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대표하는 극작가 체홉의 4대 장막극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더불어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르는 작품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갈매기>는 해마다 빼놓지 않고 공연되는 연극계의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다. 특히 <갈매기>는 관객뿐만 아니라 연출이나 배man우, 스태프 등 연극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이 작품 자체가 바로 ‘연극에 대한’, 그리고 ‘연극을 위한’ 연극이기 때문이다. 일단 <갈매기>에는 성공한 작가와 유명 여배우, 그리고 작가 지망생과 배우 지망생 등 연극에 관련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들은 극중극의 형식으로 무대 위에서 직접 연극을 보여주기도 하고, 각기 다른 자기만의 연극론을 놓고서 팽팽한 의견 대립을 펼치기도 한다. 또한 여기 등장하는 인물 모두는 ‘현실이 아닌 다른 삶’을 동경하거나 꿈꾸고 있는데, ‘현실이 아닌 다른 삶’이라는 것이 바로 무대 위에 펼쳐지는 연극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모든 인물들은 연극을 향한 열망을 지닌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국립극단의 <갈매기> 공연에서 연출을 맡은 펠릭스 알렉사는 이 작품이 ‘연극에 대한 연극’이라는 아이디어를 명동예술극장 무대 위에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펼쳐내고 있다. 먼저 막이 오르기 전, 객석으로부터 등장한 마샤는 원작과 달리 무대 막을 쓰다듬으며 연극에 대한 자신의 숨겨진 열망을 드러낸다. 이어서 트레플레프의 극중극을 위해 이곳을 찾아온 니나가 “나는 갈매기처럼 이 호수에 이끌려 와요”라는 대사를 하면, 육중한 무대막이 처음으로 열리며 텅 비어 있는 무대 전체가 드러난다. 바로 이 장면을 통해 극중 인물들을 마법처럼 끌어 모으는 호숫가는 비어 있는 무대, 즉 극장으로 치환되고, 니나는 호수를 향해 달려드는 갈매기처럼 무대를 열망하며 극장으로 뛰어드는 배우의 이미지로 각인되는 것이다.
연극 <갈매기> 공연사진 / 국립극단 제공
뿐만 아니다. 연출가는 <갈매기> 안에 의도적으로 셰익스피어 <햄릿>의 일부분을 삽입해 이 작품의 연극성과 환상성을 강조하고 있다. 1막의 극중극이 오르기 전, 트레플레프와 아르카지나가 주고받는 짤막한 대화에 샤므라예프의 설명을 덧붙여 이것이<햄릿>의 한 장면이라는 점을 친절히 설명해주고, 트리고린이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을 본 트레플레프가 “저기 책을 든 햄릿이 걸어온다”고 말하게 함으로써 다시 한 번 ‘햄릿’의 이미지를 극 안에 끌어들인다. 이와 함께 연출가는 2막의 시작 부분에 아르카지나가 연기하는 <햄릿> 중 오필리어의 독백 장면을 집어넣음으로써 연기를 향한 이 여배우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이때 무대 위로부터 화려한 무대의상들이 내려오게 함으로써 극장(연극)이 환상(illusion)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무대 위의 삶으로 대표되는, 현실과 다른 삶을 열망하는 인물들이라는 주제는 막과 막 사이, 인터미션 시간에도 끊임없이 반복된다. 원작에서는 별다른 비중 없는 하인에 불과했던 야코프와 하녀는 막과 막 사이마다 무대에 등장해 주인공들이 버리고 간 무대의상이나 소품을 가지고 연극을 흉내내는 시늉을 한다. 연극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또한 트레플레프의 극중극이 펼쳐지는 공간을 명동예술극장의 실제 무대로, 이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좌석을 명동예술극장 객석과 똑같은 의자로 표현함으로써 이 공연을 바라보는 실제 관객의 시선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6월 4일부터 29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