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구단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고 몇 차례에 걸쳐 지지와 연대 의사를 밝힌 것은 진정한 ‘You will never walk alone’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음악을, 안필드의 기록 화면으로 보고 또 들었다.
뉴캐슬! 거친 도시, 거칠고 아름다운 도시, 거칠고 아름답게 축구를 하는 도시!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 축구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데리고 열흘간 순례하는 여정 속에 꼭 방문하고 싶었던 도시 뉴캐슬!
잉글랜드를 북상하며 이동하는 여정이었으므로 먼저 선덜랜드를 들렀는데, 경기가 없는 날이라 선덜랜드의 그 위대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저 너머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마주하는 발트해 하류의 쌀쌀한 바람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선덜랜드, 17세기 이후 산업혁명의 주종목인 석탄산업의 중심지로 항구까지 끼고 있기 때문에 채탄뿐만 아니라 석탄 수출 및 조선업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이 지역 클럽의 홈구장 이름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Stadium of Light)다. 1997년에 신축한 것으로 여기서 ‘라이트’는 광산 노동자들이 갱도로 들어갈 때 그들과 그들의 소중한 가족을 지켜주는 랜턴을 뜻한다. 서녘 빛을 받는 메인게이트 앞에는 광부와 그 아내, 그리고 소중한 아이들이 서 있다.
축구단 리버풀FC의 홈구장 안필드에 ‘힐즈버러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리버풀 출신의 비틀즈도 부른 노래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19세기 이후 영국 노동운동의 근거지였으며 사회주의가 활발히 전개된 곳이기도 하다. 길고도 너른 발트해를 따라가면 네덜란드가 나오는데, 2차 대전 때 히틀러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건너왔고 그 중에는 랠프 밀리밴드 같은 급진 정치학자들도 있었다. 이 정치학 거두의 두 아들이 노동당 집권 시절, 외교부 장관과 당수를 지내면서 한때 선덜랜드가 영국 정치의 중심이 된 적도 있었다. 파시즘 행동으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의 디 카니오가 2013년에 새 감독으로 부임할 때, 구단 이사진의 한 명이었던 데이비드 밀리밴드가 이에 격렬히 반대하며 사퇴를 한 적도 있다. 대처 시절, 강력한 노동운동 통제를 했을 때, 선덜랜드 팀의 감독과 선수들이 파업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행진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그런 도시의 소리, 축구장에 울려퍼지는 노래, 그 강력한 음악을 듣고 싶었으나 내가 도착한 날에는 경기가 없었고, 그래서 기념품 숍에서 소품을 하나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소리, 그 생명과 연대의 빛의 음악을 듣지 못한 채,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뉴캐슬로 북향했다. 가는 도중에 이들 도시보다는 작은 마을, 재로에 들러 1936년에 일자리를 달라며 저항하고 행진한 재로 시민들을 기념하는 동상을 보았는데, 세상을 뒤흔든 브렉시트 사태 와중에 이 지역의 시민들이 대체로 60% 이상의 탈퇴 의사를 밝힌 것이 의미 있는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난한 도시의 하위 계층이 왜 브렉시트 탈퇴 쪽으로 선회했는가. 제러미 코빈 당수가 이끄는 노동당의 정책, 특히 EU 잔류 결정을 밑바닥에서는 반대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 점이 지금 영국의, 특히 동북부 지역의 숙제다. 일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런던까지 500㎞ 가까이 저항하며 행진했던 시민들을 기념하는 동상 주위는 썰렁했다.
재로를 떠나 10여분 달린 끝에, 뉴캐슬로 입성했다. 위축됐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21세기를 기대하며 건설한 밀레니엄 브리지는, 타인 강을 가로지르는 장대한 다리들에 비해 그리 위용을 느낄 수 없었고, 역시 선선한,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축구는 나의 종교이며 세인트 제임스파크 경기장은 나의 교회’라는 어느 팬의 사진으로 유명한, 바로 그 경기장으로 가는데, 차의 속도가 줄더니 이내 멈추고 말았다. 꽤 많은 인파가 사방에서 쏟아져나와 야트막한 언덕으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나 중위권을 지키며 상위 클럽들의 우승 가도에 백태클을 걸었던 팀,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이번 시즌에 2부 리그로 추락했다. 그럼에도 새 시즌 첫 홈경기 아닌가. 몇 분 남지 않은 8시 킥오프를 위하여 그들은 몸을 던지고 있었다.
리버풀 팬 96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비극
우리는 킥 앤드 러시의 강력한 축구문화를 선수와 감독으로서 실천했던 바비 롭슨 감독의 동상 앞에 서서, 사방에서 공성전을 치르기 위해 진군하는 듯한 뉴캐슬 팬들을 한참이나 보았다, 이내 거센 함성, 그리고 마침내 듣고 싶었던 소리, 뉴캐슬의 노래가 들려왔다. 이 도시를 비롯하여 선덜랜드, 더럼 등지의 깊은 상흔을 다룬 영화들, 그러니까 <빌리 엘리어트>, <풀 몬티>,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내비게이터> 같은 영화들에서 방금 막 나온 듯한 뉴캐슬의 거칠면서 동시에 여린 사람들의 노랫소리를 한참이나 들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우리는 리버풀을 순례하였는데, 동행한 아이들과 함께 나는 리버풀FC의 홈구장인 안필드에서 그들의 노래, 그들의 축구장에서 늘 울려퍼지는 노래, 이제는 전 세계 축구팬들까지도 사랑하는 노래 ‘You will never walk alone’을 들었다.
물론 산업혁명과 노예무역이라는 빛과 그림자로 성장한 이 항구도시의 음악은 비틀즈다. 지역 주민 거의 대부분이 비틀즈 멤버들의 사촌이거나 동창이거나 조카라고 우기는 리버풀이므로 나는 근현대의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진 앨버트 도크 일대에서 비틀즈의 음악을 들었으나 안필드에서 울려퍼진 노래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단 선덜랜드 AFC의 홈구장인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앞에 있는 동상과 구단 문장.
‘You will never walk alone’은 1945년 뮤지컬 ‘회전목마’에 나온 노래로 핑크 플로이드를 비롯한 영국의 수많은 음악가들과 비틀즈가 불렀다. 비틀즈의 고유한 작품은 아니지만, 리버풀 출신의 비틀즈가 부른 노래를 바탕으로 팬들은 자신들의 선수들을 위하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기든 지든, 경기 후반부에 이 노래를 장엄하게 부른다. 때로는 스티븐 제라드 같은 선수가 팀을 떠나거나 은퇴할 때 이 노래를 합창으로 부른다.
안필드 구장에 마련된 클럽 역사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전광판으로 역대 팬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소절마다 편집한 영상이 흐른다. 아이들은, 그리고 나 역시 흑백 화면에서 컬러 화면으로 오버랩되는 그 편집 영상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
리버풀 구단은 지난 2014년 봄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리버풀 구단은 여객선 침몰사고로 아직 구조되지 못한 승객들이 조속히 구조돼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기도합니다”라고 진심어린 추모를 했다. 이는 단순한 애도가 아니다. 그들 역시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1989년 4월, 리버풀 팬들이 셰필드에 있는 힐즈버러 경기장에 원정 응원을 갔다가 무려 96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다. 그것이 더 비극적인 것은 경기장 안전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경찰이 이 사태를 ‘극성 팬’들의 부주의 탓으로 돌렸고, 진상 조사를 원하는 유가족들을 대처 정부가 모욕까지 줬기 때문이다. 리버풀의 유가족과 팬들은 무려 27년 동안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운동을 벌였고, 마침내 올해 4월 그동안 은폐되거나 축소된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지난 5월에는 힐즈버러 희생자를 조롱하는 티셔츠를 입고 다닌 청년을 경찰이 즉각 연행하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기에 리버풀 구단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고 몇 차례에 걸쳐 지지와 연대 의사를 밝힌 것은 진정한 ‘You will never walk alone’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음악을, 안필드의 기록 화면으로 보고 또 들었다.
그렇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당연히 나올 만한 질문이다. 사실 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나는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벤 팬들이 박지성에게 선물한 이른바 ‘위송빠레’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특별한 가사도 없다. 선율이랄 것도 없다. 팝그룹 ‘피그백(Pigbag)’이 부른 노래 ‘파파스 갓 어 브랜드 뉴 피그백(Papa’s got a brand new pig bag)’의 멜로디에 팬들이 가사를 입힌 것인데, 가사가 뭔가 하면 ‘위송빠레’다. 박지성의 알파벳 표기를 네덜란드어로 읽은 ‘위송빠레’다. “뚜 뚜 뚜 뚜 위송빠레~”를 무한 루프로 돌리는 식이다. 그 박지성이 뛰었던 곳이 맨유이고, 따라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로 가서, 그 역사적인 경기장의 음악을 들을 예정이다. 나는 지금 새벽에 일어나 뉴캐슬의 호텔에서 이 글을 쓰는 중인데, 다 쓰고 나면 맨체스터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 경기장의 노래, 그 음악에 대해서는 다음 주를 기약한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