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제갈량>-삼국지의 책사들은 여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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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제갈량>-삼국지의 책사들은 여자들이었다?

입력 2016.05.23 15:44

그들 스스로 왕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들인데, 왜 책사로 남아 있었을까?’ 물론 유비나 조조가 그만큼 훌륭한 군주였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건 책사들이 여자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남자들의 야심, 천하를 통일하려는 거대한 욕망, 그리고 그 안에서 오가는 사나이들이 진한 우정. <여자 제갈량>은 이러한 <삼국지 연의>의 세계에 질문을 하나 던진다. ‘<삼국지>의 책사들은 그들 스스로 왕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들인데, 왜 책사로 남아 있었을까?’ 물론 유비나 조조가 그만큼 훌륭한 군주였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작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상상력을 덧대어 물음표를 흥미롭게 이어나간다. ‘그건 책사들이 여자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제갈량·순욱·곽가 등 여자 책사들의 고독
웹툰 <여자 제갈량>은 이 상상력을 기반으로 제갈량과 순욱, 곽가 등 주요 책사들의 성별을 여자로 바꿔 그린다. 바뀐 것은 책사들의 성별 하나뿐인데, 이 때문에 <삼국지 연의> 전반의 세계관과 정서가 완전히 달라진다. 남자들의 비중을 덜어낸 자리에는 소수의 야심으로 인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약자들의 무력감,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을 지켜보는 여자 책사의 고독이 채워진다.

김달 작가의 만화 의 한 장면./레진코믹스

김달 작가의 만화 <여자 제갈량>의 한 장면./레진코믹스

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건 여자였다. 여자는 재물로 환원되거나 아기를 낳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버려지거나 손쉽게 팔려나갔다. 여자 책사들은 그러한 땅의 여자들 중 간택된 소수의 인재로, 그녀 주변의 여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죽임당하는 광경을 너무나 오래, 그리고 수도 없이 목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의 세계는 사내들의 세계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같은 곳을 응시하는 듯했지만 그녀들은 언제나 그들의 군주와 다른 프레임으로 세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조나 유비가 ‘천하’ 운운하며 차지해야 할 성과 땅들을 셈하고 있을 때 여자 책사들의 눈길은 그들의 야망 다툼 속에 죽어가는 약자들에게 닿아 있었다. 남자도 그러한데, 하물며 여자는 말이나 소 따위와 같았다. 누구든 쉽게 여자를 소유하고, 죽이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갔다. 조조나 유비, 손권 중 누가 황제의 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여자들의 삶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 책사인 제갈량도, 곽가도, 순욱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 모두 사내들의 나라에 충정을 바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자 제갈량>은 여자를 단순한 약자로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이러한 시대상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다. 곽가, 가후, 순욱만 해도 같은 여자 책사이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정립한다. 여자임을 드러낸 곽가는 같은 부대의 장수에게도 번번이 무시받고, 자신의 군대 초소에서조차 호위병 없이 혼자 다니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가는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숨기지 않고, 심지어 본인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조차 당당하게 드러낸다. 이에 비해 순욱과 가후는 공무를 할 때에는 늘 남장을 하고 나타나는데, 특히 순욱의 경우에는 “나는 여인이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하며 본인의 여성성에 대해 선을 긋는다. 가후의 결은 보다 복잡하다. 한족 출신인 순욱, 곽가와 달리 가후는 본인이 호족 출신의 최하위 계층 여성이라는 괴로운 자의식을 품고 있다.

작가는 ‘의 책사들이 여자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진행한다./ 레진코믹스

작가는 ‘<삼국지>의 책사들이 여자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진행한다./ 레진코믹스

디테일은 제각기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출사에 앞서 본인의 여성성을 생각한다. 이러한 책사들의 모습은 비단 2세기 중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도 여자는 사회에 한 발짝 발을 디딘 순간부터 본인의 여성성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주업이 개발자인 나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주변의 여성 동료들은 성별 편차가 매우 큰 이 IT업계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개 회사 내의 파트 리더급은 여성으로 채워졌지만, 이상하게 팀 리더 이상에서 여자를 찾아볼 수 없던 것이다. 퇴사한 여자 선배들을 떠올려 보면, 언제나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났지 밑바닥을 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여성 임원이 한 명은 있었는데, 그녀는 신입사원 연수 때 강사로 초청되어 “스스로 여자라는 자각을 버려라”고 강연했다. 남자들만 모이는 흡연실에도 쫓아들어가고, 남자들의 술자리에 끝까지 어울리고, 출산휴가도 최소한으로만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그녀는 훈장처럼 자랑스러워했다.

사내들의 나라에 충정을 바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인이 아닙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순욱의 모습에서조차 ‘여자’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꼬리표로 부각되었던 것처럼, 그 임원 역시 그랬다. 대리남성을 자처한 그녀였지만 그녀에게는 늘 ‘회사 내 유일한 여성 임원’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녔다. 그건 회사가 여전히 그녀에게 다른 남자 임원들과는 다른 역할을 기대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순욱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순욱은 “저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충성을 바쳐야 할 국가는 없습니다”라고 고쳐 말한 것이다. 방법이 어찌되었건 순욱은 여전히 여자인 자신들의 운명을 꿰뚫고 있었고, 그것을 회피하지 않았다. 조조가 황제가 되건 말건 그따위 ‘사내의 역사’와는 상관 없이, 순욱은 더 먼 후일의 여자들을 바라보며 ‘벽돌’을 하나씩 공들여 빚고 있었다.

물론 조조, 유비, 손권은 이러한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의 목표는 천하를 그들의 손에 쥐는 것이었다. 여자니 남자니 하는 일은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앞으로도 영영 안중에 없을 터였다. 이렇듯 군주들 개개인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야심을 품고 있을 때, 여자 책사들은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내고 여자의 세상을 보며 여자의 짐을 짊어진다.

그러나 이 앞길이 마냥 어두운 것은 아니다. 제각기 다른 방향을 택했더라도 순욱, 가후, 곽가는 서로 묘한 동질감을 공유한다. ‘여자’라는 정체성은 그녀들에게 타고난 핸디캡이자 벗어날 수 없는 짐이지만, 그 때문에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기틀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공동체란 군주의 국가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명확하고 강력한 국가와 달리 그녀들의 공동체는 단지 무언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는다. 그러나 그 정도 위안만으로도 공허함으로 가득찬 또 하루의 밤이 무사히 넘어가고 다음날의 아침 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유하는 <7월의 강>에서 ‘사라지는 것만이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한다’고 썼다. 과연 이 ‘생각’은 이후 어떤 모양새가 될까. 확실한 건 그것이 결코 관념만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 언젠가 각자의 머릿속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꾀하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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