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때와 달리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지진 대비 매뉴얼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내진 설계가 안 된 학교가 지진 피난처인 경우도 많았다. 대통령은 무려 8일 만에 현장을 찾았다.
곰과 돌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곰을 돌로 오인하면 어떻게 될까. 대체로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인류가 곰을 돌로 오인한다면 종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반대로 돌을 곰으로 오인하면 어떻게 될까. 뭐 자주 놀라긴 하겠지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경북 경주 일대에서 진도 5.8의 큰 지진이 났고 수백 차례의 여진이 있었다.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지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다. 마치 곰을 돌로 오인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지진이 나고 있는데 더 이상의 큰 지진은 없을 것이라고 서둘러 말한다. 지진 지역에 위치한 신고리원전 5·6호를 계속 건설하겠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만들어진 국민안전처는 경주지진 재난문자를 제때 보내지 않았다. 지진이 일어난 지역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세월호 때와 달리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지진 대비 매뉴얼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내진설계가 안 된 학교가 지진 피난처인 경우도 많았다. 대통령은 무려 8일 만에 현장을 찾았다.
국민안전처 신설, 달라진 것은 없어
경주 일대에 강진이 난 지 1시간30분 만에 기상청 과장이 나와서 한 말은 놀랍다. “땅 밑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지진 관련 매뉴얼이 미비하다’는 국회의원의 지적에 “매뉴얼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며 “그때그때 사고가 나거나 하면 연구를 통해 대비해서 보완해 나가는 것이지 완성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지진보다 더 무서운 말이다.
안전에 관한 정부의 태도는 비상식을 넘어 몰상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이번 지진에 수십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가정하면 국민안전처는 폐기되고 국가안전처가 신설될지 모른다. 그때의 권고 문자는 이럴까? ‘국가는 안전합니다. 그리 아세요.’”라며 탄식했다. 도대체 정부는 왜 존재하는가. 세월호, 메르스에 이어 이번 지진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정말 우리에겐 각자도생의 지옥 같은 현실만 존재하는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정부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 것, 그리고 이 상황이 방치되는 것은 미래의 안전이 세월호와 같을 것이라는 강력한 암시다.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메르스 때도, 지진 때도 정부는 보이지 않았다.
국민들의 가장 큰 우려는 지진 지역에 집중 배치된 원전의 안전 문제다.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 없이 우리는 원전사고마저 ‘사후약방문’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에 따르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수력원자력이 경주 지진 발생 시 내부 규정을 어기고 4시간 늦게 월성원자력발전소를 수동 정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 의원은 “지진 가속도 값은 그동안 발표해 온 0.0981g로 수동 정지기준(0.1g)을 넘지 않았지만, 응답 스펙트럼 값은 0.426g로 산출되어 해당 주파수대의 수동정지 기준 0.3g을 초과했는데도 이를 은폐한 채 4시간 동안 월성원전에 대한 수동 정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응답 스펙트럼 값은 지진 발생 시 건물이나 설비 등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진동수나 주수)에 따라 흔들리는 값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원전 안전에 대한 이 같은 불감증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 마당에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신규원전 건설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신고리 5·6호 건설 전면 중단해야
이번 9·12 지진은 한반도 지진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뜻한다. 정부는 신고리 5·6호 건설을 전면 중단하고 단층조사를 비롯한 전방위 안전검사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 지진 문제가 원자력 안전 문제로 비화된 지점에 예산을 집중투입해 ‘돌을 곰으로 오인하는 수준’까지 대비해야 한다. 7.0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하지 말고 7.0 지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기준을 대폭 높여서 대비할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성장 일변도의 사회가 쌓아올린 위험의 바벨탑을 과감히 무너뜨리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재원을 우선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재난에 관한 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고 공유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재난안전에 관한 제대로 된 플랫폼도 없는 상태다. 당장 만들어야 한다. 이 플랫폼은 공급자의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수용자, 즉 국민들의 행동 매뉴얼로 짜여져야 한다. 동일본 대지진 때도 그랬지만 이번 지진 때에도 메신저를 비롯한 통신수단이 마비됐고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도 다운됐다. 재난상황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고립이다. 비상시를 대비해 연결 시스템을 확보하고 재난 관련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며 피난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난에 관한 정보를 제때 제대로 공유하지 않으면 괴담과 혼란이 가중되게 마련이다.
샌프란시스코는 ‘SF72.org’라는 재난 안전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재난 발생 이후 72시간 동안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행동지침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전화나 문자메시지 등 기존 통신수단이 두절됐을 때 트위터, 페이스북 등 다른 소셜미디어 채널을 활용하는 방안 등도 담겨 있다. 동일본 대지진 때 한국에서 여행갔던 사람들이 통신수단이 두절됐을 때 트위터로 자신의 안전을 알린 사례는 유명하다. 이 사이트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와 사람들의 연결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나아가 재난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어떤 물품들을 구비해야 하는지, 지진 발생 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비상시에 잠자리는 어떻게 찾을 것인지 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최근 샌프란시스코는 이 사이트의 소스코드를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게 ‘city72’라는 이름으로 공개했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재난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원자력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는 원안위 홈페이지의 동시접속 인원은 150명에 불과하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주변에 원전이 즐비한 이번 경주 지진 때조차 홈페이지가 정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방문자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왜 이럴까. 재난정보조차도 각자 알아서 얻어야 하는 걸까. 9·12 지진이 안전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중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