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적인 소나티네>, <차가운 소곡집>,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변주곡>, <말의 옷차림으로>, <바싹 마른 태아>, <배 모양의 세 개의 곡>, <지나가버린 한때>, <기분 나쁜 자의 왈츠>, <스포츠와 기분 전환>. 과연 제목이라고?
제목을 지으면 절반을 쓴 거와 같다. 소설가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어디 소설가뿐인가, 어떤 학자는 제목을 확정하지 못하면 본문을 전혀 써나가지 못하는 자신만의 기이한 직업병을 하소연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건 뭔가 집단적인 전염병이구나’. 나 역시 그런 편이다. 제목을 짓고 그 아래에 필자 이름을 써놓고 두어 줄 공백을 둔 뒤 첫 문장을 쓰는 편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예 글 쓸 준비가 되지 않은 듯하기 때문이다.
한 줌의 의미도 없는 말의 유희일까
제목! 그것은 하나의 단어로, 단 한 줄로 본문 전체를 압축하여 말하는 것이거니와 때로는 글 그 자체, 작품 그 자체, 작가 그 자체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 강렬한 사례가 한국 현대문학의 고전이 된 최인훈의 <광장>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 관한 에피소드를 떠올려 보자. 이 소설은 해외 여러 나라에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유독 독일어 판이 꽤 지체되어 출판되었다. 독일어로 번역이 다 되었고 출판사도 확정되었으나 무려 5년이나 지나서 출간되었는데, 2002년의 일이다. 이유는 제목, 즉 <광장> 때문이었다. 이 소설을 독일어로 직역하면 ‘Der Platz’다. 더하고 말고 할 게 없는 <광장>은 곧 ‘Der Platz’인 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엄격한 저작권은 같은 제목의 다른 책 발간을 엄금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 이전에 ‘Der Platz’라는 책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제목으로는 출간될 수 없었다. 그래서 5년 동안 양쪽의 출판사와 에이전시와 번역자가 고심하며 토의하고 협상하였다. <남한에는 밀실이 없다> 같은 다른 제목이 제시되거나 일단 ‘Der Platz’라고 하되 그 뒤에 괄호를 이용하여 한글로 ‘광장’이라고 쓰거나 로마자로 ‘Kwangjang’을 덧붙이면 어떠냐 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소설가 최인훈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광장>은 ‘Der Platz’인 것이지 달리 불릴 수 없는 것. 이미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판본들도 다 그 나라의 언어로 <광장>이 되었는데, 유독 독일에서만 군더더기가 붙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 사이에 출판사가 바뀌었는데, 이 출판사는 작가의 뜻을 높이 사서 이전에 같은 제목의 책을 낸 출판사와 저자에게 간곡히 설명하고 설득하여 마침내 작가의 의지대로 <광장>의 독일어판이 ‘Der Platz’로 출간될 수 있었다. 제목이 곧 작품 그 자체임을 웅변하는 사례다.
에릭 사티의 전문 연주자 알도 치콜리니 앨범(왼쪽 사진), 에릭 사티(오른쪽 사진)
그렇다면 이런 제목은 어떤가. <관료적인 소나티네>, <차가운 소곡집>,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변주곡>, <말의 옷차림으로>, <바싹 마른 태아>, <배 모양의 세 개의 곡>, <지나가버린 한때>, <기분 나쁜 자의 왈츠>, <스포츠와 기분 전환>. 과연 제목이라고? 그렇다.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의 클래식 작곡가 에릭 사티의 작품 제목들이다.
사티의 곡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산뜻하면서도 나른한 느낌을 주는 상품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이는 작품으로 <짐노페디>가 있다. ‘짐노페디’는 고대 스파르타의 연중 제전 행사의 하나로, 젊은이들이 나체로 춤추고 노래하면서 신을 찬양한 것, 또는 그 장소를 뜻한다. 사티는 1888년에 이 제목으로 3개의 모음곡을 작곡했다. 사티가 추구한 음악의 목표, 즉 ‘가구 음악’, 다시 말하여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 또는 그 반대로 들리지 않는 듯 들리는, 거실의 탁자나 소파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틀림없이 존재하는, 그런 음악세계의 대표작이다.
이런 작품들을 지으면서 사티는 독특한 제목을 붙였는데 <별난 미녀(La Belle Excentrique)>라는 작품이 두드러진다. 4악장의 각 장별 제목은 ‘위대한 옛날이야기(Grande Ritournelle)’로 시작하여 ‘프랑스 달의 행진(Marche Franco-Lunaire)’, ‘눈에 하는 신비로운 입맞춤의 왈츠(Valse du Mysterieux baiser dans l’oeil)’, ‘큰 사교장의 남자 캉캉 춤(Cancan Grand-Mondain)’으로 이어진다. 대단히 현시적이고 장식적이고 위악적이며 기벽과 악취미가 잔뜩 묻어 있는 제목들인데, 그래도 한 줌의 의미도 없는 말의 유희일 뿐인가. 그렇지는 않다.
물론 그의 ‘악취미’가 후대의 수많은 연주자를 괴롭힌 경우도 있다. <벡사시옹>이라는 곡은 제목 그대로 ‘짜증’ 나는 작품이다. 악보는 겨우 1장 분량이지만, 그가 지시한 보폭에 맞춰 연주하면 대략 13시간40분 정도가 소요된다. 같은 멜로디를 840번이나 반복하도록 지시되어 있기 때문에 연주자나 듣는 사람이 ‘참선 수행’에 이르게 하는 작품이다.
이 곡은 사티 당대에는 연주되지도 않았고, 그가 죽은 지 24년이나 지난 뒤에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가 에릭 사티의 친구로부터 악보를 입수하여 공개했다. 13시간이 넘는 이 단조로운 대곡을 20세기 최고의 전위파 존 케이지도 그로부터 15년이나 지나서야 연주회를 가졌고, 체력적인 부담 때문에 4명의 동료와 함께 연주했다고 한다. 일본의 피아니스트 다카시 유지는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야간열차에서 연주하여 충격을 주었고, 1995년 3월에는 서울대 음대에서 마흔 명이 학생식당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사티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의 기벽과 악취미와 위악의 작품들은 혹시 당대의 어떤 상흔과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드뷔시와 절친했던 사티는 현대의 프랑스 예술계와 사교계의 독특한 인물로, 문인 장 콕토가 평론집 <수탉과 알캉>에서 그의 이름을 거명하며 극찬할 정도로 프랑스 음악의 새로운 대표자였다. 콕토는 유럽 음악의 본산인 독일계 작곡가들의 음악을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들어야 할 음악”이라고 혹평하면서 사티의 음악이야말로 프랑스 정신의 새로운 발현이라고 극찬했다.
‘우산이 젖을까 봐’ 우산 접고 걷는 사람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프랑스에서는 수많은 쉼표와 여림표, 그리고 연주부보다는 휴지부가 더 중요성을 차지하는 사티의 순도 높은 단순성이 그밖의 수많은 비독일계 젊은 문화와 함께 새로운 흐름이 되었다. 패전국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그리고 경제적으로 허약해진 이탈리아에 비해 프랑스 파리는 유럽 각지의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중심지가 되었다. 심지어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예술가들도 속속 파리로 모여들었다.
그야말로 ‘현대 예술’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수많은 실험들이 도처에서 시도되던 때에 사티는 타자기, 호루라기, 권총 따위를 발레 음악 <파라드>에 동원하기도 있고, 신비주의적 비밀단체인 ‘장미십자교단’의 전속 작곡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기존의 모든 종교집단을 버리고 ‘지휘자 예수의 예술 메트로폴리탄 교회’라는 종교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그가 직접 만든 것으로, 회원을 전혀 받지 않아서 그 자신이 교주이자 유일한 신도였다.
사티는 12벌의 회색 벨벳 양복을 마련하여 언제나 똑같이 차려입고 다녔다. 그 중 여섯 벌은 끝내 입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사티는 장대비가 내리는데 ‘우산이 젖을까 봐’ 우산을 들고 태연히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술계의 뛰어난 친구를 깜짝 놀래주려고 맥락 없이 장난이나 치는 섣부른 얼치기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 전후의 프랑스 파리라는 우울하면서도 자유로운 공간에서, 뭔가 거대한 붕괴의 조짐이 느껴지는 낡은 제국의 스산한 밤에, 이곳이 아닌 어떤 곳, 지금의 이 현실이 아닌 투명하면서도 영속적인 세계, 물의 유희와 불의 장난이 어우러지는 고대의 어떤 영원성 속으로 조용히 사멸하고자 했던, 그런 애틋함의 진정성을 가진 사티다.
1925년 7월 1일, 조셉 병원의 낡은 침상에서 간경화를 이기지 못하고 혼자서 쓸쓸히 사망하였을 때, 뒤늦게야 그의 장례를 치른 지인들이 누구도 들어가보지 못한 그의 처소에서 발견한 것은 오래전의 애인 쉬잔 발라동이 그려준 초상화와 한 번도 쓰지 않은 듯한 여러 개의 우산들, 그리고 중세 건물을 스케치한 그림들이 전부였다.
3개의 모음곡 <짐노페디>가 널리 알려졌지만 6개의 모음곡 <그노시엔느> 또한 아침이슬처럼 금세 바스라질 것 같은 투명한 격조와 텅 빈 울림으로 한순간에 우리 내면의 피하지방 깊숙이 온전히 스며드는 곡이다. 이 제목 역시 ‘고대 그노스 사람’ 또는 ‘그노스 사람들의’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아마도 사티는 1차 대전 전후의 파괴된 현실이 아닌 곳으로 음악적 명상을 통해 초월하여 그의 영혼에 정박된 다른 시공간으로 이주하여 살았던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