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의 앨범 <Mirror>를 권한다. 나이가 들었으니 젊은이들에게 뭐라도 한마디 해야지, 하는 ‘꼰대’스러운 과욕이 아니라 그냥 그의 몸 속에 오랫동안 배어 있다가 저절로 새어나오는 한숨 같은 소리다.
가을이라, 재즈를 듣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아차, 틀림없이 이런 문장은 낡은 데가 있다. 가을이라서 재즈라니. 낡고도 닳은 냄새가 풍긴다. 그럼에도 굳이 계절을 하나 골라서 음악을 스와핑시킨다면 봄과 여름, 그리고 겨울에도 얼마든지 재즈를 들을 수 있으나 역시 가을! 이런 느낌부터 들지 않을 수 없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창백한 트럼펫, 빌 에반스의 애틋한 피아노, 팻 매스니의 기나긴 여정의 기타, 존 콜트레인의, 아차 존 콜트레인은 예외로 해야겠다. 그는 사시사철의 명장이지만 특히 겨울, 깊은 밤에, 온몸이 뒤틀리는 격렬함으로 위엄 있는 존재다. 그러니 존 콜트레인을 빼고 또 생각해 보자면, 찰스 로이드? 그렇다. 이번 가을에는 찰스 로이드다.
이런 류의 세속적인 분류를 마뜩잖아 하면서도, 그래 어디 한 번 읊어 보라구, 하는 재즈 고수들 중에는 찰스 로이드에 대해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아트 페퍼는? 짐 홀, 덱스터 고든, 에릭 돌피는? 이렇게 반문하는 분에게 답례하자면, 아 물론 나도 몇 해 전이라면 망설였을 텐데 최근 감상한 찰스 로이드의 라이브들! 특히 젊은 피아니스트 제이슨 모랭과 함께한, 프랑스 노르망디 쿠탕스에서 열린 ‘2016 재즈 술레포미에’(JAZZ SOUS LES POMMIERS) 라이브를 들어보시면 틀림없이 생각이 바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찰스 로이드
78살에 ‘2016 재즈 술레포미에’ 무대에 서다
참고로, 프랑스의 이 재즈 축제는 파리에서 서쪽으로, 다시 렌에서 북쪽으로 위치해 있는 영불해협의 작은 마을 쿠탕스에서 열리는 것으로, ‘재즈 술레포미에’는 ‘사과나무 아래에서 재즈’라는 뜻이다. 이 마을, 그리고 이 지역, 즉 노르망디 일대가 사과와 그 과일로 빚은 술로 유명한 데서 착안한 시적인 제목이다. 쿠탕스의 주민은 2만명이 채 안 되는데, 재즈계의 메시나 호날두 같은 사람들이 출몰하는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정식 공연장뿐만 아니라 광장, 성당, 카페 등의 다양한 공간에서 스윙과 즉흥의 재즈가 펼쳐진다는 점이 이채롭다. 페스티벌이 열릴 때면 주민 모두가 주최자이고 관객이고 연주자가 되는 풍경인데, 그 역사가 무려 30여년의 세월이다.
올해의 이 무대에 찰스 로이드가 섰는데, 텔로니우스 몽크 같은 전설의 재즈 위인들을 전면적으로 재해석해 온 젊은 피아니스트 제이슨 모랭이 그 곁을 받쳐줬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 대로 이 피아니스트가 답답한 체증에 막혀 앞길을 영 알 수 없었던 21세기의 재즈를 어떤 방향으로 새 길을 뚫어 오늘의 탁 트인 시야를 확보했는지에 대해서도 쓰고자 한다.
찰스 로이드는 1938년 생이다. 뭐라구? 그렇다. 1938년 생. 곧 여든이다. 이 정도 나이에 자신의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는 사람은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아저씨를 빼고는 금세 떠올리기 어렵다.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나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을 마친 찰스 로이드는 10대 후반부터 재즈 무대에 서기 시작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미국 서부 해안의 독특한 재즈, 즉 시카고의 넘실대는 스윙이나 뉴욕의 강력한 밥 재즈와는 다른, 캘리포니아의 달콤한 바람과 할리우드의 멜랑콜리한 영화산업의 성장에 힘입어 발달한 달콤하고도 멜랑콜리한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기수가 된다. 1963년에는 자기 이름을 딴 4인조 밴드를 구성하여 데뷔작 <Discovery! The Charles Lloyd Quartet>(1964)과 2집 <Of Course, Of Course>(1965) 등으로 재즈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그 후, 찰스 로이드는 갓길로 빠지기 시작한다. 1960년대는 사실 모두가 갓길로 질주하는 시대이긴 했다. 거성 마일스 데이비스를 중심으로 1950년대에 정립된 모던 재즈 스타일이 1960년대라는 용광로에 들어가 처절하게 불타오르면서 천지사방으로 뜨거운 불꽃이 튀어오른 게 1960년대다.
과장하여 말하건대, 1950년대가 냉전이 지배한 음습한 시대였다면, 1960년대는 바로 그 밑에서 신음소리 한 번 제대로 못 내고 성장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학생운동·문화운동·히피운동·인권운동이 펼쳐진 시대였고, 따라서 프리! 곧 형식의 자유와 내용의 자유라는 DNA를 이중나선으로 하여 수만 갈래의 실험이 펼쳐지던 때였다.
마일스 데이비스 자신도 그러했거니와 평소 이 거성과 일정하게 거리를 뒀던 에릭 돌피, 찰스 밍거스, 존 콜트레인 등이 서로가 독립된 별이지만 어쨌거나 ‘프리 재즈’라는 성단으로 묶여서 불리게 되는 흐름을 타고 갓길로 질주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보다는 후배뻘이 되는 찰스 로이드는 특유의 세련된 멜랑콜리에 반 큰술의 슬픔을 더하여 지독하게 우울한 점묘파식 재즈로 달려갔다. 키스 자렛, 잭 드조넷, 론 매클리어 같은 후배들이 찰스 로이드 콰르텟이라는 이름 아래 활동했다. 이때의 활동만으로도 찰스 로이드는 제 이름을 재즈사에 새긴 바가 되었으니 몬트레이 재즈 페스티벌 실황 앨범 <Forest Flower>는 100만장 이상 팔렸고, 1967년에는 재즈 전문지 <다운비트>가 그를 ‘올해의 재즈 아티스트’로 선정했다.
찰스 로이드의 앨범 < 미러. >
1950년대 비밥 재즈의 막차를 탄 사람이면서도 1960년대에는 아방가르드의 길로 갔고, 그 후로도 유럽을 무대로 꾸준히 활동해온 찰스 로이드는 음악예술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지만 끝까지 남는 자가 승리한다고나 할까, 오히려 1990년대 들어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무려 한 시간이 훌쩍 넘는 라이브를 거뜬히 소화하고 있다. 더욱이 그냥 흘러간 옛 스타가 올라와서 지난날의 향수나 슬쩍 버무리는 게 아니라, 힙합을 들으며 성장했으나 무슨 까닭인지 재즈에 이끌려 파격의 타건을 해대는 젊은 아티스트들과 정력적인 경합을 벌인다는 점에서 놀랍다.
아방가르드한 화성 위의 달콤한 연주
복화술이라고나 할까, 다면체라고나 할까? 얼핏 들으면 전형적인 콰르텟 발라드 넘버인데 화성은 놀랍도록 신선하게 갓길로 빠진다. 무심코 들으면 노장이 ‘난 아직 살아있다’ 하면서 지나치게 과시적인 연주를 하는 듯한데, 가만히 들어보면 평생을 관류해온 젊은 날의 밥 스타일이 연주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1999년 작 <Voice In The Night>의 희로애락, 특히 함께 연주한 기타리스트 존 애버크롬비가 경이롭다. 2000년 작 <The Water Is Wide>의 자유자재함, 특히 함께 연주한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노가 섬세하다. 2004년 작 <Which Way Is East>의 깊은 우수, 특히 평생을 함께했던 빌리 히긴즈를 추모하는 마음이 역력한데, 서푼어치 감상에 빠지지 않고, 빌리 히긴즈와 함께했던 음악적 실험의 재현이 놀랍다. 2008년 작 <Rabo De Nube>의 신선함! 늘 새로운, 젊은 세대와 교감을 나눴던 찰스 로이드는 이 시기부터 제이슨 모랭(피아노)과 루벤 로저스(베이스)와 함께하게 되는데, 2007년 스위스 바젤에서 가진 라이브 공연을 담은 이 앨범에서 찰스 로이드는 높은 수준의 명상을 들려준다.
아, 가을이라고 했던가. 잔혹했던 무더위가 사라졌으니 선선한 바람 속으로 산책나갈 시간도 부족한 마당이라, 이 모든 앨범을 되새겨 듣기에는 창밖의 풍경이 아까운 시절이므로 딱 한 장만 골라 본다면, 2010년의 앨범 <Mirror>를 권한다.
찰스 로이드만이 들려줄 수 있는, 아방가르드한 화성 위의 달콤하면서 깊이 있는 연주가 내내 흐른다. 이때 벌써 칠순을 훌쩍 넘긴 찰스 로이드는 ‘Desolation Sound’, ‘The Water Is Wide’, ‘Caroline, No’ 등의 연주에서 한 인간의 생애에 흡착된 사랑과 슬픔과 회한의 감정을 깊디깊은 소리로 들려준다. 나이가 들었으니 젊은이들에게 뭐라도 한마디 해야지, 하는 ‘꼰대’스러운 과욕이 아니라 그냥 그의 몸 속에 오랫동안 배어 있다가 저절로 새어나오는 한숨 같은 소리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하여, 특히 2016년에 그가 프랑스의 작은 마을 쿠탕스에서 제이슨 모랭과 가진 듀오 라이브 영상은 듣자마자, 아니 보자마자 9월의 당신을 11월의 가을로 초대할 것이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