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드의 바흐를 들으면, 굴드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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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의 바흐를 들으면, 굴드만 들린다

입력 2016.05.10 16:19

바흐는 냉정하게 말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오선지 위의 음표만 남겼다. 베토벤도 직접 녹음을 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렇다면 ‘바흐처럼, 베토벤에 가깝게, 쇼팽이 연주하듯이’라는 말은 공허한 상상일지 모른다.

며칠 전, 같은 동네에 사는 ‘페친’이자 이따금 책과 관련된 일로 만나기도 하는 실력파 번역가 노승영씨가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의 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글렌 굴드는 괴팍하다”는 대사를 특히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그 글에 여러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굴드는 괴팍하다’는 말이 단서가 되어 저마다의 단평이 이어졌는데, 대체로 ‘굴드의 바흐를 들으면 바흐를 듣기보다 굴드를 듣는 느낌이다’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 소감은 노승영씨가 인용한 영화의 대사이기도 하다.

나도 댓글을 달았다. “김우창 선생님도 굴드는 쫌 ‘이상하게 친다’고 하셨죠. 그러나 에드워드 사이드는 ‘바로 그 점이 굴드다!’ 하면서 모든 것이 소외되고 인간도 소외되고 따라서 예술도 소외되는 시대에 스스로를 익숙한 관습으로부터 아예 소외시켜, 아 이건 굴드다! 하는 자율성을 획득한 것은 아닐까요. 특히 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4번 ‘열정’ 1악장이 대표적!”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쓰자마자 갑자기 생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캐나다 출신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캐나다 출신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무결점의 음반에 도전한 완벽주의자
예전에 나는 굴드에 대하여 다만 ‘괴팍한 완벽주의자’ 정도로 이해하고 그런 관점의 글을 썼었다. 공연장의 어수선한 상태를 벗어나 자기만의 성채(개인 스튜디오)에 스스로를 유폐하여 피아노 녹음의 절대적 상태에서 가히 무결점의 음반에 도전한 완벽주의자 말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지휘자 오이겐 요훔을 언급한 적도 있다. 그가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를 녹음할 때 스튜디오 엔지니어 때문에 몇 번이나 연주를 중단한 사례 말이다. 급기야 요훔은 당신이 지휘자냐고 화를 냈으나 엔지니어가 ‘바이올린 파트가 너무 세다’며 첨단 녹음기계의 바늘을 가리켰고, 대지휘자 요훔은 그제야 물러섰다는 얘기다.

이를 ‘연주’라고 할 수 있는가. 영국의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불멸의 걸작(특히 한국의 클래식 문화에서)이니, 거장의 혼이 담겼느니 하는 꽤 많은 음반들이 실은 20세기 중엽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레코딩 산업, 그러니까 유럽은 물론 제3세계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생성된 중산층 문화에 의해 지구 끝까지 확장된 클래식 문화산업을 차지하려는 탐욕의 소산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를테면 지휘자 카라얀과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그리고 피아노의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함께 한 앨범은 세계적인 명반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세 사람이 녹음 전후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 미묘한 신경전이 음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레브레히트는 말한다.

물론 공연장도 진부한 레퍼터리에 관습적 매너들이 압도하여 음악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가려는 연주자와 수용자 모두에게 불편의 야회(夜會)처럼 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글렌 굴드는 이 모든 관습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나도 말해 왔다. 특히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그의 1955년 데뷔 음반이다. 이를 시작으로 10년 가까이 최고의 라이브 연주자로 활동하였다. 피터 오스왈드는 굴드의 생애를 거의 일별 단위로 기록한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에서 처음 그의 연주를 들었던 1957년 2월 28일 샌프란시스코의 기억을 이렇게 회고한다.

“굴드가 연주하는 모습과 함께 연주가 내뿜는 신비한 기운은 청중에게 금방 전달되어 이제 청중도 넋을 잃고 빨려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굴드의 모습과 동작은 청중에게 마치 주문을 거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일종의 유혹이었다. 관객을 심리적으로 그에게 가까이 끌어당기는 동시에 멀리멀리 천상의 공간으로 데려가서 그를 중심으로 돌도록 하는 것이었다.”

글렌 굴드가 평생 애용한 연주용 의자.

글렌 굴드가 평생 애용한 연주용 의자.

공연장 연주 중단하고 녹음에만 매달려
그랬는데, 돌연 굴드는 연주회장을 떠나고 만다. 1960년대 중반부터 일체의 공연장 연주를 중단하고 녹음에만 매달렸다. 수많은 변수에 의해 집중력이 방해되는 공연장보다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수십 번씩 연주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선호하였다. 1981년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녹음이 그 결실이다. 굴드는 무려 1000시간이 넘도록 녹음에 몰두하여 그 중 가장 뛰어난 부분만 골라서 만들었다.

일단 이런 생각으로 굴드를 들어왔다. 굴드를 듣기 위해서는 다른 연주자들도 모조리 들어야만 한다.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면 루돌프 제르킨, 마르타 아르헤치리,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그레고리 소콜로프, 로절린 투렉, 안드러쉬 쉬프, 엘렌 그뤼모 등 끝이 없다. 물론 이 기나긴 명단의 다른 연주자를 듣는 일도 마찬가지 수고를 들여야 한다. 다른 이를 듣기 위해 굴드를 또한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굴드의 바흐를 들으면, 바흐가 아니라 굴드가 들린다’는 말이 처음에는 거슬렸다가 점점 꼭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읽어보니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의 저자 미셸 슈나이더는 “굴드의 연주의 특징은 기술적 차원이나 개념적 차원에 있지 않다. 감히 말하건대 그것은 영적인 차원이다. 그의 존재가 매 순간, 그리고 영원히 음악 속에 있는 듯싶었다. 그 누구와도 달리 그는 음악을 주체가 아닌 존재와 연결지었다. 격렬한 개념, 치밀한 현전, 절대적인 참여.”

슈나이더의 이 지극한 찬사는 일단 수사적 차원이다. 불멸의 연주가들 중에 이 정도 수준의 강렬한 몰입이 결여된 자가 누가 있겠는가. 저마다 독보적인 관점과 경이로운 연주로 그들은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기를 원한다. 21세기의 은둔자 소콜로프가 들려주는 견고한 바흐, 흡사 관악기 연주자들과 동시다발적인 연애를 하는 듯한 엘렌 그뤼모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 2악장, 쇼팽을 구원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폴리니의 음반들.

단, 위의 모든 거장들과 한 뼘 정도 다른 점은 글렌 굴드가 스스로를 극단적으로 소외시키면서 일종의 유폐된 음악, 즉 19세기 이후의 낭만적 피아니즘이나 20세기 중엽에 발달한 클래식 산업의 정형적인 관습으로부터 악착같이 벗어나려 했다는 것이다. 소외! 정치사회적 소외뿐만 아니라 인간 실존 자체가 위협되는 상황에서 연주가가 관습 바깥으로 탈출하면서 기존의 익숙한 피아니즘에 균열을 내는 것!

찾아 보니 이 점에 주목하여 에드워드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대부분의 음악 연주자들이 시도하지 않고 어쩌면 시도할 수도 없는 특정한 유형의 진술로서도 전달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전문화 시대, 반인본주의적인 원자화 시대에 연속성, 합리적 지성, 미적 아름다움의 가치를 주장하는 진술이다. 따라서 굴드는 즉흥에 가까운 연주를 통해 연주의 경계를 넓혀 음악의 본질적인 모티브 흐름과 창조적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이로써 굴드의 연주는 “인간의 정신을 죽이고 인본주의와 합리화를 거부하는 만연된 관행에 대항하는 새로운 논의”의 비평적 대상이 된다. 다시 사이드를 인용하건대, 굴드는 “관습적인 영토에서 벗어나 연주를 통해 자신의 거주지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를 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의 1악장에서 거듭 확인한다. 속도가 모든 것을 증명하지는 않지만, 굴드의 1악장 연주 시간은 14분50초가량이다. 알프레드 브렌델은 9분40초, 머레이 페라이어는 9분45초, 조금 여유 있는 기록으로는 1960년 전성기 때의 리히터가 10분8초 정도로 마쳤고, 클라우디오 아라우도 10분20초가 걸렸다. 대체로 10분 안팎으로 연주하는 ‘열정’ 소나타 1악장을 굴드는 15분 가까이 눌렀다. 8분50초로 마친 임동혁의 연주에 비해 2배 가까운 지속이다. 언급한 모든 연주가 하나같이 독보적으로 빛나는 별이지만, 이렇게 ‘괴팍’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굴드는 클래식 연주문화라는 컨벤션 자체로부터 완전히 이탈해버린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말한다. 그가 연주하는 바흐는 바흐가 아니라 굴드처럼 들린다고. 맞는 얘기다. 바흐는 냉정하게 말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오선지 위의 음표만 남겼다. 베토벤도 직접 녹음을 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렇다면 ‘바흐처럼, 베토벤에 가깝게, 쇼팽이 연주하듯이’라는 말은 공허한 상상일지 모른다. 바흐나 베토벤의 악보를 품에 안고, 스스로를 유폐시킨 성채로 들어가서 극한의 고독에서 극단의 자유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굴드였고 따라서 그의 연주는 바흐나 베토벤이 아니라 ‘굴드 그 자신’이 되었다. 다시 베토벤의 ‘열정’ 1악장을 듣는다. 15분 동안 그는 점묘파처럼 건반을 꾹! 꾹! 누른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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