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물금에서 듣는 송대관의 ‘네박자’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깊은 밤 물금에서 듣는 송대관의 ‘네박자’

입력 2016.05.16 15:41

아마도 매정하게 인연을 끊을 정도는 아니고, 낮에 뭔가 오해가 있어 서로 마음을 조금만 풀면 또 하염없이 동반하여 살아갈 듯한 관계인 듯, 그는 송대관의 ‘네박자’를 핸드폰에 입을 대고 열심히 불렀다.

물금!

깊은 밤에 큰 도시 양산으로 가기 위하여 물금에서 내렸다. 역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살펴보니 10분 후에 한 대가 도착할 예정이라고 첨단의 정보시스템이 일러준다. 10분이면 적절한 시간이다. 3분이거나 30분이면 마음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질 텐데, 10분이면 담배 한 대 피면서 잠시 어둠 속의 물금을 응시할 만한 시간이다. 그런 마음으로 버스정류장에서 조금 벗어났는데, 깊은 밤이라 아무도 없음에도 정류장 근처는 금연구역이라는 작금의 사태에 어느덧 몸이 적응된 것이리라.

물금이라, 한자로 勿禁이라고 쓴다. 낙동강이 펑퍼짐하게 넓어지는 곳이라 옛날에는 포구의 기능도 하였고, 때로 홍수로 범람하면 생계의 지장도 많아서 ‘물이 지겨워서 물금’이라는 유래도 있지만, 다른 해석으로는 큰 산이 사방으로 기립하여 있어서 고기잡이도 할 수 있고, 산으로 올라가 채취도 할 수 있고, 또한 논농사도 지을 수 있는 곳이라 뭘 해도 먹고살 수 있는 걸 막을 수 없는 곳이라 하여 ‘물금’이라고 했다는데, 이런 얘기는 오래전 조성기의 단편소설 ‘통도사 가는 길’을 읽다가 얻은 짤막한 정보다. 특이하게 공경어체로 쓰여진 일종의 여행교양소설인 이 단편에서 조성기는, 그때는 요즘처럼 신도시가 들어서는 곳도 아니요 소읍도 아닌, 사방이 논밭이었을 작은 빈촌에 대해 이렇게 썼다.

“물금(勿禁), 말 물, 금할 금…(중략), 금하지 않는다. 무엇을 금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금하지 않는 대상마저 없으니 좀 과장해서 말하면, 마치 무한한 자유의 공간 속으로 갑자기 내던져진 기분이었지요. 자유의 현기증, 자유로부터의 도피, 뭐 이런 말들을 사용한 학자가 있기도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약간 어찔해졌지요.”

경부선 물금역에 무궁화호 열차가 멈춰서 있다.

경부선 물금역에 무궁화호 열차가 멈춰서 있다.

‘니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부르는 노래’
그때는 그런 소설들이 많았다. 도회지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자들이 먼 곳,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정 속에서 의외의 발견이나 갑작스런 깨달음이나 생경한 풍경에 사무치는 작품들 말이다. 저 멀리로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있었고, 1980년대 이후로만 잡아도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비롯하여 신경숙의 ‘부석사 가는 길’, 이순원의 ‘은비령’, 김형경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등이 있었다. 조성기의 ‘통도사 가는 길’도 그런 맥락의 작품인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순천이나 창수령이나 부석이나 서산의 실제 삶과는 다소 무관한, 작가 자신의 방황하는 내면을 낯선 소읍 풍경에 투사하는,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시골과 도시>에서 분석한 대로 ‘도시인의 낭만적 투사의 대상으로서 시골 풍경’이 되는, 그런 작품들이다.

그런데 어쩌랴. 이 낯선 마을에 당장 살지 않는 입장에서, 특히 새벽 안개를 맞이하거나 깊은 밤의 서정을 보게 되면 또한 그런 ‘낭만적 깨달음의 감정 투사’가 반사적으로 발생하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일이다. 물금, ‘말 물에 금할 금’이니, 아니 오히려 엄격한 금기와 계율이 압도하는 그런 마을은 아닐까, 생각이 그렇게까지 터무니없이 늘어지는 중에 곧 버스 도착 예정이라는 기계음이 들려온다.

“건너가서 타이소.”

아, 이런. 10분을 기다렸으나 허탕을 쳤다. 깊은 밤이라 어둠 저 너머 반대편에도 정류장이 있으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기다렸는데, 이 버스는 내 목적지의 정반대 방향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버스라고 했다. 길을 건너 정류장의 안내판을 살펴보니, 다음 차는 40분 후에나 온다는 정보. 그것도 막차라고 한다.

갑자기 주어진 40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주점과 노래방과 식당이 어수선하게 펼쳐져 있는 역 앞의 거리로 들어선다. 역에 가장 가까운 지하 주점에서 쿵쾅쿵쾅 틀어놓은 음악이 거리를 압도한다. 여러 사람이 일어나 합창을 한다. 트로트 반주는 건물을 흔들 정도고, 그에 맞춰 동시에 부르는 몇 사람의 노래는 차라리 악을 쓴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장쾌하다.

40분은 부족하기도 하고 충분하기도 한 시간이지만 곧바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담배 한 대 다시 피우다가 그만 깨닫고 말았다. 주점과 노래방과 식당이 어수선한 거리의 문 닫은 가게 앞 낡은 파라솔 의자에 앉아 담배 한 대를 또 피우고 나니 34분으로 줄고 곧 26분으로 줄어들었다. 주점에서 한 사람이 급히 나와서 내 옆의 의자에 앉아 통화를 한다.

“헤임요. 보소, 헹님. 아이, 그게 아인데. 그리 생각하면, 아이 헹님은, 참 그게 아인데….”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걸려온 중요한 전화 때문에 급히 주점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그는 연신 “헤임요, 헹님. 아이고마, 헤임요…” 하면서 웃기도 하고 투정도 하고 역정도 냈는데, 어느 순간 눈이 마주치게 되어 가만 보니 70대의 노인이었다. 술을 많이 드셨고 또 목청도 좋아서 아까 들렸던 주점의 노랫소리를 주도한 분이 아닌가 싶은데, 어쨌거나 눈가의 주름이며 행색은 70대였다.

“헤임요. 내는 헹님하고 쭉 같이 간다, 내 몇 번이나 그랬는교. 아유, 섭섭어라, 헤임요. 어버이날이 다 무신 소용이라, 하아 참, 고정하시고요, 내 노래 하나 불러디릴께. 하마, 쫌 고정하시고 들어나 보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진짜로 노래를 불렀다. 송대관의 노래였다. 아마도 매정하게 인연을 끊을 정도는 아니고, 낮에 뭔가 오해가 있어 서로 마음을 조금만 풀면 또 하염없이 동반하여 살아갈 듯한 관계인 듯, 그는 송대관의 ‘네박자’를 핸드폰에 입을 대고 열심히 불렀다.

니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내려보는 사람도 위를 보는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라네
쿵짝쿵짝 쿵짜자 쿵짝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경부선 물금역 입구

경부선 물금역 입구

예의와 공경을 받던 ‘노인’은 사라졌다.
70대 노인의 ‘네박자’, 핸드폰에 대고 거의 악을 쓰듯이 부르는 ‘네박자’. 채영희의 논문을 보면, 우리의 미디어는 노인을 “구부정한 허리, 여윈 몸, 이빨이 빠진, 허름한 옷을 입은, 거동이 불편한” 등으로 재현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노인’ 또는 이보다 더 비하적인 표현인 ‘늙은이’라는 단어에서 “초라한, 무기력한, 망령이 든, 오갈 데 없는, 귀가 먹은, 못살게 구는, 냄새 나는, 주책맞은, 수다스러운, 자신의 늙음을 모르는, 젊은이를 희생시키는” 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마을공동체 구성원으로부터 예의와 공경을 받던 예전 시대의 ‘노인’은 완전히 사라졌다.

뒤르켐이 말한 “개인은 자신보다 오래되고, 자신보다 영속하며, 모든 면에서 자신을 감싸는 집단적 존재와의 유대를 더욱 강하게 느껴야” 하는 그런 감정 상태는 우리 사회에서 전면적으로 해체되었고, 특히 노인들에게 그 감정의 해체는 깊은 상처가 된다. 파라솔 의자에서 고꾸라질 듯 몸을 휘청대면서 그는, 아니 노인은 계속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중에 “헤임요, 우리 고마 쭉 같이 가는 가라, 헹님요” 하면서.

한구절 한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인생사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