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이 만들어내는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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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탓’이 만들어내는 지옥

입력 2016.06.07 16:03

[북리뷰]‘남 탓’이 만들어내는 지옥

내 것이었던 소녀
마이클 로보텀 지음·김지선 옮김·북로드·1만4800원

캐릭터가 좋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소설이 있다. 매력적인 인물이 어떤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는지만 보고 있어도 재미있으니까. 마이클 로보텀의 <내 것이었던 소녀>가 단지 캐릭터만 좋다는 말이 아니다. 피투성이 소녀가 나타나고, 전직 형사인 그녀의 아버지가 시체로 발견된다. 살인 용의자로 소녀가 지목되지만 심리학자인 올로클린은 이면에 다른 범인이 있다고 믿는다. 연약한 사춘기의 아이들을 사냥하는 누군가가. <내 것이었던 소녀>는 작은 사건에서 출발하여 전혀 상관 없어 보이던 사건들로 번져가는 과정을 탁월한 긴장감으로 그려낸다.

이야기도 좋지만, <내 것이었던 소녀>에 빨려드는 주된 이유는 캐릭터다. 마흔아홉 살의 조 올로클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경찰에게 범죄 자문도 하는 뛰어난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은 파킨슨씨병 환자다. 두뇌는 너무나도 빨리 돌아가고, 사람의 마음을 능숙하게 읽어내지만 그의 몸은 뇌의 명령을 잘 듣지 않는다. 팔과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고 뒤틀리고 경련을 일으킨다. 제 때에 약을 먹지 않으면 올로클린은 운신조차 하기 힘들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의 전작인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서는 사랑하는 아내, 두 딸과 별거까지 하게 됐다. 제목 그대로 올로클린이 산산이 부서지는 과정이 전작에 이어 계속된다.

<내 것이었던 소녀>에서도 조 올로클린은 여전히 부서지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만 여전히 아내와 아이들의 마음은 제대로 읽지 못한다. 가정을 복원하는 것이 올로클린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지만,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한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올로클린은 아주 깊숙이 들어간다. 어쩔 수가 없다. 올로클린은 범죄자가 얼마나 위험하고 나쁜 놈인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무너진 마음에 공감하기에 바닥의 바닥까지 어둠을 읽어내고 진실을 찾아간다. 끼어들지 말라는 욕설과 위협을 받으면서도 올로클린은 이미 부서진 자신의 몸과 마음을 겨우 다스리며 마지막까지 달려간다.

기자 출신인 마이클 로보텀은 “범죄란 인간의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며, 훌륭한 스릴러는 독자들을 그 순간 속에 떨어뜨려 갈등과 선택, 고통과 기쁨을 대리 체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 것이었던 소녀>를 읽고 있으면, 올로클린의 마음을 제대로 경험하게 된다. 올로클린의 사생활과 은밀한 욕망과 갈등까지도 드러내면서, 하나의 범죄를 드러내는 것 이상으로 그 남자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국만이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를 폭로한다. 1982년 호주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쓴 <내 것이었던 소녀>는 2016년 한국으로 배경을 옮겨도 어색하지 않다. “힘으로 여자를 학대하는 많은 남자들처럼, 고든은 자기가 진짜 피해자라는 뿌리 깊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오해를 산 것뿐이다. 잘못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남자들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내 것이었던 여자>는 모든 실패와 불행의 원인을 약자에게 돌리는 남자들이 한순간에 만들어내는 끔찍한 지옥을 보여준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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