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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사랑해서 자주 듣지 못하는 노래

입력 2016.08.02 13:18

어쩌다 혼자서 내 작업실에서 스피커에서 슬며시 걸어나올 것 같은 그의 노래를 들을 때가 있는데, 한두 곡 듣다가 만다. 그의 사후 그는 멀리 떠나갔지만, 그의 노래는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나는 김광석의 노래를 너무나 사랑해 차마 자주 듣지는 못했다. 물론 자주 부르지도 않았다. 노래를 잘 못해서 그의 노래를 내 목소리로 부른다는 것은 나조차 내키지 않는 일이다. 소백산자락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 무슨 약초라도 잘못 먹었는지 성정이 반듯하지도 않아서 노래방 같은 곳에서 여럿이서 ‘서른 즈음에’ 같은 것을 떼창하는 광경을 보면 재빨리 탈출하고 싶을 정도다. 감정의 과도한 남용에 대해 내 할아버지는 늘 경계하셨다.

어쩌다 혼자서 내 작업실에서 스피커에서 슬며시 걸어나올 것 같은 그의 노래를 들을 때가 있는데, 한두 곡 듣다가 만다. 그의 사후 그는 멀리 떠나갔지만, 그의 노래는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는 그저 때로는 얘기하듯 노래 부르지만 듣기에 쉽지 않다. 어떤 곡은 힘이 든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런 곡은 2절을 마저 다 듣지도 못하고 멈춘다.

고 김광석

고 김광석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 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 다한 날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이런 곡들은 듣자마자 살면서 겪었던 인연들, 굳이 ‘못 다한 아픈 사랑’이 아닐지라도, 만나고 스치고 스며들고 그러다 헤어진 사람들이 한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환영까지 느낄 지경이라서, 끝내 그것을 다 듣는 일이 애절하게 노래 부르는 김광석보다 힘든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감정이 과잉되었을 때 일인데, 도대체 차분한 감정상태에서 누가 김광석을 듣는단 말인가.

김광석의 노래는 그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1990년대 그 시대의 쓸쓸한 일상의 거리를 단번에 들려준다, 아니 보여준다. 그때 그 거리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물리적 거리의 변천을 말하는 게 아니다. 광풍처럼 몰아쳤던 1980년대의 거대 서사들이 밀물처럼 사라진 이후의 거리, 그 문화사적 풍경 말이다.

시대는 프랑스 혁명에 문화적 충격을 받고 귀국하자마자 영국의 낭만주의를 선도한 시인 워즈워드의 표현처럼 ‘넘쳐 흐름’의 거대한 고비를 넘긴 다음이었다. 독재 타도와 88올림픽이 표층을 선도하였고, 그 아래에서 수십만 대열의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졌다. 격랑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정권이 들어섰으나, 일단 ‘넘쳐 흐른’ 감정들은 정치적 국면 대신 일상 문화 쪽으로 급속히 흘러갔다.

이상호 기자의 다큐 <일어나, 김광석>
어쩌면 사람들은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거리를 혼자서 걷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1990년대의 거리는 1980년대와 달리 팽팽한 긴장도 조금은 누그러졌고 삼엄한 경비도 많이 사라졌지만 동시에 온갖 네온사인이 사방에서 번쩍거리는, 욕망의 거리가 되었다. 열광이 사라진 뒤, 그 번쩍거리는 거리를 혼자 걷게 된 사람들은, 조금 어린 친구들은 서태지를 들었지만, 20대 중반을 넘기고 서른을 넘겨 어쩌면 마흔을 바라보게 된 사람들은 김광석의 노래를 들었다.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무얼 찾고 있는지 뭐라 말하려 해도
기억하려 하여도 허한 눈길만이 되돌아와요

다큐멘터리,  포스터

다큐멘터리, <일어나, 김광석> 포스터

최근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그의 노래를 여러 가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리메이크하는 일도 잦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일부러 채널을 다른 데로 돌렸다. 그 절창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우리는 김광석을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유행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아니 대단히 충격적인 관점에서 김광석을 다시 불러낸 영화가 상영되었다. 2016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된 이상호 기자의 다큐멘터리 <일어나, 김광석>이다.

김광석의 노래, 그의 삶, 그의 죽음을 다시 통절하게 생각하게 하는 다큐 영화다. 이상호 기자는 오래전부터 김광석과 교유하였고 그의 노래를 사랑하였으며 또한 김광석의 많은 친구들이 그랬듯이 김광석의 갑작스런 죽음, 즉 1996년 1월 6일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죽음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 왔다. 그 죽음의 비밀을 풀기 위하여 그는 오랫동안 자료를 모아 왔고 주변 사람들을 취재하였으며(안타깝게도 그 많은 취재 파일이 어이없는 수해 때문에 일부 소실되기도 하였다) 수사당국의 조사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타살’이라는 판단이며, 그 혐의자는 김광석의 아내라는 심증을 그는 갖고 있다. 이를 확인하고 보완하여 만든 영화가 <일어나, 김광석>이다.

김광석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영화
김광석을 좋아하고 그의 노래를 사랑하며 그의 죽음의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지기를 바라는 팬으로서 이상호 기자의 영화를 기다렸고, 몇 회밖에 되지 않는 상영시간에 맞춰 부천에 찾아가서 성원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영화 속에 김광석의 노래와 생전의 모습이 보였다. 이왕 이렇게 제기된 의문이 ‘자살’이든 ‘타살’이든,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조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한편, 그러나 이 영화는 아쉬웠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자살이냐, 타살이냐’하는 소실점의 팩트가 좀 더 분명하게 보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팩트를 향해 달려가는 기자가 너무 두드러졌다. 조금은 ‘위험’하다고 할까. 이 다큐 영화 때문에 이상호 기자가 법정 소송이나 뭐 그런 일을 겪지 않을까, 하는 ‘위험’이 아니다. 이상호 기자는 그런 일에 대하여 오히려 담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이 다큐는 김광석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는 그의 죽음을 파헤치는 ‘기자 이상호’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그의 감정, 그의 목소리, 그의 눈빛이 압도한다. ‘카메라의 시선’을 너무나 잘 아는 카메라 워킹의 연속이다. 이상호 기자가 거리에서 취재를 하거나 감정을 다독일 때, 그에 딱 ‘맞는 음악’이 정확하게 깔리는 식이다.

25분쯤의 배경음악은 ‘민완기자’ 이상호를 강조하고, 27분쯤의 슬로 화면은 이상호 기자의 감정을 관객에게 슬로로 설명하며, 33분쯤의 취재 장면은 갑자기 역동적으로 흘러간다. 금방이라도 모종의 혐의가 백일하에 드러날 것처럼 말이다. 60분쯤, 쓸쓸한 음악을 배경으로 텅 빈 운동장에 이상호 기자가 혼자 앉아 있는데, 이 프레임에서 억제된 듯 보이는 감정이 오히려 과잉되어 넘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중에 화면을 역시 채우는 것은 슬픈 노래를 부르고 떠난 김광석이 아니라 이상호 기자의 얼굴이다. ‘위험’하다고 하면 조금 심한 표현일까, 그렇다면 ‘아쉬움’ 정도로 줄인다. 충격의 사건과 관객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더라면, 보는 사람들은 생각을 하면서 이상호 기자를 따라갔을 텐데, 아쉽다.

내가 사랑하는 노래, 너무 사랑해서 자주 듣지도 못하는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이렇게 끝난다. 오랜만에, 다시 듣고 싶다.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 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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