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며 낯선 마을에서 혼자 눈뜨고,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과 언어를 초월한 벗이 될 때 내가 누구인지 비로소 느끼게 된다. 다리가 붓도록 걸으면서, 걸어온 길을 통해 지혜를 얻고 걸어가야 할 길의 방향에 눈뜨게 된다. 그래서 여행은 삶의 예지를 얻는 ‘걷기 수행’이다.
내가 ‘여행을 떠난다’는 말을 할 때는 독일 바이마르에도 머물게 될 거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아는 벗이 독일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내가 만든 바이마르 지도를 주고 싶어서 가슴이 뛴다. 2014년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을 시작할 때 1회가 ‘괴테 실러와 바이마르를 함께 걷다’였으니,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마음은 언제나 바이마르에 가 있었던 것 같다.
독일 튀링겐 주의 작은 도시 바이마르. 고전주의 대가들과 위대한 사상가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 유럽과 독일 철학과 예술사에 의미 있는 발자국을 남긴 이들이 오래 머물렀고, 머물고 싶어했던 바이마르에는 지금도 그들의 영혼이 숨 쉬고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 프리드리히 실러, 프란츠 리스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 헨리 반 데 벨데, 발터 그로피우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이들이 바이마르에 모여들었고, 바이마르는 독일 고전주의의 중심지가 되었다. 내 영혼의 그릇을 넓혀준 ‘그들’ 중 여러 명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축복의 도시 바이마르는 천천히 걷는 시간만큼 먼저 살다간 이들이 나침반 하나씩을 손에 쥐어주는 곳이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건 한 명쯤은 만날 수 있다.
일름강에서 바라본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초록성(구관)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기억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한 사람의 역사는 영원히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도시.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골목마다 바이마르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상이 세워져 있고, 그들이 살았던 집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무조건 걸어야만 바이마르와 호흡할 수 있다.
다시 바이마르에 가면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안나 아말리아라는 작은 여인이 가진 지혜와 덕(德)이 당대의 거장들을 불러들여 바이마르를 독일 고전주의의 성지로 만들었다. 안나처럼 책을 많이 읽은 지혜로운 여성, 현명한 어머니를 역사 속에서 본 적이 드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꼽히는 곳을 아직 다 가보지 못했지만,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에 반해버린 나는 이곳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아껴 부르고 싶다.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초록성 로코코홀 창가에 서서 바라보는 일름강의 모습은 고요하다.
초록성 안에 있는 로코코홀(구관)에는 괴테가 수집한 책이 가득하다.
괴테는 이 도서관에서 38년 동안 감독관을 지냈고, 도서관의 책 관리에 관한 모든 권한이 괴테에게 주어졌다. 38년간 자신이 직접 책을 수집해 만든 도서관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을 것이다. 사랑의 강박증을 앓는 사람처럼 한 사람에게 안주하지 못하고 사랑을 찾아다녔던 괴테가 바이마르에 대한 사랑만은 변치 않고 긴 생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괴테가 읽은 책에는 작은 메모지에 일련번호가 써져 있다. 크로이터라는 사서가 일일이 번호를 매겨두어, 크로이터 번호가 매겨진 책들을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도 있다. 38년 동안 괴테가 읽은 책의 양은 상상을 능가한다. 불멸의 괴테, 그의 작품들이 가진 힘은 천재 괴테의 타고난 재능보다 엄청난 독서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괴테도 이 자리에서 일름강을 바라보았겠지. 그가 사랑했던 수많은 여인들을 이 창가에서 추억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찾아온 동양의 작은 여자가 초등학교 때부터 읽었던 수많은 명작들도 이곳에서 구상했을 테지…. 이런 생각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미 창가 서가에 서 있는 괴테의 환영이 보였다.
괴테가 읽은 책은 별도 표시가 돼 있다.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은 초록성(본관)과 책큐브로 불리는 신관으로 나뉜다. 신관과 초록성은 광장 겸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광장 지하에 대규모 장서고를 짓고, 지하 장서고와 열람실은 초록성 담벼락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초록성의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신관의 열람실은 초록성의 낮은 담벼락인 것처럼 한몸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일름강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으로 태어났다.
처음 바이마르에 갔을 때, 일름강가를 거닐다가 초록성의 담벼락에 난 여러 개의 창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갔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신관 열람실이 광장 지하로 연결되어 일름강가로 창을 낸 것이라는 걸 알고, 그 다음날부터 매일 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5년째 방학마다 찾는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평일 2시30분까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되는 초록성의 로코코홀은 입장료 8유로를 내고 들어가는 뮤지엄으로 운영되고 있고, 신관은 누구나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바이마르에 머무는 동안 나는 매일 아침 9시를 기다려서 신관의 책큐브로 들어서서,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작은 탄성을 내뱉은 다음, 책 큐브 1층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한국에 있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책큐브 1층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4층 천장에서부터 책들이 별처럼 쏟아질 것 같은, 꿈 같은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
책큐브는 거대한 네 벽면 전체 서가로 꾸며져 있고, 벽을 따라 한 층을 돌면서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다. 책큐브의 1층은 소설이나 신문·잡지를 일반인들이 편하게 앉아서 읽을 수 있도록 꾸며져 있고, 큐브 바깥으로 나오면 ‘초록성’을 바라볼 수 있는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다.
볕이 좋은 날에는 일름강이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에서 괴테를 읽었다. 독일어에 서툰 나는 한국어 책을 가져가서 읽었다. 괴테와 쉴러의 대리석 흉상이 내 곁에 서 있는 창가 자리에서 괴테를 읽는 즐거움은 밤 9시까지 그 자리를 뜰 수 없는 이유였다.
도서관 앞에 있는 괴테와 실러의 동상. 괴테는 이곳에서 38년간 근무했다.
지혜로운 여자, 안나 아말리아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처럼 아름답고 사연 많은 도서관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안나 아말리아는 프리드리히 2세의 조카딸이자 브라운 슈바이크 볼펜뷔텔 공 카를 1세의 딸이다. 안나는 도서관 문화가 발달한 독일 볼펜뷔텔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볼펜뷔텔은 독서광이었던 왕이 선구적인 도서관을 세운 곳으로 유명하다. 아우구스트 대공의 3만5000권 장서로 문을 연 ‘아우구스트 대공 도서관’이라 불리는 ‘볼펜뷔텔 도서관’은 철학자 라이프니츠, 계몽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레싱이 사서로 일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자라면서 안나는 책을 많이 읽고 가정교사들과 독서토론을 즐겼으며,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작곡한 곡으로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다양한 재능이 돋보여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소녀였다.
이 도서관을 설립한 안나 아말리아.
안나는 관례대로 열여섯 살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결혼하여 소공국 바이마르의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결혼 2년 뒤인 열여덟 살 때 남편이 죽는 불운이 닥친다. 장남 카를 아우구스트는 겨우 걷기 시작했고 뱃속의 둘째는 겨우 태동을 시작했는데, 남편이 죽다니…. 안나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그의 ‘인품’에 대한 내용이 많다.
그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절망할 시간에 그것을 벗어날 대안을 찾는 슬기로운 사람이었다. 열여덟 살의 안나는 딱 일주일간 슬퍼한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장남에게 책을 읽어주고 자신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아들을 대신하여 공국을 다스리며 유복자인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를 낳는다. 열여덟 살의 어린 어머니이자 소공국 바이마르의 실질적 통치자였던 안나는 체구는 작았으나, 오래 생각하고 핵심만 간단하게 말하는 ‘위엄 있는’ 사람이었다.
안나는 독서를 통해서 지혜와 덕을 갖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약 6만명의 인구가 모여 사는 작은 도시이지만, 이 도시가 독일에 미친 영향력은 막강하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의 문학, 철학, 음악, 과학 분야에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은 대부분 바이마르를 거쳐갔다. 이곳을 독일 고전주의의 메카로 만든 힘은 어린 미망인의 지혜로운 모성애에서 비롯되었다.
안나는 장남이 성년이 되어 즉위할 때까지 바이마르 공국을 다스렸다. 아들이 훌륭한 통치자로 자랄 수 있도록 교육시키기 위해서 괴테와 실러 같은 독일의 우수한 두뇌들, 아들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어 줄 이들에게 삼고초려 정성을 다해 그들을 바이마르로 불러들였다. 인재를 찾고, 그들을 곁으로 불러들이고, 오랜 시간 교류하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안나 또한 그들 못지않은 지적 내공을 쌓은 사람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안나는 장남이 즉위한 뒤 국립극장 앞 괴테 광장이 내다보이는 비툼스발레(미망인의 궁)로 물러난다. 그 집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괴테와 함께하는 ‘수요 책모임’을 열었고, 음악회도 열었으며, 국립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고 토론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여생을 보냈다. 문화·예술적 소양이 풍부했던 아름답고 강한 여인 안나 아말리아. 그의 장남 아우구스트 대공은 어머니의 지혜로운 교육 방식대로 잘 따라주었고, 괴테보다 8살이 어렸지만 생애 끝까지 괴테의 제자로, 더불어 친구로서 도움을 받으며 바이마르를 다스렸다.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신관은 새롭게 만들어진 책큐브가 장관이다.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은 100만권 정도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고, 18~19세기에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독일의 3대 도서관으로 꼽힌다. ‘세기의 판본’인 코타 출판사의 <파우스트> 완판본(1854), 루터 번역 <성서> 초판본(1534)이 이곳에 있다.
뿐만 아니라 1만여점의 지도와 니체·리스트·아르님 관련 책, 안나 아말리아가 작곡한 악보와 수집한 악보 2000여점, 그리고 파우스트 설화 관련 자료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바이마르 셰익스피어 협회의 장서도 이 도서관에 있다. 괴테의 장서 6000여권과 육필 원고는 근처의 괴테 하우스와 괴테-실러 자료실에 보관되어 있지만 안나 도서관이 속한 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독일 바이마르의 유산이라고 생각하기엔 세계적 유산이 너무 많기에 관리도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도서처럼 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도 드물다. 탄생의 배경은 감동적이지만 바이마르가 동독에 속한 시절 동안 도서관은 쇠락했고, 2004년에는 걷잡을 수 없는 화재로 인해 이 도서관을 통째로 잃을 뻔한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1661년,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은 일름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강변에 세워진 바이마르 궁성의 일부인 초록성을 도서관으로 개조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성장할 때 세상을 사는 법을 책을 통해 배웠던 ‘볼펜뷔텔 도서관’과 같은 지식의 창고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초록성에 어울리는 바로크 양식의 서가를 꾸미는 게 안나의 꿈이었다.
3층 건물의 계단을 단 한 그루의 떡갈나무를 깎아서 나선형 계단으로 만들었고, 그 계단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곡선 계단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떡갈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장서의 깊은 향과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로코코홀’에 들어서게 된다.
1989년 독일 통일까지는 바이마르가 동독에 속했기 때문에 독일 통일을 가장 염원했던 사람들은 문학과 철학을 사랑하는 학자들이었다. 통일 후에 다시 찾은 이 아름다운 초록성 도서관도 동독의 여느 건물과 마찬가지로 쇠락했지만 장서들은 잘 보관되어 있었고, 독일 국민들은 2350만 유로(약 360억원)를 모아서 1999년 괴테 탄생 250주년을 기점으로 초록성을 보수하여 본관으로 꾸미고 큐브식 신관을 짓는 현대식 확장공사를 시작했다.
11만2000여권의 장서가 불타던 날
2004년, 드디어 신관이 완성되고 초록성에 있는 책을 옮기기 시작했다. 2004년 9월 2일 밤은 독일 전체, 아니 유럽 전체가 독일 문학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잠들지 못했던 탄식의 밤이었다. 초록성의 노후된 전선에서 시작된 불이 순식간에 초록성 전체를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초록성에서 치솟는 불길이 TV로 방영되자 바이마르 시민들은 한 권의 책이라도 건지기 위해서 모두 초록성으로 몰려나와 인간띠를 만들었다. 한 권 한 권이 시민들의 손을 거쳐서 옮겨지기 시작했지만 이미 불타는 책은 손댈 수가 없었다.
5만권의 책이 재가 되었고, 6만2000여권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희귀본의 70%가 불에 탔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신적 재산을 잃었다. 굳이 돈으로 따지자면 6700만 유로(약 900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책을 잃었다. 안나와 괴테의 영혼도 그날 밤 바이마르와 함께 울었을 것이다.
보수공사를 하는 동안 슬픔 속에서 신관이 개관됐고, 2007년 10월에 안나 아말리아의 268번째 생일을 맞아 초록성은 보수공사를 끝내고 다시 문을 열었다. 로코코홀도 예전의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독일인뿐만 아니라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의 정신과 귀한 장서들의 가치를 아는 세계인들의 성금이 모여 훼손된 책들의 보수는 빨리 진행되었고, 불길에서 건진 책들은 지금 거의 회복된 상태다. 초록성이 다시 문을 열던 날, 도서관장인 크노혜가 외쳤다.
“콘 아모르!”(사랑으로!)
방학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바이마르에서 내가 나에게 보낸 편지들은 내 책상 위에 당도해 있다. 바이마르에서 얻은 감동은 사는 동안 가장 힘들 때 뜯어보리라. 아직 한 통도 뜯지 않은 편지를 바라보며, 일름강가가 내다보이는 열람실에 앉아 괴테를 읽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아침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책큐브와 창가 책상을 오가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내 모습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던 사서 아저씨의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바이마르에서 내가 보낸 편지들은 열여덟 살 안나가 담대하게 삶의 고비를 넘어왔던 지혜를 내게 전해줄 것이다. 아직 뜯지 않은 편지 봉투에서 크로이터 번호가 매겨진 괴테의 책 냄새가 난다.
<박상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