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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약한 팀이지만 ‘한 번 팬은 영원한 팬’

입력 2016.02.02 10:46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 팬들의 충성심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팀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함께 남은 팬들은 서로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하는 심리적 상태를 겪는다. 어려움을 함께하는 팬이 진짜 팬이라는 믿음을 공유하는 단계다.

MLS KOREA 페이스북 페이지는 1월 26일 스페인 프로축구 라리가 레반테UD의 한 장면을 게시했다. 레반테UD의 한 노신사 팬이 최근 미국 뉴저지에서 이적한 쥐세페 로시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장면이었다. 노신사는 로시에게 “나의 레반테에 와줘서 정말 고맙네. 우리 모두는 자네를 보러 매 경기 오게 될 거야”라고 말했고, 로시도 그를 향한 포옹으로 응원에 답했다.

레반테UD는 스페인 발렌시아의 연고팀으로 발렌시아 FC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팀이지만 팀 재정이 풍족하지 않아 성적이 하위권이다. 올 시즌 역시 바닥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팬들의 열정이 성적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MLS KOREA에 따르면 2011년 레반테전을 앞둔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는 “내가 잘생기고 돈이 많아 사람들이 질투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고, 레반테의 팬들은 마드리드전에서 “가난하고 못생긴 쓰레기, 우리는 레반테”라는 걸개를 걸었다. 놀랍게도, 그 경기에서 레반테는 마드리드를 1-0으로 이겼다. 거꾸로 팬들의 열정이 팀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팬들의 응원이 힘이 됐다”는 경기 후 인터뷰는 단지 의례적 수사에 머물지 않는 느낌이다.

프로스포츠에서 ‘팬심’은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렵다. 이기는 경기에서 짜릿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심리상태지만 팬심이 꼭 승리를 향한 열망으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이기면 좋겠지만 졌다고 해서 팬심을 버리지는 않는다. 아니, 팬심을 버리지 못한다는 게 정답에 가깝다.

1월 9일 스페인 발렌시아 시우타트 데 발렌시아 경기장에서 열린 프리메라리가 레반테UD 대 라요 바예카노의 경기에서 레반테UD의 나빌 길라스(가운데)가 공을 처리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1월 9일 스페인 발렌시아 시우타트 데 발렌시아 경기장에서 열린 프리메라리가 레반테UD 대 라요 바예카노의 경기에서 레반테UD의 나빌 길라스(가운데)가 공을 처리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맨날 이기는 팀 팬이 되는 건 쉬운 일”
2015시즌 메이저리그는 ‘팬심’의 대결이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맞붙은 두 팀은 팬들의 애절함으로 따지자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뉴욕 메츠가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것은 1986년이었다. 상대팀 시카고 컵스는 더욱 심했다. ‘염소의 저주’로 유명한 컵스의 마지막 우승은 1908년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컵스의 마지막 우승을 두고 ‘대한제국 순종 2년 이후 우승하지 못한 팀’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직업이 바로 ‘컵스 팬’이라는 농담은 시쳇말로 ‘웃픈 현실’이다. 그렇다고 컵스 팬들이 매년 자조 속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니다. 팬들이 ‘승리’만 원한다면 100년이 넘는 우승 실패의 역사 속에 컵스 팬은 멸종했어야 마땅하다. 거꾸로, 컵스 팬들의 열정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컵스의 우승 여부가 더욱 주목을 받았던 것은 영화 <백 투 더 퓨처2> 때문이었다. 1985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30년 후의 미래로 이동했고, 그때 컵스가 우승을 한다고 묘사했다. 30년 뒤가 바로 2015년이었고, 영화의 예언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악역이 스포츠 결과를 모은 책을 과거로 보내 부자가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11가지 각종 이야기를 다루는 11point.com은 이를 ‘잘못된 예측’이라고 평가했다. 11point.com은 ‘컵스 경기 결과로 복권 대박이 나올 수 없다. 컵스의 열혈팬들이 매년 컵스 우승에 많은 돈을 걸기 때문에 배당률이 예상보다 낮다’고 주장했다.

결국 영화의 예언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카고 컵스는 뉴욕 메츠 2루수 다니엘 머피의 신들린 듯한 방망이에 무너졌다. 머피는 6경기 연속 홈런을 때리며 저주를 실현시켰다. 마침, 컵스에 저주를 안긴 ‘염소’의 별명도 머피였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메츠 역시 우승컵을 안는 데 실패했다. 1985년 이후 처음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단단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역전승을 거푸 이어가며 4승1패로 30년 만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물론 승리는 팬들을 열광시킨다. 캔자스시티는 2014년 월드시리즈에 올랐고, 그동안 잠잠했던 팬심을 대폭발시켰다. 2015년 메이저리그 올스타를 뽑는 온라인 투표에서 캔자스시티 팬들이 대규모 집단행동을 벌인 덕분에 투표 마감 일주일 전까지도 내셔널리그 올스타 대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올스타전이 벌어질 뻔했다.

그렇다고 패배 혹은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 팬들을 떠나보내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 1일 ‘왜 팬들은 계속 지기만 하는 팀을 응원할까’라는 기사를 실었다. 보니 마길리스는 뉴욕 메츠의 열혈 팬이었다. 1980년대 중반의 화려한 시기가 다시 오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한다. 그의 아버지 역시 메츠의 팬이었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는 다저스 팬과 결혼했지만 그의 ‘팬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난 끝까지 메츠 팬으로 남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보니는 왜 성적이 좋지 않았던 메츠 팬으로 남았을까. 그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맨날 이기는 팀의 팬이 되는 건 너무 쉬운 일”이라고.

‘올해는 제발’ 희망의 충성심 커져
슬픈 팬들은 프로스포츠 산업에 널려 있다. 메츠와 컵스는 물론 NFL의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NHL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등은 만년 하위팀들이다. 포스트시즌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충성스런 팬들은 팀을 향한 애정을 줄이지 않는다.

2001년 다니엘 C 펑크와 제프 제임스는 팬들의 심리 변화에 대해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이 제시한 모델에 따르면 스포츠 팬들은 4단계를 거쳐 충성스런 팬이 된다. 이른바 단계별 4A 이론이다. 첫 번째 단계는 인식(awareness)의 단계다. 인식 단계는 대개 지리적 요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살고 있는 지역 연고 팀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단계다. 두 번째 단계인 흥미(attraction)는 주변 지인과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 어떤 팀의 팬이 있다면 그를 통해서 함께하게 되는 단계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밴드 왜건’ 효과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그 팀의 성적이 좋은 결과를 낸다면 인식에서 흥미 단계로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세 번째 단계인 애정(attachment)은 현실 도피의 단계까지 나아간다. 메츠 팬인 보니는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야구장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게 야구장을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마지막인 충성(allegiance) 단계에 이르면 이제 팀이 중요하지 않다. 그 팀을 함께하는 동료 팬들과의 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단계다. 야구장에 오는 것은 그들과 경험을 나누는 일이다. 팀 성적과 관계없이 팬심이 유지되는 것에는 그 팀을 함께 응원하고 있다는 연대감이 더욱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펑크 교수는 “충성심을 보여주는 팬은 해당 스포츠 산업을 소비하는 인구의 약 20%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20%의 힘은 막강하다. 한 번 충성의 단계에 묶이면 이를 떠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충성심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팀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함께 남은 팬들은 서로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하는 심리적 상태를 겪는다. 어려움을 함께하는 팬이 진짜 팬이라는 믿음을 공유하는 단계다. 메츠 팬 보니는 “(성적에 따라 움직이는) 임시 팬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건 마치 우리 자식들에 대해 내가 임시 부모가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라고 설명한다.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팀보다 그렇지 못한 팀의 팬들의 충성심이 더욱 깊다. 매년 이기는 팀은 포스트시즌에 대해 ‘올해도 가겠지’라는 기대(expect)를 하게 되지만, 매년 올라가지 못하는 팀은 ‘올해는 제발’이라는 희망(hope)을 걸게 마련이다. 거칠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적용하더라도, 절실함의 크기에서 팀을 향한 충성심의 크기가 달라진다.

페이스북 이용자 ‘토아일당’은 ‘내 팀이 맨날 지면 서운하고 화는 나겠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울 일은 아닐 겁니다. 흔한 말처럼, 이기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이기길 바라는 것이니까요’라고 적었다.

KBO리그의 스프링캠프가 한창이다. 이른 봄은 모든 야구팬에게 꿈을 꾸게 하는 계절이다. 꿈을 꾸는 것은 팬들의 권리다. 그리고 그 꿈을 꿀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구단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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