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종막을 고하는 LP 문화·CD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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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종막을 고하는 LP 문화·CD 문화

입력 2016.04.05 14:55

1960년대 고졸한 음악감상실의 바흐, 1980년대 열혈 수집광들의 베토벤, 1990년대 세기말의 말러 열풍 등은 모두 우리의 문화 현상이다. 그러나 LP나 CD를 이용하는 음악 듣기는 점점 사멸하고 있다.

며칠 전, 아직 본격적인 황사는 밀려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야를 잔뜩 흐리게 한 미세먼지들이 분분한 가운데 잠시 틈이 나서 내 사는 도시의 큼직한 ‘중고책방’에 가보았다. 어느 인터넷서점이 신규사업으로 전국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이 책방의 이름이 ‘헌책방’이 아니라 ‘중고책방’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헌책’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오래된, 먼지 묻은, 퇴락한, 비좁은’ 등의 이미지 대신 ‘중고’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얼마든지 읽을 수 있고 장식도 할 수 있는, 새 책에 가까운 그런 책들을 집산했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내 사는 도시의 ‘중고책방’은 이 인터넷서점이 운영하는 전국의 ‘중고책방’ 중에서도 가장 크고, 실내로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흡사 어느 대학의 중앙도서관 같은 분위기다.

책들은 비록 누군가의 손을 한두 번 거치기는 했어도 새 책처럼 진열되어 있다. 이로써 책들이 폐지의 운명을 벗어나 새 생명을 얻게 되었는데, 한편 전국 곳곳의 헌책방들이 문을 닫는 결과도 빚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책을 살 때는 형사법 상의 범죄는 아닐지라도 뭔가 문화사적인 역조와 퇴락에 공모하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도 더러 있다.

서울 홍대 앞 ‘레코드포럼’의 표진영 사장(왼쪽)과 건물을 내준 ‘카페 B.’의 한승화 사장이 2012년 5월 간판을 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서울 홍대 앞 ‘레코드포럼’의 표진영 사장(왼쪽)과 건물을 내준 ‘카페 B.’의 한승화 사장이 2012년 5월 간판을 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음악 애호가들의 CD는 다 어디 갔을까
이 서점의 한편에 ‘중고음반’이 꽤 많이 진열되어 있다. 이미 ‘음반가게’가 멸종되다시피 하였고, 20여년 동안 신촌에서 명맥을 유지해온 ‘향뮤직’도 지난 3월 12일에 문을 닫았다. 이 일대의 아날로그 음악문화를 지탱했던 목마레코드나 광화문의 박지영레코드, 시청앞의 오리지널음악사 등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고, 홍대앞의 레코드포럼도 힘겨운 발자취만 남긴 채 기억의 골짜기로 사라졌으니, 그 옛날의 LP문화는 물론 CD문화도 서서히 종막을 고하는 중이다.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광화문의 교보문고 음반 매장도 실내 리뉴얼을 할 때마다 점점 축소되어, 과거에는 음반 매장 안에 별도로 분리된 클래식 매장이 존재하여 주위의 소음으로부터 어느 정도 차단된 고즈넉한 음악의 도서관 역할을 하였으나, 지금은 그저 맨 안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며칠 전 들렀던 ‘중고책방’의 음반 진열장은 그런 대로 구색이 갖춰져 있다. 일부러 음악문화를 장려하기 위하여 코너를 큼직하게 했다기보다는 꽤 많은 사람들이 소장했던 CD를 내다팔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아는 몇몇 음악 애호가에게 음반 수집가들이 갖고 있던 CD를 파일로 옮겨놓은 후 대대적으로 하우스 세일을 했다. 비록 시각적으로 허전해졌을지라도, 그 모든 음원은 컴퓨터 폴더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이를 요즘 유행하는 ‘피씨 파이’(아날로그 하이 파이 문화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조어)로 너끈히 탐미하고 있는 중이다. 음악 듣는 방식이 완전히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열심히 수업을 잘 따라온 어느 학생에게 바흐 음반, 즉 CD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고맙다고 받기는 하면서도 어쩔 줄을 몰라했다. CD를 들을 방법, 즉 오디오가 없는 세대인 것이다. 자기 방에도 없고 학교에도 없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MP3 기기나 고사양의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어온 세대 아닌가.

이렇게 물리적인 방식만 바뀐 게 아니다. 음악, 특히 클래식을 대하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조건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 즉 1960년대 이후로 거칠게 요약해 본다면 클래식을 듣는 행위는 대략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성산2동 주민센터의 다들카페 추억의 음악 감상실. / 강윤종 기자

서울 마포구 성산2동 주민센터의 다들카페 추억의 음악 감상실. / 강윤종 기자

그 첫째는 1960년대의 교양 애호 문화다. 그 당시 대학 안팎의 소수 엘리트 감상자들이 서양 클래식을 낭만적 감상문화이자 반드시 익혀야 할 교양문화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보가 부족하던 시기였기에 음악가의 생애와 그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그 중에서 슬픈 일화나 사랑 이야기에 특히 주목하여 애상적으로 접근하는 수가 많았다. 음악가의 출신 배경, 혹독한 성장기, 우울한 연애 실패담, 경제적 궁핍, 그리고 때 이른 죽음!

물론 김원구나 이순열, 안동림 같은 독보적인 존재들도 있었다. 2002년 9월 타계한 음악평론가 김원구는 황해도 봉산 출신으로, 일본 주오대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1969년부터 음악 평론과 보급활동에 이바지했다. <명곡을 찾아서> 같은 책으로 유명하다. 그는 전반적인 낭만적 감상주의 경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일정하게 비평적 시선을 견지했는데, 이를테면 1987년 7월 6일자 <매일경제신문> 기사를 보면 슈베르트 같은 음악가가 한국의 클래식 유입 과정에서 지나치게 과대포장되었다고 말한다. 1935년 전남 구례 출신으로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원로 평론가 이순열 또한 반세기 넘게 클래식의 해설과 평론 활동을 하였는데, 특히 베토벤이나 쇼스타코비치에 대하여 준열한 평문을 남긴 바 있다.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은 한국형 클래식 음악 듣기의 한 분수령이다.

그러나 이러한 독보적 감상주의의 관점이 있기는 했지만 1960~70년대의 클래식 수용 문화는 ‘낭만적 애상주의’와 ‘중산층 교양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특정한 문화를 수용하는 데 있어 반드시 견지되어야 할 긍정적 의미의 자기 검열, 즉 왜 우리는 이 문화를 우리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환멸과 긍정의 이중주가 클래식 분야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애상적 감상주의와 중산층 교양주의는 그 시대의 운명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수십년째 듣고 있는 이유
그 무렵의 문학평론가 김현은 <김현예술기행>이라는 책에서 프랑스 유학 시절의 감상을 날카롭게 적고 있다. “내 동료들이 한국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을까를 때때로 생각한다. 마치 그들이 엉뚱한 것을 생각하고 있으리라고 믿듯이 말이다. 개새끼!” 이런 강렬한 자기 환멸과 부정에 의하여 뿌옇던 시야가 환해지는 것이다. 김현은 국립대 교수가 왜 프랑스 유학까지 떠나왔는가 하는 대답 없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며 음악을 들었다. 그는 “세계가, 내가 없어도 내가 있을 때와 똑같이 활기를 띠고 진행되리라는 것을 느낄 때의 허무감”에 시달렸다. 그런 허무감의 위안을 얻기 위하여 음악을 들었다.

그 다음 세대는 1970~80년대에 형성된 고집스럽고 집요한 마니아 문화다. LP 음반이 대중화되고 동네마다 음반가게가 들어서고, 80년대 중반부터는 동유럽 일대의 음반이나 독특한 콘셉트의 독립음반들이 수입되어 더 많은, 더 독특한, 더 개성적인 음반을 추적하고 수집하고 필청하는 현상이 생기면서 기존의 애상적 감상주의 대신 음악사적·음향학적·연주 해석학적 마니아들이 형성된다. 김갑수 같은 엄청난 탐식가들이 이때를 대표한다.

마지막으로는 최근 10여년 안팎의 일로, 기존의 음반문화의 마지막 소비자로 공연장을 순례하고 클래식을 다른 학문과 겹쳐서 읽고 듣는 인문적 경향이다. 1980~90년대를 통과한 자들의 문화정치적 감수성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가령, 더 이상 베토벤은 청각장애에 연애 실패자가 아니라 혁명의 시대에 음악의 혁명을 이룩한 자다.

세 흐름 모두 당대의 문화사적 흐름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물론 과도한 서구 경도, 거장주의, 엄청난 수집욕 등은 어느 시대나 공통 현상이고, 문학이나 미술이나 영화도 엇비슷하다. 1960년대 영화 소비와 1990년대 영화 열풍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 왕년의 정영일 선생은 ‘가슴 아픈 명화’로 소개했고, 90년의 정성일 선생은 ‘저주받은 걸작’으로 소개했다.

하여간 그것이 유럽이든 남미든, 괴테의 소설도 한국문학이고 마르케스의 소설도 한국문학이다. 불문학은 한국문학이라는 김현의 단언은 클래식에도 적용된다. 바흐나 베토벤은 독일어권의 지역문화가 아니라 인류의 문화이며 따라서 우리의 문화다. 1960년대 고졸한 음악감상실의 바흐, 1980년대 열혈 수집광들의 베토벤, 1990년대 세기말의 말러 열풍 등은 모두 우리의 문화현상이다. 그리고 이제 그러한 음악 수용, 즉 LP나 CD라는 물리적 매체를 이용하는 음악 듣기는 점점 사멸하고 있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반성의 사유다. 왜, 우리는, 저 멀고먼 곳, 평균 8000㎞ 떨어진 나라들의 음악을 명반이니 거장이니 불멸이니 하며 수십년째 듣고 있는가. 이런 질문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한참 하다 보니, 그날은 그 ‘중고책방’ 음반매장에서 한 장도 안 사고 그냥 나왔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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