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서울남부지검 김모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른 세살의 검사가 남긴 카톡 문자에는 일상적인 폭언과 인격모욕에 시달렸던 고통의 흔적들이 담겨 있었다. “부장검사에게 매일 욕을 먹으니, 진짜 한 번씩 자살 충동이 든다.” “동료 검사 결혼식장에서 조용히 술 먹을 방을 구해오라고 다그쳐 안 될 것 같다고 했더니 피로연 끝나고서까지 계속 욕을 했다.” “욕을 먹으면서도 웃으면서 버텼는데 당당하다고 심하게 욕설을 했다. 너무 힘들고 죽고 싶다.” 김 검사의 아버지는 진상조사 탄원서를 대검에 냈지만, 남부지검에 송부했고 그 결과를 통지토록 지시했다는 한 문장짜리 통지서만 받았다고 한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고 논란이 확산되고서야 대검은 본격적인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하나는, 대한민국 검찰 조직에 조폭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문화가 버젓이 활개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참혹한 일이 생겨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검찰 조직의 의연함이다. 돌아보면 검찰은 언제나 그러했다. 검찰은 자기 식구들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사실을 어김없이 일깨워 주었다. 최근 홍만표 변호사 사건에서 개인 비리는 있었지만 검찰과 관련된 전관예우는 없었다는 결론이 그것이었다. 진경준 검사장의 120억 주식대박 의혹을 끝내 파헤치지 않고 넘어간 것 또한 검찰이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사례들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중앙일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 간부 가운데 98%는 남성, 62.5%는 서울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고, 평균 재산은 18억8262만원, 법학 이외의 전공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의 사법시험 합격 나이는 23.7세로 매우 젊었다. 요약하자면, 대한민국 검찰 고위 간부의 표준형은, 주로 서울대 법대를 나와 곧바로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가 된 뒤, 비교적 많은 재산을 가진 남성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는 성공해서 잘나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함께 살고 있음을 몸으로 겪으며 공존의 사고를 가질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자기들의 세상만 누리며 성장하고 살아온 검사들의 눈에 과연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사연이 어떻게 비쳐질지 염려스럽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검찰을 비판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어도 정작 검찰 조직 내부는 고요하기만 하다. 상사로부터의 인격모욕으로 동료 검사가 목숨을 끊어도, 전관예우의 진상이 덮여져도, 이를 바로 잡으려는 움직임은 찾아볼 수가 없다.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모난 정이 돌 맞았던 현실을 접한 학습효과일지 모른다. 노무현 정부 시절 평검사와의 대화 자리에서 대통령을 그렇게 몰아붙이는 기개를 보인 검사들은 이제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는 검사선서문에서만 등장하는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김 검사의 죽음은 검찰개혁이 검사들 자신을 위해서도 절실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개혁 의지는 고사하고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도 생각하지 못하는 검찰이 되어버렸다면, 이제 검찰개혁의 과제는 더 이상 그들의 몫이 아니다. 모처럼 만들어진 여소야대의 정치환경에서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무너졌던 정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20대 국회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검찰개혁의 과제를 이루어낼 책임이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