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 힘겨웠던 세월호 ‘약속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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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힘겨웠던 세월호 ‘약속 콘서트’

입력 2016.04.18 15:46

노래를 잘 부른다고 열렬히 환호를 하는 무대도 아니고 환호가 없다 해서 더 열창을 하는 퍼포먼스를 할 수도 없는, 노래하는 이나 이를 듣는 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볼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선거 다음날, 마침 그 도시에 일이 있어 약속된 일을 다한 후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곳을 다시 가보았다. 세 번쯤 그곳에 갔었고, 또 이렇게 걸음을 하게 되어 서너 차례 가게 되었는데, 갈 때마다 그곳을 내리누르는 무거운 공기를 좀처럼 이겨내기 힘들었다.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

평일의 한낮이라 찾는 이가 많지는 않아서 흐린 날씨의 공기는 더욱 무거웠다. 분향소에 이르는 입구를 들어서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설치 조형물이 먼저 보였다. 경기도미술관이 참사 2주기를 맞아 준비한 ‘사월의 동행전’의 일환으로 설치된 최정화 작가의 ‘숨 쉬는 꽃’이다. 이를 비롯하여 많은 작가들이 이 전시회에 참여한다. ‘동행하다’, ‘기억하다’, ‘기록하다’는 주제 아래 22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는 6월 26일까지 진행된다. 잠시 검은 연꽃을 보다가 분향소 안으로 걸어갔다. 시간이 정지된 그 안에는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고요함이나 차분함이 아니라 격렬한 감정을 겨우 누르고 있는, 그런 막중한 적막이었다.

그래도 몇 번은 찾아온 적 있다고 내 마음은 달리 기억을 하는지 깊은 한숨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눈물 몇 점은 그래도 비치지 않았는데, 한순간 걸음을 떼지 못하고 말았다. 아이들을 기억하는 작은 물건들, 편지들, 그 안에 배어 있는 애틋한 사연들은 애써 담담히 보고자 하여도 차마 온전히 보지 못하고 마저 읽지도 못할 따름인데, 수많은 아이들의 슬픈 사진들 밑에 그 아이들이 참변을 겪지 않았더라면 마땅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사랑받았을 생일을 축하한다는 꽃다발들이 놓여 있었다.

4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약속 콘서트’ 모습.

4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약속 콘서트’ 모습.

안산 합동분향소 입구의 연꽃 전시회
아, 벌써 2년.

그 모진 세월 동안 이 모든 아이들은 두어 번씩 생일을 지냈으니, 가족과 친구들이 이를 기억하여 꽃다발 하나씩 안겨주었으나 아이들은 차마 이를 받지 못하고, 다만 사진 속에서 해맑은 웃음으로 자기 생일을 축하하는 한 줌의 꽃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간신히 참긴 하였으나 눈물이 속으로 흘러 몸속으로 번졌다.

바깥으로 나와 한숨을 돌렸다. 분향소 뒤편에 위치한 경기도미술관에서는 이 비극의 2주기를 기억하기 위한 사진작가들의 전시가 예고되어 있었는데, 전시 준비 관계로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어 먼 곳을 몇 번 보고는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있었다. 이틀 뒤의 2주기 문화제를 위해 여러 사람들이 애를 쓰고 있었고, 물론 그 중에는 어느덧 이곳이 삶의 거처가 되고 생활의 장소가 되고 진상 규명을 위한 힘겨운 나날의 투쟁 현장이 된 유가족들이 있었다. 참사의 와중에서 일상의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슬프고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공기는 무겁고 일은 고되다. 크게 웃을 수도 없고 아무렇게나 앉아 있을 수도 없다. 그래도 문화제 준비를 위해 일손을 서로 거들다 보면 더러 격려를 위한 농담도 해야 하고, 고맙다고 웃기도 해야 한다. 그런 작은 일상의 흔적조차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그런 장소의 2년이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참사 이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이 아예 얼굴에 배어버렸다고 말한 적 있다. 어디에나 노출되어 있고 또 누구라도 힐끗 돌아보게 되는 상황에서 외롭고 긴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그러는 중에 반가운 사람 만났다고 웃을 수도 없고 배가 고프다 해서 자연스럽게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행여나 지나가는 사람이 힐끗 보고는 세월호 유가족이 웃는다고, 밥을 먹는다고, 편히 앉아 있더라고, 혹시라도 그렇게들 무언의 말로 매도할까 염려되어 김영오씨를 비롯한 수많은 유가족들, 한 아이마다 서넛의 가족으로 잡아도 무려 1000여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시선의 압박 속에서 무려 2년의 시간을 살아온 것이다. 나는 유가족들이 머무는 컨테이너 사이를 빠르게 지나쳤다. 잠시 시간이 났다고 잠깐 찾아오는 나 같은 사람이 무감각한 시선의 목격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안산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 앞에 설치된 최정화 작가의 . / 경기도미술관 제공

안산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 앞에 설치된 최정화 작가의 <숨 쉬는 꽃>. / 경기도미술관 제공

작품 먼저 보면서 시선 흐트러질 우려
분향소를 나오면서 다시 조형물을 보았다. 상처를 작품으로 한다는 것은 ‘재현의 윤리’, 즉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 상처를 대상화하고 소재화하고 때로는 스펙터클로 삼는 경우가 있어, 언제나 그것을 기획하거나 그에 따라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긴장하게 한다. 이 전시회 자체도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미술관 측은 유가족들을 만나 전시의 뜻과 그 방향을 깊이 논의했고,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진행되었다.

다시, 연꽃을 본다. 검은 연꽃. 10m 크기의 거대한 꽃이다. 공기의 양을 일정하게 조절하여 검은 연꽃이 부풀어 올랐다가 잠시 가라앉았다가 다시 부풀어 오른다. 연꽃, 곧 살아있는 생명의 상징이며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헌화다.

그런데 조금은 불편하다. 나는 지금 이 작품에 대한 조형적 평가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 위치, 그 장소를 걱정하는 중이다.

추모하러 화랑유원지 입구에 들어서는 사람은 크게 부풀었을 때 10m 달하는 거대한 연꽃에 우선 시선이 가닿을 수밖에 없다. 이 곳에 이 작품이 없었을 때, 그러니까 착잡한 마음으로 화랑유원지 정문으로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200여m 앞의 정부합동분향소를 먼저 보게 된다. 그 순간 착잡한 마음은 더욱 무거워지고, 고개는 숙여지고, 발걸음은 신중해진다. 그리고 천천히 분향소를 향해 200여m를 힘겹게 걷게 된다. 그 걷는 시간이 진실로 중요하다.

그런데, 전시에 의하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설치 작품을 먼저 보게 되면, 사람들은 비록 착잡한 마음은 여전하겠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 ‘이건 뭐지? 작품인가? 아 연꽃이구나. 검은 연꽃’ 하며 애틋한 분향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부풀어올랐다가 오므라드는 작품을 먼저 보면서, 자칫 시선이 흐트러질 우려가 있다.

이는 조형적 판단 이전의 문제다. 여기는 전시의 장소가 아니라 분향의 장소이며, 완결된 장소가 아니라 미완의 장소이며, 200여m를 힘겹게 걸어 분향소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장소다. 그 입구에, 시선을 피할 길 없는 위치에 10여m 크기의 작품이 설치되는 것은 ‘설치’라는 작업의 핵심적인 요소, 즉 ‘설치되는 장소와 시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하게 만든다.

먼저 무거운 마음으로 분향을 하고, 그 후에 마음을 가다듬고, 한 숨 몇 번 쉬고 나서 천천히 분향소 뒤편의 야외나 실내 곳곳에 설치된 여러 작가들의 여러 작업을 깊이 들여다 보고, 그러는 중에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꽃망울을 터트리는 검은 연꽃의 조형적 의미와 상징을 깊이 생각하도록 동선과 시선을 배려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거듭한다.

지난 4월 9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약속 콘서트’를 기억한다.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시민들이 추모와 기억과 약속을 위하여 광장에 나왔고 여러 가수들이 힘겨운 무대에 올랐다. 그들이 올랐던 수많은 무대와는 전혀 다른 무대였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열렬히 환호를 하는 무대도 아니고, 환호가 없다 해서 더 열창을 하는 퍼포먼스를 할 수도 없는, 노래하는 이나 이를 듣는 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볼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김태원이 이끄는 록밴드 ‘부활’이 힘든 무대에 올라섰고, 한영애가 올라왔고, 이승환이 또 올라왔다. 모두가 힘들게 불렀다. 각자의 장르에서 최고 수준의 가창과 퍼포먼스를 수십년 해온 뮤지션들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모든 요소를 억제했다. 그들이 억제할수록 그 무거운 한숨마저 전달되어 추모의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또한 공명했다. 인사말도 조심스러웠고 마이크를 잡는 동작 하나조차 조심스러웠는데, 그런 조심스러움이 무대를 오히려 꽉 채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 마음이 진실로 무거워졌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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