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호는 이번 선거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안철수가 이끈 국민의당 돌풍이 없었다면 우상호는 야인으로 남아 서대문의 허름한 술집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상호는 선거에서 이기고 내친김에 원내대표까지 거머쥐었다. 짜릿했을 것이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에 마음이 넉넉해졌다. 박근혜 정부와의 ‘협치’라는 이름으로 선심성 눈웃음을 날렸고, 당내에서는 탕평인사를 명분으로 국보위 출신 김종인 대표의 품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는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을 능가하는 난해한 화법으로 국민을 우롱하기 시작했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당론을 정하지 않기로 한 것이 당론”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반대한 수많은 시민들과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 평화주의자들을 모욕했다. 그는 “제1야당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반미냐 종북이냐 논란이 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설상가상 우상호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사드 배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정하는 것이 수권정당으로 바람직하냐”고 반문했다. 굳이 해설은 붙이지 않겠다. 이재동 성주 농민회 회장이 제1야당도 당론을 정해 달라고 하자 그는 “사드 대책위에서 논의해 보겠다”고 했다. 우상호는 더민주의 사드대책위원장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책을 요구하자 정부에서 논의해보겠다고 한 대통령과 다를 바 없다. 우상호는 지옥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국민들을 끌고 가려 한다. 86세대의 대표로 원내대표가 된 우상호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이를 확장해 권력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최대 이슈의 창끝으로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겨누고 있다.
안병진 교수는 트럼프, 샌더스 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한 최근 저서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에서 “교과서에 익숙한 지식인들은 필리버스터 스타인 은수미 전 의원을 보며 마치 가수 이승환인 양 가슴 설레 하는 청년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여기서 말한 지식인에는 낡은 기득권 꼰대로 전락한 86정치인들이 오버랩된다.
사드 배치에 대한 우상호의 태도와 함께 86시대도 끝났다. 상징도 끝났다. 비겁의 손아귀에 잡힌 용기도 숨을 거뒀다. 애써 국민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낡은 주판알이나 튕기는 세력이라는 것이 스스로의 고백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집권을 위해 국가 중대사에 대해 입장을 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그 처참한 독백만이 86세대의 마지막 발자국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번 사드 배치에 대한 더민주의 태도를 역사는 ‘사쿠라의 절창’ 정도로 기억하지 않을까.
최근 미국 민주당은 경선과정에서 돌풍을 일으킨 샌더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한 정강 초안을 발표했다. 시간당 15달러의 최저임금과 노동조합 조직을 쉽게 할 수 있는 정책을 담았다.
힐러리는 샌더스 열풍으로 표상된 끓어오르는 대중의 요구를 끌어안았다. 86세대는 이런 대중의 분노, 문명사적 대전환기 앞에서 피로한 듯 비칠거리며 기득권의 품속으로 휘적휘적 사라져간 것이다. 안병진 교수가 이번 책에서 인용한 오바마의 말은 이랬다. “우리 정치의 쪼잔함(smallness)과 힘든 결정을 회피하는 만연한 습성. 그런 정치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렇게 86들의 시대도 종말을 고했다.
<유승찬 소셜미디어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