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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국가와 불안한 국민

입력 2016.10.17 18:03

[비상식의 사회]무능한 국가와 불안한 국민

예전에야 몰랐다고 쳐도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보고서를 받고서도 어떻게 위험한 활성단층이 있는 곳에 새로운 핵발전소를 계속 짓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이제 한국 사회에는 위기의 물결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만연한 것 같다. 물론 각자의 입장에 따라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를 수익모델로 생각하고 국토건 경제건 마음껏 농단했던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국가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박근혜 정부는 국가의 위기를 수습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발표하는 대책이라고는 국민들의 정신무장 강화에 맞춰져 있고, 실질적이거나 전문적인 대책은 극소수 정책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세계 11위였던 국가 경쟁력은 이번 정부에 들어서 26위로 추락하였다. 더욱 더 나쁜 것은 이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고, 비위를 옹호하며,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진 관련 아무런 대책 못 내놓는 정부

우리는 아직 세월호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왜 정부는 그 많은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을까?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은 왜 이다지도 오랫동안 규명되지 않는 것일까? 우병우 수석의 비위사실이 이렇게 모두 드러났는데도 대통령은 왜 그를 내치지 못하는 것일까? 보수층에서조차도 창피할 정도로 파렴치한 짓을 한 사람을 왜 기어이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일까? 방산비리는 또 어떤가? 불량방탄복 납품비리,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개발비리, 해군 해상헬기 ‘와일드캣’ 도입비리,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비리, 군 침대 교체사업 의혹 등 방산비리와 군납비리 의혹도 어마어마하게 많은데도 그걸 제쳐두고 국감장에서 한 방송인의 발언을 문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대통령과 친한 사이라고 해도 그냥 일반인에 불과한 사람이, 어떻게 재벌들의 돈을 800억원이나 순식간에 동원해서 재단 두 개를, 그것도 하루 만에 만들어내는 과정에 개입할 수 있을까? 이미 전경련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에서 청와대의 압력으로 기업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출연했다는 볼멘소리를 사설로 발표하기도 했지만, 청와대는 왜 모르쇠로 일관하는가? 집회 과정에서 명백한 국가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사람에게 왜 국정 책임자는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는 것일까? 심지어 비디오로도 명백히 드러나 있는 사인을 밝히기 위해 시신을 부검을 하겠다니? 이게 과연 문명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대규모 지진과 관련해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그저 묵묵부답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그야말로 절망하게 된다. 생전 처음 규모 5.8의 강진을 경험한 경주 시민들은 지금 패닉상태에 빠져 있다. 지진 경보가 무려 9분, 14분 뒤에 울린 것도 황당한 일이고, 그 이후에도 400번 넘게 크고 작은 지진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어떻게 하라는 지시도 없고, 매뉴얼을 만들어주지도 않고 있다. 그저 한 일이라고는 재난지역을 선포해서 돈을 지원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그러니 시민들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 그리고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고립감 속에서 매일매일을 버티고 있다. 이 지진이 여진인지, 아니면 더 큰 지진이 닥칠 전조인지도 알 수가 없으니 시민들이 느끼는 초조함과 불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들의 불안감과 공포를 더 가중시키는 것은 지진이 일어난 지역 주변에 핵발전소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2009년 지질자원연구소에 의뢰해서 활성단층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고, 2012년에 보고서가 완성되었지만 비공개로 했다. 이번에 한 언론사에서 보고서를 입수해서 검토한 결과에 의하면 영남권의 양산단층대, 그리고 수도권의 추가령단층대는 1등급으로 분류되는 활성단층대라고 한다. 2011년 소방방재청 방재연구소가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의하면 수도권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나면 11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규모 7.0의 지진이 날 경우는 서울·경기·인천을 비롯해 전국에서 67만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보고서를 받고서도 어떻게 위험한 활성단층이 있는 곳에 새로운 핵발전소를 계속 짓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주무 장관은 신고리 5·6호기를 건설하지 않으면 전력수급에 차질이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원전 마피아의 이득이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게다가 이번 진앙지에서 불과 25㎞ 떨어진 월성 1호기의 경우는 수명을 연장하는 과정에서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의 운전을 더 연장해도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진이나 해일, 화재 등 중대 사고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야 한다. 그런데, 월성1호기의 설계도면이 없어져서 다른 2·3·4호기의 관련 수치를 썼고, 이것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그대로 통과시켜줬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한수원 측은 뒤늦게 월성1호기 설계문서를 찾아 테스트를 다시 했다고 밝혔지만, 그 결과는 민간검증 대상에서 제외됐고, 일반에도 비공개 상태이다.

월성 원전 반경 30㎞ 안에 380만명 거주

안전한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는 오래된 원전이 밀집되어 있는 데다가, 후쿠시마 사고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너무나 공포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경우는 4기의 사고였고, 반경 30㎞ 이내의 인구도 20만명 정도였다. 그러나 고리, 월성 원전을 생각해보면 반경 30㎞ 안에 무려 380만명이 살고 있다. 만일 지진으로 인해 핵발전소 사고가 난다면 이 사람들이 어디로 피난을 간다는 말인가? 피난 가는 길에 먹을 식량과 물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전기와 가스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다친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피난 갈 지역과 건물은 있는가? 피난 간 지역 사람들과는 갈등이 없을까? 세월호의 300명이 좀 넘는 사람들도 구조하지 못한 국가가 380만명을 어떻게 구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냥 대통령의 말처럼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각자 마음가짐을 굳건히 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에겐 각자도생의 방법밖에는 남아있지 않는 것일까?

불길한 소식도 전해진다. 핵실험을 빌미로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데 우리 정부도 가담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난마처럼 얽힌 모든 문제를 전쟁으로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일까? 만일 그렇다면 이건 대형 지진 그 이상의 공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 전쟁난민 신세가 되고, 그때의 각자도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참혹할 것이다. 이런 위험한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상헌 한신대학교 교수·녹색전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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