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이지만 문재인·안철수 같은 ‘슈퍼 초선’도
1 초선
▶ 이제는 중진이 된 한 의원의 초선 시절 이야기다. 이 초선 의원이 기자들과 함께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 재선 의원이 있었다. 두 의원 사이에 말싸움이 일어났다. 급기야 재선 의원이 초선 의원의 군기를 잡는 상황이 기자들 앞에서 벌어졌다. 다음 날 다른 기자들이 취재에 나서자 양쪽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면서 시치미를 뗐다.
▶ 17대 국회에서 처음 당선된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이 상임위에서 손을 들지 않고 발언을 했다. 한나라당의 재선 의원이 문제를 삼고 나섰다. 발언을 하기 위해서는 손을 들어 미리 상임위원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면박을 줬다.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이 장면을 보지 못한 한나라당의 초선 의원이 역시 손을 들지 않고 발언에 나섰다. 한나라당 재선 의원에게 면박을 당한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이 손을 들었다. 위원장의 허락을 받고 난 뒤 발언했다. “새누리당 초선 의원이 손을 들지 않고 발언했습니다!”
▶ 열린우리당의 압승으로 끝난 17대 총선 뒤의 일이다. 108명의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이 새로 국회에 들어와 ‘108번뇌’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한 재선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초선 의원들을 향해 “군기를 잡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 초선 의원은 “앞으로 두 번 다시 군기잡겠다고 하면 그 사람을 물어뜯어 버리겠다”고 대응했다. 이 초선 의원은 초선으로 의회활동을 마감했다.
국회에서는 처음 당선된 의원을 초선, 두 번 당선된 의원을 재선이라고 한다. 다음부터는 3선, 4선, 5선이다. 군대에 비유하자면 초선은 이등병에 해당한다. 작대기 하나를 달고 있는 셈이다. 고대 동굴벽화에 ‘요즘 젊은이들이 버릇이 없다’고 적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국회에서 늘 등장하는 이야기가 초선 의원 군기 잡기다.
국회는 선수(選數)가 곧 계급이다. 초선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맨 앞에 앉는다. 이계진 전 한나라당 의원이 초선 시절 그린 그림을 보면 앞자리에 앉은 초선은 포말 피해감(침 튀김), 후면상황 궁금증, 무한주시 긴장감 등으로 시달린다. 초선 의원들은 의원회관에서 다선 의원들이 선택하고 남은 방을 선택해야 한다. 다선 의원이 바깥으로 향한 창이 있는 사무실을 차지하는 반면, 초선 의원은 내부 정원으로 향한 창이 있는 사무실에 배치될 수도 있다. 어떤 의원실은 화장실 앞에 위치하거나 휴게실 옆이라 소음에 신경쓰기도 한다. 어쩌면 초선 의원은 이런 ‘사소한’ 차별 때문에 재선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
모든 초선들이 초선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초선이지만 초선으로 대우받지 않는 ‘슈퍼 초선’이 있다. 19대 국회에서는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 같은 대선주자급 ‘슈퍼 초선’이 있었다. 두 슈퍼 초선은 작대기 하나를 달고 당 대표를 차지했다. 두 의원이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갈등하면서 ‘양초(두 명의 초선)의 난’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20대 국회의 초선 의원은 132명(44.0%)이다. 국회가 개원할 때마다 새로 발을 내딛는 초선 의원들 덕분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들의 포부는 야무지다. ‘1’이라는 숫자는 나약하지만 신선하고 힘이 있다. 하지만 다선 의원이 되면 이들 대부분이 역시 계파나 정쟁에 안주하게 된다. 이때 ‘처음처럼’이라는 말을 되새겨야 한다. 여의도 용어로 바꾸면 ‘초선처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