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1000만 관객이 봤다. 충무로에서 1000만 관객 작품은 ‘하늘이 내려준 작품’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작품을 잘 만드는 것으로는 안 되고 시대를 관통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돼지의 왕> <사이비> <창> 등 앞서 사회고발적 애니메이션을 많이 만들었던 연 감독이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 생존해야 할 뿐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의 시대에 당신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고.
별거 중인 석우(공유 분)는 딸 수아의 생일을 맞아 부산행 KTX를 탄다. 엄마를 보고 싶다는 것이 수아가 바라는 생일선물이다.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여자가 이 KTX에 올라탄다. 알고 보니 좀비다. 그녀는 승무원을 물어뜯고 승무원은 승객들을 물어뜯으면서 순식간에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KTX는 대전에서 정차하지만 대전도 이미 좀비에 점령당했다. 남은 것은 부산. KTX는 대구를 향한다. 석우는 딸 수아를 반드시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
부산으로 향하는 KTX는 서울발이다. 부산행은 곧 서울 탈출을 의미한다. 금융위기 이후 낯익어진 ‘탈출’을 의미하는 합성어가 있다. ‘~렉시트(~rexit)’다. 요즘 경제에서 주로 쓰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영화 <부산행>의 다른 이름은 ‘서렉시트’가 될 것 같다.
‘렉시트’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그렉시트(Grexit)다. 그리스(Greece)와 탈출(Exit)의 합성어다.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국가부채로 위기에 빠진 그리스가 유로존 탈퇴를 언급하자 2012년 시티그룹이 보고서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올해는 브렉시트(Brexit)가 회자됐다. 영국을 의미하는 브리튼(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다.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했다. 유럽통합에 회의적인 다른 유럽인들도 자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요구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FN)은 ‘프렉시트(Frexit)’를 주장한다. 브렉시트는 ‘자유를 위한 승리’로, 프랑스도 유럽연합을 탈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넥시트(Nexit) 혹은 네덜렉시트(Netherlexit)도 있다. 네덜란드의 유럽연합 탈퇴다. 네덜란드 반(反)이슬람 극우정당인 자유당이 선거 캠페인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오엑시트(Oexit)는 어딜까? 오스트리아다. 오스트리아의 독일어 표기(Oesterreich)에서 비롯됐다. ‘아웃스트리아(Outstria)’도 종종 쓰인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도 유럽연합 탈퇴 움직임이 있다. 스웨덴의 유럽 탈퇴를 의미하는 스웩시트(Swexit)는 반이민을 내건 스웨덴민주당이 여론을 만들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31%가 지지했다. 핀란드의 유럽연합 탈퇴는 픽시트(Fixit)라 부른다. 덴마크 국민당은 덱시트(Dexit)를 요구하고 있다. 체식트(Czexit)도 있다. 체코의 유럽연합 탈퇴다. 체코 총리는 영국이 EU를 탈퇴할 경우 체코도 탈퇴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렉시트(Italexit) 요구가 나온다.
‘렉시트’는 정치분야로도 확대됐다. 투렉시트(Turexit)는 터키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를 의미한다. 터키 정부가 실패한 쿠데타 세력을 숙청하면서 미국은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는 국가는 나토에서 내보내겠다”고 말했다. ‘첵시트’(CHexit)’는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떠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필리핀 등 남중국해 갈등을 빚고 있는 국가들이 주장한다.
극도로 이기적인 인물인 석우는 펀드매니저다. 좀비 바이러스도 석우가 밀고 있는 작전주와 관련이 있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인물로 금융인을 선정한 것은 금융의 탐욕을 지적하려는 감독의 메타포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