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소문으로 돌아 단련된다면 그 파급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드디어 거짓의 장막이 걷혔다. 소문 뒤에 가려진 진실과 마주하고 난 뒤, 우리가 받아든 허망함과 허탈함은 분노나 절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무엇을 쓰기도 생각을 정리하기도 힘든 시절이다. 흔히 집단우울증에 빠진 대한민국이란 표현을 쓰는데, 그 말을 보거나 들을 때마다 현재의 상항을 너무 피상적이고 안일하게만 표현하는 것 같아 불만이 일곤 했다. 말이나 글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지만 거짓을 가리기 위해서도 사용되는 것이다. 언론은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존재하지만 거짓을 감추기 위해서도 존립한다. 우리들이 정말 우울한 것은 이제 우리에게 다가오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말과 글이 쏟아져 나온 몇 주, 정치·사회·문화 할 것 없이 그간 가려져 있던 진실이 폭로되었고 그 틈에 또 다른 거짓은 몸을 감추고 진실에 끼어 흘러 다녔다.
술자리 안주로 씹었던 ‘그렇다더라’
하나가 진실일 때 뒤에 숨은 하나의 거짓을 우리 스스로 알아채야만 했다. 그 말은 결국 아무것도 믿을 게 못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밝혀진 하나의 진실보다 그 뒤에 숨은 하나의 거짓이 언젠가는 더 큰 상처와 상실감을 몰고 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수많은 거짓말을 진실처럼 뿜어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거짓 하나를 감추기 위해 소중한 진실 여러 개로 장막을 치는 말의 위용을 어쩔 수 없이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진실한 법의 테두리나 소중하게 일구어온 민주적 가치가 두 정권을 지나며 몇몇 사람들에 의해 철저하게 유리되고 붕괴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믿을 게 남아있긴 한 것인가, 낭패감에 말을 잇기가 힘들 지경이다.
최순실씨 관련 보도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 필자는 가깝게 지내는 한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받은 충격이 대단한 것 같았다. 통화를 하는 내내 분노와 황당함과 절망감이 뒤섞여 있었다. 전화를 건 요지는 올 초 만난 자리에서 현재 밝혀진 최순실씨 관련한 내용을 내가 미리 얘기했었다는 것인데, 어떻게 그게 진짜일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얘기를 했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흘러 다니는 황당한 이야기, 떠다니는 가십을 술자리 안주삼아 한 얘기였을 것이다.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모두가 ‘그렇다더라’였다. 지나놓고 보니 ‘그렇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으니 아무 생각 없이 술자리 안주로 씹었던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믿었다면 아무도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내가 썼던 한 단편의 제목이다. 그 소설은 거짓이 사람들의 말에서 말로 돌고 돌아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냈을 때 감춰진 진실의 끔찍함 같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쓴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내 입으로 떠도는 소문을 부려놓고서도 그게 진실일 때 마주한 당황함과 절망감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소문이 오랫동안 단련된다면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서사(거짓말)라고 부를 수는 있을지언정 진실이나 사실이라고 말하긴 힘들지 않던가.
진실이 소문으로 돌아 단련된다면 그 파급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드디어 거짓의 장막이 걷혔다. 소문 뒤에 가려진 진실과 마주하고 난 뒤, 우리가 받아든 허망함과 허탈함은 분노나 절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우리가 소문 빼고 진실이라고 믿었던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시대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소문이 진실이고,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거짓인 시대,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의해 의도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이 봉건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지, 그 많은 정보와 사람들의 눈은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가려져왔던 것인지, 그 모든 것을 아는 모두가 철저하게 입을 봉했던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유추해보면 그 모두는 돈 때문이고 알량한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국민들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최씨 일당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그들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박 대통령이 유일하게 소문 중에 거짓이라고 밝힌 것 하나는 자기가 사이비종교에 빠졌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진짜 사이비종교에 빠졌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나 사이비종교는 사람을 신으로 믿는 것에서 출발한다. 최태민씨나 최순실씨가 벌인 일들은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혹은 인간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인간 박근혜 자체를 지배한 것처럼 느껴진다.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그곳에 가장 크게 몰려 있다. 소문은 그런 사실을 빗대고 있는 게 아닐는지.
사람을 신으로 믿는 이단에 빠진 가족이나 친구를 보아온 사람이 있다면, 거짓의 불구덩이로 자기의 모든 재산과 사회적 관계를 끊고 달려 들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면, 밝혀지고 있는 최씨 일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에서 유사함을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가 오래전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냈다던 그 편지에서도 그것을 읽을 수 있지 않던가. 추론해 볼 때 최태민씨와 최순실씨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인간적인 관계를 넘어선 하나의 종교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최씨 일가가 사이비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으니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의미에서 큰 피해자임에 틀림없다. 연민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허나 그녀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데 너무 큰 문제가 있다. 국민이 받은 상처와 방향설정이 잘못된 국정으로 인한 피해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지경이다. 더구나 최씨 일가가 박 대통령을 활용해 얻어낸 것이 어떤 신념도 아닌 그저 돈뿐이라는 것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새누리당과 대통령을 보좌했던 사람들이 최씨 일가와 그 일당들에게 대통령이 빠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책임 회피를 위한 전혀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다. 그들 또한 최씨 일당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더욱 고약하고 나쁜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통령이 엉뚱한 사이비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대통령이 가진 권한에 빌붙어 국민들을 상대로 삥이나 뜯어먹은 파렴치한들에 불과하다.
그나마 일말의 연민이 박 대통령에게 남아있을 때 대통령은 하야를 결단해야 한다. 친박을 비롯한 새누리당은 사태를 책임질 수 없다면 해체하고 정치에서 손을 떼야만 한다. 그래도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그나마 이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며 더 큰 파국과 실패를 막는 유일한 길이다. 이번에도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고 빠져나가려고만 하는 그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반성과 책임만이 민주주의의 유일신, 국민이라는 신이 말하는 유일한 진리임을 명심하시라.
<백가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