혜 정권은 ‘최순실에 의한, 최순실을 위한, 최순실의 정권’이었다. 2012년 12월에 국민은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그는 자신의 권력을 최순실이라는 친구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형편없는 친구에게.

치부가 드러나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

대통령은 최순실을 위해 재벌 총수들을 만나 돈을 내라고 강요했고,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친구 아빠에게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대기업에 압력을 넣었다. 대통령이 친구, 그리고 그 ‘친구 딸의 친구의 아빠’를 위한 브로커가 된 셈이다. 이 믿겨지지 않는 실화는 대한민국을 전율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후세의 사극에 두고두고 등장할 영화 같은 스토리다. 촛불을 들고 저 광장에 나온 국민들이 지키고 가꿔온 이 나라가 상식 이하의 대통령에 의해 무너져버린 슬픔을 우리는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참회의 눈물을 흘려도 시원치 않은 대통령은 태연하게 거짓말만 계속하며 국민을 속이려 하고 있다. 최순실에 대한 연설문 유출은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했지만, 기밀문서 유출은 올해 4월까지 계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은 기업인들이 ‘선의의 도움’을 준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자신이 주도하며 재벌 총수들을 독대해 기금 출연을 강요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무엇보다 놀라운 거짓말은 “언제든지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할 각오”라던 약속을 뒤집어 버리고 검찰 조사 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국민 앞에 고개 숙이며 사과하던 그 순간에도 거짓말을 해대며 꼼수만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참 나쁜 대통령이다. 한 야당 의원은 대통령이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라고 되묻더라는 대통령 측근의 말을 전하고 있다. 그럴 법한 것이, 신문에 실린 사진에 나타난 그의 요즘 표정들은 너무도 밝고 환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너희들은 왜 그러고 있느냐는 듯이. 박근혜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어디 대통령 한 사람뿐이겠는가. 아직도 그를 받들어 모시고 있는 청와대 참모들, 그리고 여전히 꼭두각시 노릇만 하고 있는 장관들, 그들 역시 주군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건만 청와대는 대통령의 범죄를 은폐하고 시간을 벌어 어떻게든 임기를 채우려는 꼼수 마련에 매달려 있다. 검찰 조사 거부할 테니 탄핵할 테면 하라고 도리어 소리친다. 나라야 망하든 말든, 오직 대통령만 살리고 보자는 일념에 불타 있다. 나라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이 나라의 청와대를 차지하고 있었다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지금 국민의 눈에 비치는 청와대는 범죄의 소굴과 다를 바 없다. 청와대 안에서 범죄를 은폐하고 범인을 보호하는 데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여, 이제 두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그곳에서 나오라. 국민에게 항복하라.

주군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참모와 장관들

그 대통령 밑에서 일해 왔던 장관들은 또 어떠한가. 평소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 말씀’을 받아 적기에 여념이 없던 장관들은 여전히 여왕에 대한 충성밖에 모른다. 국방부 장관은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밀어붙였고, 교육부 장관은 국정 역사교과서를 예정대로 강행하겠다고 한다. 국민적 논란거리인 사드 배치까지도 오히려 속도를 낸다. 지금처럼 정권의 신뢰가 붕괴되었을 때는 하던 일도 접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거늘, 박근혜 정권의 장관들은 오히려 이 기회를 틈타 민심에 반하는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지금이라도 촛불민심을 대통령에게 바르게 전달해 조기 퇴진하도록 하라”고 일갈했을 때, 고작 “국무회의가 정치판이냐”고 답했던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그들에게도 자식이 있을 것이다. 온 국민에게 손가락질 받는 대통령의 호위대 역할을 하는 아버지가 자식들 세대의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부끄러워할 줄조차 모르기에 더 부끄러운 아버지들이다. 자식들에게조차 부끄러운 그 자리에서 이제는 물러나라.

<플라톤의 대화편> ‘프로타고라스’에는 제우스가 인간에게 정의와 부끄러움을 준 얘기가 나온다. 신들은 세상의 모든 종족들에게 각각 필요한 능력을 배분하고 갖춰주도록 했지만 인간들에게는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이 없어 서로 불의한 짓을 하고, 도로 흩어지고 다시 도륙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인간에게 보내 정의와 부끄러움을 모든 인간들에게 가져다주게 한다. 여기서 정의란 공동체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기준이고, 부끄러움은 그 정의를 지키기 위한 인간 내면적 도덕과도 같은 것이다. 플라톤은 제우스의 얘기를 통해 인간이 공동체를 일구어 나가기 위해서는 부끄러움의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를 파괴하고도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우리 공동체를 파괴시키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에게 명예로운 퇴진을 보장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박근혜뿐만 아니라 그 아래서 부역하며 나라를 망가뜨린 이들의 죄상도 낱낱이 역사에 밝혀 가장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도록 해야 한다. 나쁜 짓 한 사람은 벌을 받는 세상. 그런 상식이 지켜져야 우리의 삶이 더 이상 서럽지 않다. 무너진 정의를 다시 세우는 일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유창선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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