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의 도정에 오른 김선욱의 연주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앵콜을? 그 순간부터 그날의 공연은 대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저녁나절의 ‘모리아와세 음악회’가 되었다.
일본의 저명한 사상가로 ‘사상계의 덴노(天皇)’라고 불렸던 마루야마 마사오가 쓴 글 중에 ‘모리아와세 음악회’라는 게 있다. <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에 실려 있다. 오에 겐자부로가 “일본의 다양한 전문분야의 지식인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공해주었다”고 평가했듯이 이 책에는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극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일본 사회와 사상계의 대혼돈, 그 파란의 속살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그 중 하나가 ‘모리아와세 음악회’다. 짧지만 그의 사상적 통찰이 칼날처럼 번득이는 글이다. ‘사시미 모리아와세’라는 말이 있다. 모듬회를 뜻한다. 줄여서 ‘사시미 모리’라고도 한다. 평범한 일식집에서 이것저것 섞어 내놓는 회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꼼꼼히 엄선하고 정성껏 차려내는 특미의 모듬회를 강조하여 말할 때도 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 단어를 활용하여 전후 일본의 키치적 교양 풍습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공연 문화 패턴이 된 ‘모리아와세 음악회’
1부 순서에 대중적으로 친숙한 곡들, 아늑한 곡들, 나른하면서도 편안한 곡들을 배치하여 연주하고 잠시 인터미션(중간 휴식)을 가진 후 2부 순서에는 좀 더 묵직하고 선이 굵은 그날의 핵심 연주곡을 들려준 후, 쏟아지는 박수 세례에 따라 비교적 짧고 대중적인 소품들로 앙코르 곡을 선사하는 음악회를 마루야마 마사오는 ‘모리아와세 음악회’라고 불렀다.
방금 따스한 살롱풍 음악을 듣고 나서, 잠시 쉬고 나자마자 어찌하여 심각하고도 심오한 곡을 들으며 고뇌에 찬 표정을 지을 수가 있는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그런 투의 한탄을 하면서, 이는 클래식 그 자체에 대한 본질적 몰입이 아니라 저녁나절의 근사한 나들이에 가까운 것이라고 했다. 더하여 말하기를, 이러한 클래식 소비 풍습이란 유럽 문화에 대한 과도한 몰입, 유럽 예술에 대한 지나친 경도, 유럽 음악에 대한 이른바 일본식 ‘교양 시민’들의 욕망의 투사라고 보았다.
그런 일이 유독 일본의 경우만이겠는가. 수준급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한때는 음악가의 길을 걷고자 했던, 유럽 클래식 문화의 사회심리학적 해부자인 아도르노 역시 20세기의 공연 문화, 레코딩 문화, 리사이틀 문화의 저속한 유행을 자주 비판한 바 있으니, 비단 유럽 문화에 경도된 동아시아의 일그러진 풍습이라기보다는 ‘문화산업’이 지배하는 20세기 클래식 공연 문화의 일반적인 풍토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오랫동안 그러하지 않았던가. 본격적으로 클래식 문화가 제도와 교육과 소비의 차원에서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도시로의 인구 유입과 고등교육에 대한 정열적인 몰입이 본격화된 1970년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생이 되는 것이 집안의 선망이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중·고교 시절이나 대학 진학 후에는 ‘교양 있는 문화인’이 되는 것이 또한 사회적 열망이었는데, 이런 조건에서 클래식은 중산층 소비교양 문화의 핵심적인 아이콘이었다. 그 시절의 많은 영화들, 그리고 박완서의 날카로운 소설들이나 최인호, 한수산 같은 작가의 대중적 소설들에서 클래식을 연주하거나 듣는 일들이 거의 시대적 소명처럼 묘사된 바 있다.
그런 시절에 유학파 연주자를 중심으로 일종의 공연 문화 패턴이 형성되는데,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한 바와 같은 ‘모리아와세 음악회’다. 모차르트의 비교적 짧고 귀에 익숙한 로코코풍 협주곡이나 소품들에 이어 인터미션을 가진 후 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의 중후장대한 곡을 연주하고, 열광적인 박수에 이은 앙코르 곡의 세리머니, 익숙한 풍경이다. 모든 연주회를 ‘모리아와세 음악회’라고 할 수는 없으나, 대부분의 연주회가 서로 맥락이 어울리지 않는 선곡, 연주자의 특별한 기교와 관심의 범위를 보여주는 방식, 음악적 성소에 깃들어 몰입한다기보다는 흡사 컨벤션홀에 온 듯한 분위기, 그리고 이어지는 앙코르 곡과 사인회로 마무리되고 있어, 좀 더 냉혹하고 엄정할 수는 없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디아벨리 변주곡을 작곡할 무렵의 베토벤 초상화.
7월 중순의 한국 클래식계는 김선욱의 연주로 비상한 열기에 휩싸인 바 있다. 서울의 예술의전당을 비롯하여 고양, 노원, 안양 등지의 공연장에는 김선욱의 피아노를 듣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목받을 만한 피아니스트이고 평가받을 만한 연주였다.
협주나 독주에 있어 여러 음악가들의 다양한 곡들을 폭넓게 소화해온 김선욱이지만, 그래도 베토벤에 집중하는 모습이 최근에는 크게 부각된다. 다소 선정적인 공식이지만 쇼팽의 조성진, 바흐의 임동혁, 그리고 베토벤의 김선욱이라는 공식은 당분간 더 미학적으로 집중될 필요가 있다. 월간 <객석>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김선욱은 7월의 메인 레퍼터리인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에 대하여 “베토벤의 어법들이 이해가 되고 33개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7월 16일, 고양의 아람누리 음악당에서 들려준 김선욱의 연주는, 누군가의 실수로 일순간에 바닥에 흩어져버린 오선지의 선율들이 그의 손에 의해 원래의 정교하면서도 난해한 화성의 체계로 재조립되는 순간들을 들려주었다.
‘열정적 본연주’ 그것으로 충분했다
김선욱은 독일 음악을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 독일어를 새로 익히기 시작했다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단순히 회화 목적의 독일어 공부가 아닐 터이므로 베토벤 시대의 예술과 사상들, 이를테면 괴테의 소설이 지향했던 세계시민주의나 실러의 시가 추구했던 자유의지가 무엇인지를 살핌으로써 베토벤 음악에 스며들어 있는 근대 시민 세계의 문화적 욕망의 소실점이 무엇인지를 공부한다면, 더 깊이 있는 연주를 할 것이다.
아쉬운 것은, 그날의 연주가 일종의 ‘모리아와세 음악회’의 아쉬운 풍경을 재현했다는 점이다. 모차르트의 ‘판타지 D minor, K.397’과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G major, D.894’ 두 곡으로 구성된 1부 순서와 2부 순서, 즉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Op.120’의 미학적 연관성은 좀 더 설명이 필요했다. 유료로 판매되는 현장의 프로그램북은 각 곡들에 대한 간략한 언급만으로 그쳤고, 나머지는 화보집처럼 꾸며져 있었다.
물론 오직 음악회만으로 자신의 미학적 실천과 생계까지 도모해야 하는 프로 연주자 개인에게 ‘모리아와세 음악회’의 모든 면모를 거절하라고 하기는 어렵다. 단지 ‘많이’ 들려준다는 측면보다는 지금 나의 미학적 관심이 이렇게 펼쳐져 있다는 것을 보여(들려)주기 위해서 레퍼터리를 조금은 넓게 편성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편성된 곡들의 내적 연관성은 의미 있는 독해의 수준으로 서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앙코르 곡이다. 나는 물론 브람스의 소품을 자주 듣고 드뷔시는 환영 같은 곡들을 사랑한다. 그날 김선욱이 들려준 앙코르 곡들이다. 이 곡들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이미 충분히 모든 것을 들려주었으므로 과감하게 그는 두어 번의 박수를 받은 후에 홀연히 사라졌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날의 공연장 분위기는 극도로 어수선하였다. 늦게 입장한 사람, 끝없이 기침하는 사람, 자기 딴에는 낮은 목소리랍시고 동행자와 구시렁거리는 사람, 1부의 슈베르트 소나타 연주 때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사람, 앙코르도 연주인데 앙코르니까 괜찮겠지 하고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 그 때문인지, 원래 예비동작 없이 곧바로 타건하는 김선욱이지만, 인터미션 후 무대에 들어선 김선욱은 의자에 앉아마자 ‘디아벨리 변주곡’의 충격적인 도입부를 여지없이 연주해버렸다. 그리고 한 시간쯤 흐르는 동안, 김선욱의 몸은 거침없이 튀어오르거나 극도로 기울어지거나 하면서 베토벤이 장려하게 펼쳐놓는 오선지의 바다를 항해했다. 그의 마지막 타건이 끝나자 온통 김선욱의 손가락에 두들겨 맞은 피아노는 꽤 오랫동안 신음소리를 냈다.
이로써 충분하였다. 열광의 도정에 오른 김선욱의 연주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잔향이 완전히 걷힌 후 박수소리가 터졌고, 김선욱은 두어 번 나갔다 들어왔다.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앙코르를? 그 순간부터 그날의 공연은 대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저녁나절의 ‘모리아와세 음악회’가 되었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