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목이 쓴 한국 근대화 100년
손정목 지음·한울·2만3000원
지난 5월 9일, 이 책의 저자인 손정목 명예교수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1928년생, 만 88년의 세월을 거치며 살아왔던 그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이승만 정권과 4·19 혁명, 군사독재와 민주화를 모두 겪었다. 이 책은 그 역사의 증인이 생의 말년에서 한국 근대사의 다양한 국면과 자신의 삶을 반추한 것이다.
손정목의 인생은 한국의 근현대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1928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편입하였는데, 직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피난했다. 전란이 끝난 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공직생활을 시작하고 군수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것이 독이 되고 말았다.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협력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한 3년간의 휴직을 겪은 후 행정서기관으로 복직하고, 1970년부터는 서울특별시의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내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그 후 1977년부터 1994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서울시립대에 교수로서 몸을 담았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지나 대한민국의 정치적 격동을 모두 겪어내면서 동시에 정치, 행정, 도시계획 및 개발, 학문적 연구라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 경유해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나의 집사람 때문이다. 54년간 삶을 같이해온 사람과 사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5쪽) 부인과 사별한 후 그는 서울시립대에서 도서관 한편에 마련해준 전용 연구실에 매일 출근하며 자기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원고를 써내려갔다. 그렇게 나온 첫 번째 원고가 정비석의 <자유부인>에 대한 당시 사회의 반응을 다룬 ‘불륜 앞에 자유로운 자, 돌을 던져라’이고, 두 번째 원고가 ‘나는 어떻게 부정선거를 치렀나: 3·15 부정선거 이야기’라고 한다. 선거 직후부터 쓰고 싶었던 부정선거 체험기를,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써냈다.
“어떤 경우라도 그날의 부정선거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때 자신이 한 일을 정당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이 점을 밝혀두고 싶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선거는 제1대 국회의원 선거인 1948년 5·10 선거부터 이미 부정선거였다. 정말 슬픈 유산을 물려받았고 나 역시 그 유산을 이어 원흉의 자리에 있어야만 했다. 위에서 내려진 명령에 충실했다고 말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178쪽)
저자는 그 부끄러운 역사를, 철저한 자료 조사와 비상한 기억력을 통해 복원해냈다. 본인이 직접 개입한 바 있는 3·15 부정선거뿐만이 아니다. 미군정시대에 대해 이전에 썼던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핵심 인물 이묘묵의 존재를 알아내고 그를 중심으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3년간의 역사를 그려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던 자신의 경험과 일제강점기 막바지 사회적 분위기의 접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1944년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같은 반 학생 거의 모두가 담배를 피웠다. 왜 그랬을까? 이는 일본의 징병제 실시에 대한 항거이고 거부였다.”(28쪽) 이 책은 개인적 회고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고찰이지만 둘 중 어느 영역에도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년의 양식’이 책 전체를 감싼다.
<노정태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