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그 무리 속에 제가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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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그 무리 속에 제가 있길 바랍니다’

입력 2016.08.30 10:57

그들이 ‘떼창’을 하는 순간 그 곡은 너무도 유명한 노래여서 나는 곧장 그 노래를 따라불렀다. 루이 암스트롱에 의하여 불멸의 재즈 넘버가 된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이었다.

지난주에서 이어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노래들, 그 하이라이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동행한 청소년들은 에든버러에서 4시간 가까이 맨체스터로 남하하는 동안 쉬지 않고 맨유의 역사와 전설을 이야기했다. 한반도를 이륙하여 무려 8800㎞를 날아오는 동안 맨유에 대한 환상과 동경으로 가득찬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여러분.”

나는 심각하게 주의를 줬다. 우리는 지금 올드트래포드로 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이지만 우리의 좌석은 사우스햄튼, 곧 원정 팀이다, 경기장에 가까이 가는 순간부터 우리는 붉은 악마(맨유의 애칭)를 신의 이름으로 단죄하는 ‘성자’(사우스햄튼의 애칭)여야 한다, 만일 누구라도 부주의하여 사우스햄튼 팬들 사이에 서서 맨유를 외쳐부르거나, 맨유가 골을 넣었을 때 환호를 하게 된다면 우리는 성난 군중들에 의하여 ‘관에 실려 귀국하는 수가 있다’(경기장의 폭력사태에 대한 잉글랜드 대표팀 수비수 숄 캠밸의 유명한 말),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는 사우스햄튼이다, 생각해 보라, 맨유의 팬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진정한 축구인이라면 약체 원정팀의 서포터스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과감한 투자로 팀을 재건하라며 구단과 감독을 비난하는 아스널 축구팬들의 모습.

과감한 투자로 팀을 재건하라며 구단과 감독을 비난하는 아스널 축구팬들의 모습.

사우스햄튼 팬들 속에 섞여 노래 부르다
과연 올드트래포드에 가까이 가면서부터 진정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였다. 붉은 악마들의 행렬, 수많은 맨유 팬들의 넘실대는 테스토스테론, 경기장을 압도하는 붉은 기운들. 과연 이런 장소에서 원정 팀을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입장 과정에서부터 철저한 단속이 있었다. 동행한 청소년 중에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기프트숍에 들러 티셔츠를 비롯하여 기념품 몇 개를 벌써 구매하였는데, 안전요원들이 철저한 몸 수색과 가방 수색을 한 끝에 맨유 기념품을 들고는 절대 사우스햄튼 자리로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하였다. 그 친구는 혼자서 멀리 떨어진 물품보관소에 기념품을 맡기고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실로 목숨을 구하는 행동이었다. 사우스햄튼 팬들은 동양의 젊은 녀석들이 과연 자기들을 응원하러 왔을까 아니면 홈팀 좌석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고 또 여분이 남은 원정석에 앉아서 마음속으로 저주받을 맨유를 응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으로 노려보았다.

그러하였으나, 우리가 그들의 팬이 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박지성에 의하여 맨유는 오래전에 한국 축구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팀이 되었고, 에릭 칸토나를 시작으로 스콜스·베컴·호날두·루니 등을 이어 이번 시즌부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뛰기 시작하는가 하면 꽤나 오랫동안 런던의 첼시 감독으로 맨유를 괴롭혀 온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번 시즌부터 지휘봉을 맡았으니 이러한 명성들만으로 맨유를 동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듯 싶지만, 그러나 올드트래포드의 원정팀 응원석, 곧 사우스햄튼의 팬들과 섞이는 순간 실로 1초 만에 우리 모두는 사우스햄튼의 열렬한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노래! 오직 노래 때문이었다. 물론 올드트래포드를 꽉 채운 노래는 맨유 팬들의 우렁찬 합창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울려퍼진 군가를 응용한 그 유명한 노래 ‘Glory glory Man United’가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가운데 작게 잡아도 200여곡이 넘는다는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구단 맨유를 사랑하여 성원하는 팬들의 노래는 수십, 수백 개의 스피커가 동시다발로 작동하는 듯 올드트래포드를 꽉 채웠다. 20세기 중엽 맨유의 최고 전성기를 이뤘던, 그래서 그 동상이 경기장 입구에 늠름히 서 있는 매트 버스비 감독의 이름이 들어간 그 노래가 울려퍼졌다.

Glory! glory, Man United 영광! 영광의 맨유나이티드.
And the reds go marching on! on! on! 붉은 악마들이 나가 싸운다!
Just like the Busby Babes in Days gone by 그 옛날 버스비의 아이들처럼
We’ll keep the Red Flags flying high 우리의 붉은 깃발을 드높여라
You’ve got to see yourself from far and wide 멀고 넓은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라
You’ve got to hear the masses sing with pride 자랑스런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보라

그러나 우리가 자리잡은 서남쪽 서포터스 응원석에서는 저 멀리 런던에서도 아래쪽으로 한참이나 내려가야 하는 햄프셔의 항구에서 올라온 성난 사나이들에 의하여 맨유의 응원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앉지 않았고 아무도 가만 있지 않았다. 모두가 서 있었고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 그들이 ‘떼창’을 하는 순간 그 곡은 너무도 유명한 노래여서 나는 곧장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루이 암스트롱에 의하여 불멸의 재즈 넘버가 된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이었다.

경기 결과는 아쉽게도 맨유의 2대 0 승리
이 단순하고도 흥겨운 행진곡은 사우스햄튼만이 아니라 수많은 팀들이 가사의 ‘Saints’에 자기 팀 이름을 넣어 부르는데, 그러나 그렇게 부를 이유가 없이, 가사 그대로 부르는 팀이 바로 사우스햄튼이다. 앞서 말했듯, 사우스햄튼의 애칭이 ‘Saint’이기 때문이다. 1885년 세인트메리교회 청년들이 사우샘프턴 세인트메리스(Southampton Saint Mary’s)로 창단한 팀이다. 1976년 창단 91년 만에 FA컵 우승을 하였으나 1·2부를 오가는 팀으로 올해 시즌 목표 역시 중위권이다.

Oh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오! 성자들이 행진해 들어갈 때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성자들이 행진해 들어갈 때
Oh lord I want to be in that number 주여 그 무리(선수들) 속에 제가 있길 바랍니다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오! 성자(사우스햄튼)들이 행진해 들어갈 때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나도 불렀다. 이 노래에 익숙지 않은 청소년 몇몇도 금세 이 단순하고도 강렬한 곡에 이끌려 90분 내내 불렀다. 경기 결과는? 아쉽게도 맨유의 2대 0 승리. 패배를 확인한 성자들은 밤 10시가 넘어 이제는 완전히 어둠에 묻힌 올드트래포드의 주차장과 합승차량 대기 장소와 기차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낮은 소리로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 연신 부르면서.

다음날 우리는 레스터로 갔다. 사우스햄튼보다 더 힘겹게, 오랫동안 하위 그룹에 머물면서 2부와 3부리그까지 전전했던 레스터시티가 지난 시즌에 무려 132년 만에 우승을 했다. 그 힘을 느끼기 위하여 갔는데, 상대 팀은 아스널이었고, 우리는 여분의 좌석을 간신히 구해서 원정팀, 즉 아스널 팬들, 이름하여 거너(Gunner)들과 함께 했다. 런던의 아스널 지역은 막강했던 대영제국의 해군 병기창고로 총과 대포를 생산하던 지역이다. 그래서 그 지역과 팬들의 애칭이 거너다.

다인종 다문화에 높은 수준의 교육환경이 있는 레스터는 역시 우아하고 품위 있는 응원 풍경이었다. 팀을 맡은 지 1년도 안 되어 132년 만의 리그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룬 이탈리아 출신 라니에니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말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레스터 팬들이 장중한 노래를 많이 불렀지만, 일당백의 기세로 몰려든 아스널의 거한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채롭게도 그들은 ‘spend fucking money’를 쉬지 않고 외쳤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구단과 감독을 향한 분노의 외침이었다. 과감히 투자를 하고, 가능하다면 감독도 바꾸고, 제발 좀 팀을 재건하라는 소리! 그 소리들과 함께 이따금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 불렀다. 아! 그 분노의 소리들은 격렬했으나, 나는 이미 사우스햄튼의 성난 성자들과 90분 내내 불렀기 때문에 더 이상 기운이 나지 않았다. 아스널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우리는 곧 이륙해야 했다. 축구장의 노래와 더불어 한여름밤의 뜨거운 꿈은 끝났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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