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헌책방에서 듣던 ‘침묵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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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헌책방에서 듣던 ‘침묵의 소리’

입력 2016.10.04 15:59

그 노래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다. 지지직거리는 신호들 사이로 배어나오던 쓸쓸하면서도 격조 있는 노래이자 시였던 그것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아꼈다가 조금씩 듣는다.

오래전, 아주 어렸을 때, 허기가 졌을 때, 읽고 싶은 책은 많았지만 용돈이 궁하여 늘 문자에 허기가 졌을 때, 나는 헌책방에서 아예 살았다. 그 무렵의 풍경대로 어떤 가게든 인심이 그리 야박하지 않았고, 특히 책을 읽겠다고 하면 심지어 한두 권 훔쳐가도 단단히 혼을 낼지언정 도둑놈 취급하는 일은 없었으므로, 꼬마아이가 상태에 따라 200원도 하고 300원도 하는 삼중당 문고 중에 몇 권을 놓고 어느 것을 살지 고민하는 것을 본 주인들은 그 어느 것도 고르지 못하여 아예 그 중 한 권은 구석에 앉아 급하게라도 다 읽고 가는 것은 모른 체했다.

서울의 미아역 4호선에서 삼양시장에 이르는 두 갈래의 긴 거리에 있던 대여섯 군데 헌책방 아저씨들이 모두 그리 내게 후의를 베풀었다. 지금에 이르러 이렇게 서권이라도 뒤적이고 옹색한 재주를 피워 몇 마디 문자를 섞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주인 아저씨들 덕분이었다.

신촌기차역 부근의 시집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

신촌기차역 부근의 시집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

생활의 소음 삼아 켜둔 낡은 라디오
그 중 한 군데, 신일고등학교 맞은편의 큰길로 접어들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헌책방 아저씨는 라디오를 틀어놓곤 했다. 라디오의 주파수는 늘 고정이었다. 오래된 라디오, 제 몸집보다 더 큰 대형건전지에 오히려 고무줄로 묶여 있던 그 라디오, 그 낡은 라디오에서는 마치 헌책방이니 당연히 이런 정도의 구색은 되어야 한다는 듯 한숨처럼 소리를 뱉어냈다. 아저씨가 주파수 다이얼을 돌리지 않는 것은 그러면 그럴수록 그 한숨이 더 짙어지고 갈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의 채널에 늘 고정되었는데, 뉴스도 나오고 생활정보도 나오고, 그러다가 잊을 만하면 음악도 나오곤 했다. 나는 어렸기에 그 채널이 지금의 KBS인지 MBC인지 음악전문 채널인지 알지 못했다.

라디오에는 그마나 희미한 주파수를 제대로 잡기 위하여 안테나가 달려 있었는데, 그마저도 오래된 탓에 팽창하는 대각선의 힘으로 저 허공의 신호를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자주 고개를 떨구었다. 아저씨는 그 놈을 비닐테이프로 감아서 산더미 같은 책 위로 얹어놓았는데, 나로서는 그 안테나를 건드리지 않는 게 반드시 주의해야 할 의무였다. 그 안테나가 몸을 기대고 있는 서가에서 한수산의 책을 꺼내다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아저씨가 다시 테이프로 고정하고 주파수를 찾고 겨우 소리가 다시 새어나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실수 탓인지, 그 후로 그 라디오의 소리는 늙은이의 해소기침처럼 메마르게 들렸다.

그러던 어느 스산한 바람이 불던 가을날, 나는 책을 읽다가 졸다가 다른 책이 없나, 그러다가 주인 아저씨가 마침 자리를 비운 터라 라디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녀석은 왜 맨날 같은 채널에서 비슷한 소리나 낼까, 그런 생각에 가만히 다이얼을 잡고 좌우로 조금 움직여 보았다. 다시 그 자리에 오기 위하여 눈금과 숫자를 먼저 익힌 후 서가 방향 왼쪽으로 두어 번을 돌려보고 창쪽 반대 방향으로도 돌려보았는데, 기특하게도 라디오는 그 무렵 송출되던 거의 모든 방송을, 비록 한숨에 가깝지만, 다 제대로 들려주고 있었다. 아저씨가 그저 한 채널에만 고정해 두고, 반드시 뭔가를 듣기보다는, 일부러 생활의 소음 삼아 켜둔 노릇이었다.

아마 그 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증인도 없는 지금에 이르러 근사한 거짓과 낭만적인 기억의 재구성으로, 그때 딱 마침 운명처럼 어느 채널에서 어느 음악이 나왔다, 예컨대 슈베르트를 그때 들었고 전인권을 그때 들었다, 이렇게 말한다면 명백한 거짓이다. 몇 번 다이얼을 돌리다가 제자리에 고정시켜 두고 나는 읽다만 책을 읽으러 갔다. 아저씨의 녹슨 자전거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전후의 어느 날, 생활소음으로 지지직거리는 라디오에서 들려나온 소리, 아니 음악을 잊을 수는 없다. 기타 소리와 2명의 남자가 부르는 나지막한 노래, 실은 내게도 집에 음반이 있어 들어서 알고 봐서 알고 여기저기서 숱하게 들은 노래건만, 그날의 그 순간 헌책방의 낡은 라디오에서 새어나온 노래는 늘 듣던 그 노래가 아닌 듯 들려왔다.

이렇게 헌책방에 대한 추억을 가을이라서 어쩔 수 없이 되새기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건대 일종의 동업자이면서도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서점에 대해 야박한 행동을 더러 했다. 어쩌다 길을 가다가 작은 서점이 있으면 몇 권의 책을 일별해 본 후 큰 서점에 가서 사야지, 마일리지도 적립해뒀는데, 이러고 그냥 나왔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앨범 재킷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앨범 재킷

도서정가제 이후 동네서점들 복귀
다시, 대형 서점에 가서도 그랬다. 시내의 큰 서점을 도서관처럼 이용하고 나서는 몇 권의 리스트를 메모한 후, 인터넷으로 주문해야겠다, 들고가기도 힘든데, 이러면서 그냥 나왔다. 그렇게 해서라도 구매를 하면 좋으련만 어떤 경우에는 중고서점(헌책방이 아니라)에 가서 사기도 했으니, 어찌 서권을 어루만지고 문자로 생계를 잇는 자의 덕행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나의 퇴행과 부실을 그나마 바로잡아준 것이 있으니 도서정가제다. 도서정가제에 대하여 큰 출판사와 작은 출판사의 견해가 다르고 서점마다, 또 출판업계의 관계자들마다 이견이 있어 그 중 어떤 대목은 다시 논의하여 개선의 방향을 잡아야겠으나, 그래도 나 같은 독자들, 구매자들, 소비자들에게 아예 선택의 폭을 확 줄여버린 것은 용단이라고 하겠다. 까짓 몇 푼 하겠느냐, 하겠지만 그래도 마일리지에 무료 배송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가격 후려치기에 휘말려서 최근 몇 해 동안 서점에 가서, 특히 동네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풍경은 사라졌고, 그래서 전국적으로 동네 서점이 폐업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던 중에 도서정가제라도 시행되어 일상의 작은 교차로에서 책을 훑어보고 사서 소중하게 안고 귀가하는 풍경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익숙했던 옛 동네 서점의 복귀도 소중하고 또 젊은 사람들이 문화적 의미와 열망과 생활세계의 소박한 풍요를 위하여 시작한 일종의 문화적 의도가 실린 서점의 의욕적인 출발도 소중하다.

이를테면 상권이 쇠퇴했다고 하는 신촌 이대 일대에 의미 있는 서점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책과 음악과 대화의 저녁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추리소설 전문 서점인 ‘미스터리 유니온’이 있고, 유희경 시인이 파스텔 뮤직이 운영하는 공간 ‘카페 파스텔’에 연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 있다. 강남 선릉에 문을 연 광고 전문가 최인아의 ‘최인아 책방’을 비롯하여 연예인 노홍철이 해방촌에 준비한다는 서점 소식도 들린다. 우리 동네에도 있을까, 궁금한 독자들은 사는 지역으로 서점을 검색하면 반드시 한두 군데 찾아낼 것이다. 내 사는 일산의 백석에는 맥주가 기품 있다는 서점 ‘버티고’가 있다.

이런 풍경은 일차적으로 동네 상권을 살리고 출판사를 살리고 저자들을 살리는 그런 일이지만, 무엇보다 도시 생활자들의 건조하고 권태롭고 진부한 일상에 잔잔하고 아름다운 파문을 일으키는 일이다. 책은 큰 서점에 일부러 나가서 사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택배 상자로 받는 일이 아니라, 해질 무렵 집에 들어가면서 동네 서점에 잠깐 들러 숨을 고르다가 펼쳐 읽는 것이며, 주말에 서점으로 산책을 나가서 한두 시간을 탐미하며 고르는 것임을. 그 아름다운 풍경의 소생이 곳곳에서 조금씩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 내 어릴 적 헌책방에서 들었던 음악이 뭐냐고? 그 노래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다. 지지직거리는 신호들 사이로 배어나오던 쓸쓸하면서도 격조 있는 노래이자 시였던 그것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아꼈다가 조금씩 듣는다.

And the sign said, “The words of the prophets are written on the subway walls and tenement halls.” and whispered in the sounds of silence.
이렇게 쓰여 있었지. ‘예언자들의 말씀은 지하철 벽에, 빈민가 홀에 적혀 있다’고 말이야. 그렇게 ‘침묵의 소리’로 속삭였어.

지금 여러 동네의 소박한 서점들에서도 필경 음악이 흐를 것이고 책을 고르던 사람은 가만히 그 음악을 들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비록 개돼지 같은 비루한 삶이건만, 한 줌의 품위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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