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선거시대 “응답하라, 온라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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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선거시대 “응답하라, 온라인 정치!”

입력 2016.02.16 14:29

인터넷이 선거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 2002년 대선 때부터이니 어언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온라인을 활용하는 방식은 변함없이 늘 제자리걸음이다.

새해가 시작되던 1월 1일 아침이었다. 그날 나는 아무리 신년이라도 오늘 뜨는 해는 어제 떴던 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평소의 신념을 간직한 채, 휴일의 특권인 늦잠이나 실컷 누리겠다며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딩동!” 난데없이 울린 문자메시지 알림 소리에 잠을 깬 것은 오전 7시 30분. 늦잠이란 휴일의 특권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졸린 눈을 비비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 이른 시간에 반갑지 않은 문자를 보낸 이는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어느 예비 후보자였다. 어디 산에 올라 새해 일출을 바라보며 정치를 바꾸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스스로 표 깎아먹는 ‘선거 스팸문자’
새해 다짐이야 그냥 혼자 하면 될 텐데 굳이 아침부터 온 사방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시끄럽게 알리는 일이 볼썽사납다고 생각됐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침 일출을 보러 깨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자신의 입장만 앞세워 민폐를 끼치는 자가 정치에 나서겠다니 이 나라가 걱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황당하게도 그는 나와 일면식도 없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그가 출마한다는 지역은 내 주소지와도 전혀 상관없는 곳이다. 그가 어디서 내 전화번호를 입수했는지는 모른다. 어차피 내 개인정보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시대가 아니던가. 아무튼 이렇게 무례한 선거 스팸 문자로 나의 새해 첫날 아침은 아주 불쾌하고 짜증스럽게 시작되고 말았다.

반갑지 않은 알림은 페이스북에도 하루에 몇 차례씩 올라온다. 친구 신청 소식을 확인하고 들어가 보면 주먹을 불끈 쥔 가장 전형적인 출마용 프로필 사진의 주인공이 기다리고 있다. 초면에 주먹부터 들이대니 마음이 언짢다. 게다가 소통보다는 선거 홍보 목적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계정이니 5000명으로 제한된 그 귀한 페이스북 친구 자리 하나를 굳이 그런 사람에게 내어줄 아량은 도무지 생길 여지가 없다. 정체불명 유령들의 친구 신청도 부쩍 늘었다. 한결같이 20대 젊은 여성의 프로필인데, 정작 게시물은 하나도 없다. 아마도 선거가 본격화되면 페이스북 댓글부대로 맹활약하리라 예측된다.

그래도 친구 신청 정도는 양호한 편이다. 더 심한 것은 급조된 페이스북 그룹에 본인 의사도 묻지 않고 강제 가입시키는 일이다. 일종의 납치행위이다. 납치된 곳에 가보면 오랜 기간 알고 지내던 페이스북 친구들이 여럿 보인다. 얼핏 보면 지인들이 지지하는 사람 같지만 사실은 이들도 대부분 나처럼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사람들이다. 당연히 뒤도 안 돌아보고 즉각 탈퇴 버튼을 누른다. 1초도 안 걸리는 간단한 일이지만 이것도 여러 번 겪다보면 꽤나 귀찮고 번거로운 노동이다.

이래저래 선거가 참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선거전이 본격화될 3~4월에는 얼마나 더 힘들게 할지 걱정이다. 이런 일이 선거운동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후보자들도 답답한 사람들이다. 물론 해볼 수 있는 일이라면 일단 뭐든지 다 해보겠다는 절실한 심정이야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무턱대고 아무 일이나 막무가내로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은 국회의원 후보자가 아니라 귀찮은 스패머 따위로나 인식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페이스북 계정은 SNS 친구가 아니라 선거 때만 고개를 내밀며 타임라인을 어지럽히는 얄팍한 배너 광고쯤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은 온라인 상에서의 기본적인 예절조차 지킬 줄 모르는 무뢰한으로 첫 인상을 남기고 있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기 표를 깎아먹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 시민참여 플랫폼 신생정당 돌풍
인터넷이 선거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 2002년 대선 때부터이니 어언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온라인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홈페이지와 게시판에서 UCC와 블로그의 시대를 지나 SNS와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선거운동의 중심 공간은 많은 변천을 겪어 왔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온라인을 활용하는 방식은 변함없이 늘 제자리걸음이다. 홈페이지에는 유용한 정보가 없었고 게시판에는 소통과 토론이 없었다. UCC와 블로그는 개인 미디어라는 본래의 성격이 무색하게 본인이 아닌 외주업체가 운영을 맡았다. 지금의 SNS에도 소셜 친구들과의 진솔한 관계는 찾을 수 없다. 스마트폰은 스팸 문자 메시지나 보낼 뿐 전혀 스마트하게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일방적 홍보만이 온라인 선거 캠페인의 전부일 뿐이다.

작년 말 스페인 총선에서는 오랜 양당 구도를 깨고 온라인을 통한 시민 참여에 기반을 둔 신생 정당 ‘포데모스’가 돌풍을 일으키며 69석을 획득해 제3당으로 급부상했다. 이보다 앞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풀뿌리 시민조직과 신생 정당의 연합체인 ‘아호라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엔 코뮨’ 소속 후보들이 스페인 양대 도시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시장에 각각 선출되었다. 이들은 모두 ‘루미오’나 ‘데모크라시OS’ 같은 온라인 시민참여 플랫폼을 기반으로 유권자들과 소통하며 선거 캠페인을 전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플랫폼은 시민들이 의제를 올리면 이에 대해 토론하고 온라인 투표를 거쳐 정책화하는 과정을 지원해 준다.

사실 이런 플랫폼은 한국에서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찍이 PC통신 시절에 이와 거의 비슷한 방식의 ‘사이버 파티’라는 실험이 시도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세계 최초의 인터넷 기반 정당이 만들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선구적인 정치 실험들은 법률적 규제와 정치공학적 논리에 막혀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는 한참 뒤늦게 꽃피운 스페인의 정치 실험을 부러워하며 그들의 경험을 배우려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와글’이나 ‘시민의 날개’ 같은 새로운 정치 플랫폼들도 총선을 앞둔 후보자나 대다수 유권자들에게 여전히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요즘 가장 치열하게 정당 간 총선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정치 플랫폼은 ‘응답하라 1988’ 시절에나 어울림직한 아날로그 냄새 물씬 나는 거리의 현수막이다. 그런데 복고풍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지만 이런 복고풍 선거 캠페인이 얼마나 높은 투표율과 지지율을 보장해 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정당 현수막으로 뒤덮인 거리에서 이렇게 크게 외치고 싶다. “응답하라, 온라인 정치!”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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