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황 연주, ‘라이브 공연’이 갖는 일회적인 엄숙성, 음악당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연주에 집중했던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자들까지도 존경하는 지휘자’로 추앙받는 이유다.
먼저 원곡을 들려준다. 조지 거쉰의 오페라 <포기 앤 베스>, 이 아름다운 연가의 백미인 ‘섬머타임’을 클래식 음반으로 들려준다. 학생들은 19세기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와는 조금 다른 빛깔의 이 노래를 조금은 의아한 표정으로 듣는다.
다음, 이 곡들의 변주들을 들려준다. 미국 횡단철도의 소음을 자기 음악의 원재료로 삼았던 조지 거쉰, 그의 시대를 장식했던 스윙재즈, 이 넘실대는 스타일 하면 곧장 떠오르는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피츠제럴드의 ‘섬머타임’이다. 고단한 노동, 슬픈 삶. 그러나 이를 서로 위로하며 견디는 가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었고 어머니는 더없이 아름답고 강물 위로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목화는 풍성하게 자라나는, 한여름밤의 꿈. 안타깝게도 현실은 쓰디쓴 고통이다. 다음으로 이 곡의 역사적인 재즈 버전들을 들려준다. 마일스 데이비스, 빌 에반스, 키스 재럿 등. 학생들은 단순한 곡이 수많은 갈래로 변주되어 가는 풍경에 감탄한다.
마지막으로 재니스 조플린의 ‘섬머타임’. 이제 질문을 할 차례다. 여러분. 재니스 조플린의 ‘섬머타임’은 어떤 느낌인가요? 선뜻 답하는 친구들이 없다. 독자 여러분도 찾아서 들어보기 바란다. 조지 거쉰에서 엘라 피츠제럴드를 거쳐 빌 에반스로 이어지는 달콤하고 낭만적인 음악이 재니스 조플린에 이르면, 자욱한 담배연기와 마약 냄새와 사이키델릭 조명 사이로 탁하고 거친 목소리가 갈피를 못 잡고 뒤흔들린다. 이윽고 한 학생이 대답한다. 소름 돋아요. 요즘 학생들의 표현이다. 곧장 질문을 이어간다. 만약 ‘K팝스타’, ‘슈퍼스타K’, ‘프로듀스101’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재니스 조플린 스타일로 부른다면 어떻게 될까? 떨어져요. 왜? 너무 독특해서요.
복제품을 양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맞는 얘기다. 위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복제품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창법도 감성도 화장도 손동작도 심지어 사연 많은 가족 이야기도 유명 기획사와 방송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성형하여 트레이닝하고 오디션을 본다. 재니스 조플린이 ‘K팝스타’에 도전했다면 늘 ‘공기 반 소리 반’을 강조하는 박진영 앞에 서지도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할 것이다.
이런 얘기를 왜 하냐 하면, 마치 기계처럼, 이 정부가 곧장 ‘인공지능 정책’을 연거푸 쏟아내기 때문이다. 정책 발표를 시작으로 관계장관 회의 및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인공지능 산업 개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기발한 창의와 깜짝 놀랄 만한 기술로 세상을 보란 듯이 뒤집어보기 위해 밤낮을 바꿔가며 개발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성원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국가 정책 1순위로 확정하여 상명하복의 방식으로 일제히 정책을 쏟아내는 방식, 익숙하다. 그 실패마저도 ‘기시감’으로 보이는 듯하다.
이게 다 알파고 때문이다. 지난 한 주는 알파고 신드롬의 나날이었다. 알파고가 단순한 회전 프로그램이 아니라 나날이 학습하며 앞으로 전진하는 프로그램이었듯이 우리 또한 알파고에 의하여 많은 ‘학습’을 했다. 과연 인간을 지배하는 기계문명이 도래하는가, 하는 다소 지나친 묵시록적 비관주의도 있었고, 지금의 직업분야가 급격히 재편되고 인간이 성장하여 배우고 익히는 교육과정에 전면적인 변화가 온다는 예측도 있었다. 소결론은, 인간이 잘 못하는 것을 알파고가 잘하고 인간이 잘하는 것은 알파고가 잘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가능한, 인간의 감각과 정서와 상상력을 최대한 발현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소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분야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서슴없이 꼽는 분야가 예술이다. 문학의 심오한 통찰, 미술의 격렬한 표현, 음악의 섬세한 감정 등은 알파고가 흉내낼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진정 그러한 미래를 위해서는 단서조항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인간적이어야 미래도 인간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미래에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고 두려워한다면 지금 인간을 기계장치로 종합하고 분석하고 통제하는 권력 시스템을 두려워하고 저항해야 한다. 테러방지법에 더하여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까지 추진하고 있는 국가권력은 이러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기 전부터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시민단체, 언론인, 지식인의 정보통신을 무차별적으로 감청한 바 있다. 미래의 알파고가 아니라 지금의 감시체제가 두려운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K팝스타’ 홍보 영상. / SBS
같은 맥락에서 예술을 살펴보자. 앞서 ‘문학의 심오한 통찰’이라고 얘기했지만, 문학의 경우 ‘스토리헬퍼’라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된 바 있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과 이화여대 디지털스토리텔링연구소가 30여억원을 들여 개발했다. 1406편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분석해 추출한 205개의 스토리 모티프와 11만6796개의 데이터베이스 요소로 구축된 이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고전적인 이야기 방식을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특정 장르의 전개 양상을 손쉽게 구사할 수 있고, 기존에 나온 작품과의 유사성을 비교하여 표절을 예방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창작의 근간이 되는 방대한 독서를 대신하거나 깊이 모를 사색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편리한 이야기 개발 프로그램이지만 작품 전체에 서려 있는 사색의 깊이와 그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의 독창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별개의 영역이고 아직은 기술이 투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를 보호하고 확장하는 것, 즉 프로그래밍할 수 없는 영역을 프로그래밍하려는 욕망을 자제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길이다.
인공지능이 흉내내기 어려운 것
음악은 어떠한가. 녹음기술의 전성기인 20세기 중엽 이후에 많은 음악가들이 체력의 한계나 기량의 소실로 인하여 기술에 의존한 사례가 많다. 노먼 레브레히트는 <클래식 음반세계의 끝>에서 애호가들이 ‘불멸의 명반’으로 추앙하는 곡들이 실은 거의 사기에 가까운 녹음기술에 힘입은 것임을 폭로한다. 이를테면 베토벤 소나타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빌헬름 켐프는, 레브레히트에 따르면, 혁신적인 녹음기술로 미숙한 기교를 보완하여 거장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글쎄,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자주 들었던 음반인데.
그러나 어쩌랴. 그 녹음 현장에서 지켜본 자의 증언이니 무시하기도 어렵다. 나이가 들어 고음을 낼 수 없는 왕년의 오페라 스타가 일단 되는 대로 노래를 하고 고역의 하이라이트는 신예 가수의 녹음으로 덮어씌운 일도 없지 않다. 요즘이라면 음정이 불안하거나 고역에 이르지 못하면 ‘오토튠’이라는 기술로 다 해결했을 것이다. 실제로 요즘 활동한 많은 비디오형 가수들은 ‘오토튠’이 없었더라면 실직했을 거라고들 얘기한다.
실황 연주, 즉 음악당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연주에 집중했던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자들까지도 존경하는 지휘자’로 추앙받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라이브 공연’이 갖는 일회적인 엄숙성, 생성되면서도 동시에 소멸되는 음악, 박수에 묻혀 영원 속으로 봉인되는 음악으로 드리는 제의. 이런 가치를 클라이버는 신봉했다. 바로 이런 점을 알파고는 흉내내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머나먼 미래에는 어찌될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나 먼 미래까지 걱정하는 것은 한가로운 일이다. 가까운 미래, 아니 지금 당장의 기계적 삶을 우리는 걱정해야 한다. 오늘의 기계적 삶을 걱정하여 인간적 가치를 보호해낸다면 미래의 후손들도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목요일 밤에, 오디션 프로그램 ‘위키드’를 보면서 쓰는 중이다. 꼬마 아이들은 노래를 정말 잘하고, 춤도 잘 춘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긴장하여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표정이라기보다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맞게 ‘프로그래밍’된 춤과 노래와 표정에 가깝다. 칼 군무를 추고, 기성 연예인들의 조금은 야릇한 제스처까지 흉내낸다.
꼬마 아이들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하지만, 지금의 어른들, 이 어른들의 연예흥행 문화가 이 정도 수준이다. 이렇게 문화가 표준화되고 심지어 박제화되고 있으니, 미래의 알파고가 아니라 오늘날 문화의 기계적 획일화. 그것이 두렵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