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골든타임이 계속해서 주어졌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이 골든타임으로 인식되거나 행동에 나서거나 하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환경부가 유해화학물질 관리제도를 만들면서 미국에서는 PHMG나 PGH를 유해성을 나타내는 경우 독성자료 제출대상에 포함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내용을 놓쳤다.
세월호의 골든타임은 단 2시간이었다.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해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의 2시간은 배 안의 300명이 넘는 단원고 학생들과 승객들을 모두 구해내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출동했던 해경의 구조선박들, 해군의 구조비행기, 어선들이 모두 달라붙어 구해냈더라면 말이다. 희생자 개인들에게 필요했던 골든타임은 2시간이 아니라 단 몇 분이면 충분했다. 혹여 몸이 불편하거나 다친 친구들을 부축해서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의 골든타임도 10~20여분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안방의 세월호’라고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골든타임은 어떠할까? 이 경우에는 빠른 구조에 걸리는 시간을 뜻하는 세월호에서의 골든타임보다는 ‘그때 이렇게 했었다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개념의 골든타임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가족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세터가 2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도중 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참석자들은 옥시 영국 본사 CEO를 포함한 이사진 8명을 검찰에 형사고발한다고 밝혔다. / 김정근 기자
‘인체에 안전한가’ 충분한 검토했어야
첫 번째 가습기 살균제의 골든타임은 1994년이었다. SK케미칼(당시 유공)이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을 개발한 해다. 제품 개발자들이 가습기 물통에 액상의 MIT/CMIT 성분의 살균제를 넣어 물과 섞어서 사용하는 방식의 가습기 살균제를 구상했을 바로 그때, 물통의 살균성분이 물과 함께 공기 중으로 배출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만약 살균성분이 물에 녹아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면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고, 제품은 개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습기는 그 원리와 기능상 물입자를 잘게 쪼개서 가습기 밖으로 분무시키고 실내의 습도를 높여주는 제품이다. 당연히 사용자의 코와 입을 통해 습기가 노출되어 호흡기계통의 습도 역시 높여준다. 이 과정에서 살균성분도 물분자와 붙어다닐 것이고, 그렇다면 사용자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바로 이 점에 대한 검토를 했을 것이고, 그 결과 ‘괜찮다’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이후 제품이 개발돼 공개되었고 신문에는 ‘세계 최초’, ‘인체 무해’라는 문구로 이 제품의 개발 소식이 큼지막하게 보도됐다. 하지만, 신문에 소개된 ‘인체 무해’는 살균성분이 호흡기와 폐에 노출돼도 무해하다는 의미가 아니었고, 그러한 호흡독성의 동물실험을 거친 것도 아니었다. SK케미칼이 놓친 것은 바로 이 지점,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의 특성상 사용자의 호흡기로 살균성분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과연 안전한가?’라는 물음이 있어야 했고, 이에 제대로 답을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때 놓친 골든타임은 22년이 지난 지금 알게 된, 어린이와 산모를 중심으로 사망자만 400명이 넘는 대참사의 시작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두 번째 가습기 살균제의 골든타임은 3년 후인 1997년과 2001년에 찾아온다. 이 때의 주인공은 SK케미칼과 환경부, 그리고 옥시레킷벤키저다. 1996년 SK케미칼은 PHMG라는 살균제의 제조·판매를 환경부에 신고했고, 환경부는 잘 휘발되지 않는 고분자화합물이고 제출된 용도가 카펫 항균 용도여서 흡입독성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유독물에 해당 안 된다’고 1997년 관보에 고시했고, 2000년에도 같은 내용이 다시 고시되었다. 이 내용을 근거로 2001년 옥시레킷벤키저는 이전의 ‘가습기당번’의 살균성분을 프리벤톨R80에서 PHMG로 바꿔 문제의 ‘뉴가습기당번’을 출시한다. 이 제품은 2011년 당국에 의해 판매가 금지될 때까지 400만병이나 판매되며 관련 시장을 석권했다. 지금 확인되고 있는 것처럼 이 제품에 의한 피해자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사건이 발생한 후인 2012년에 PHMG는 유독물로 지정된다. 텅빈 외양간에 부서진 문을 달아놓은 셈이다. 이 참극의 주인공은 영국계 다국적기업 레킷벤키저이고, SK케미칼이 주연에 못지않은 조연, 환경부는 없어서는 안될 조연이었다.
2년 뒤인 2003년에 또 한 번의 골든타임이 찾아온다. 세 번째 가습기 살균제 골든타임인데, 이번에는 환경부가 조연이 아닌 주연이다. ‘고무, 목재, 직물의 항균제’ 용도로 제조신고된 PGH라는 살균물질을 2년 전 PHMG를 무해하다고 고지한 것과 똑같은 판단을 내리고 역시 관보에 고지했다. 이번엔 제조사가 신청서에 ‘배출경로, 제품에 첨가(spray or aerosol 제품 등)라고 명기했지만 흡입독성 평가를 하지 않고 경구독성 평가만 했다. 공기 중으로 분무되는 제품이라면 당연히 호흡기로의 노출경로에 대한 독성 평가인 흡입독성 평가를 했어야 하는데 입으로 들이마시는 경로인 경구독성 평가만 한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결정적인 단서가 제공되지만 ‘익숙해진 골든타임 놓치기’는 연기가 무르익듯 익숙하게 반복된다. 이를 바탕으로 2009년 버터플라이이펙트라는 이름의 작은 회사가 덴마크에서 수입한 PGH를 원료로 ‘세퓨’라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만들어 ‘유럽에서 온 프리미엄 솔루션’이란 광고 카피를 달고 인터넷 판매로 젊은 주부들을 상대로 인기몰이에 나선다. 그리고 3년이 채 안 되는 판매기간 동안에 14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다. 이번에도 환경부가 뒷북을 울리는데, 2013년 8월 5일에 PGH를 유독물로 지정한다.
업자, 공무원, 전문가 모두가 알지 못해
네 번째 가습기 살균제 골든타임은 2006 ~2008년이고, 주인공은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들과 질병관리본부의 팀장이다. 이즈음에 매년 봄 대학병원 응급실로 아이들이 호흡곤란으로 실려오는데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고 치료에도 실패해 절반가량이 사망한다. 2006년 봄에만 아산병원에서 15명의 어린이 간질성폐렴 환자가 집중발생했는데, 7명이 사망했다. 서울지역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내용은 2008년 학술지에 보고되었다. 2008년 봄에는 소아과의사들이 질병관리본부 팀장과 이 문제를 다루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병원균을 찾아내려는 시도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손을 놔 버린다. 2011년 봄 산모 4명이 사망하자 질본에 신고해 역학조사를 의뢰했던 호흡기내과의 응급실 의사들과 너무나 다른 양상이었다.
2003년까지의 세 번에 걸친 골든타임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의 출시와 살균성분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네 번째 골든타임은 이미 피해자가 발생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 아쉽다. 골든타임을 놓친 의사들과 질본은 세월호 때의 침몰하는 배를 지켜본 해경과 비슷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밖에도 크고 작은 골든타임이 계속 주어졌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이 골든타임으로 인식되거나 행동에 나서거나 하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환경부가 유해화학물질 관리제도를 만들면서 미국에서는 PHMG나 PGH와 같이 고분자이지만 물속에서 분해되어 양이온성을 띠면서 유해성을 나타내는 경우 독성자료 제출 대상에 포함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내용을 놓쳤다.
2012년 환경보건시민센터로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환경성 질환이라는 의견을 접수한 환경부는 ‘이 문제는 제품의 하자이지 환경문제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2012년 8월 검찰에 피해자들의 첫 형사고발장이 접수된 이후 여러 차례의 고발장이 추가되었지만 검찰이 수사팀을 꾸린 건 4년이 지난 올해 초였다.
수없는 골든타임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작동하지 못했다. 업자, 공무원, 전문가들 중에서 단 한 명도 골든타임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앞으로는 달라질까? 지금 골든타임의 벨소리가 울리고 있다고, 소리가 들린다고 어서 행동하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단체가 있어야 한다. 국가의 여러 기관에서 시스템으로 그러한 경고를 파악하고 나서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고통 속에서 스러져간 400명이 넘는 사망자들이 남긴 유언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환경보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