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소리’를 음악의 원천으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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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소리’를 음악의 원천으로 삼다

입력 2016.02.02 10:06

존 케이지는 부엌의 소리들이야말로 진짜 음악이라도 주장했고, 필립 글래스나 스티브 라히이 같은 도시의 미니멀리스트들은 차량의 소음, 금전등록기, 사이렌 소리들을 ‘음악’의 일부 혹은 전부로 활용하였다.

자연계의 소리를 문자로 옮기는 것은 심란한 일이다. 밤이면 아파트단지 지하실이나 주차장에 도사리고 있는 고양이들이 울음소리를 낸다. 이를 어떻게 받아 적을 수 있을까? 야옹? 이 두 음절로는 깊은 밤의 적막을 찢는 날카로우면서 애틋하고 기이한 소리를 옮겨 적었다고 할 수 없다. 눈 덮인 전북 부안의 개암사.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에 간 적이 있는데, 인적은 없고 절에서 사는 큰 개 한 마리가 저 멀리 산야를 향해 짓는데, 컹! 컹? 나로서는 불가항력이다. 소설가 김성동의 표현으로 ‘잿빛 승복 빛깔’로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향해 슬픈 눈을 한 큰 개가 공허하게 짖어대는 소리를 어찌 컹, 컹 이런 음절로 옮길 수 있을까?

빗소리를 받아 적어 보자. 주룩주룩 내린다? 이것은 소리의 형용이기보다는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우는 사선의 행렬을 묘사한 것에 가깝다. 대가에게 의뢰하면 어찌될까.

여기,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이 있다. 비 내리는 가을 저녁, 독고준의 하숙집으로 친구 김학이 찾아온다. 둘은 술을 마시며 동인지 <갇힌 세대>에 실린 독고준의 글에 대해 담론을 한다. 격렬한 논쟁 끝에 친구 김학은 떠나고, 독고준은 빗소리를 들으며 유년시절을 회고한다. W. 즉 전쟁 이전 원산에서 보냈던 유년기, 그곳에서 독고준은 ‘지도원 선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는가 하면 ‘사과꽃이 피기 전 매우(梅雨)의 계절’에 아버지와 형님, 누나가 읽던 책들을 ‘밤 늦도록 안방에서’ 읽었다. 이런 책들과는 ‘또 다른 세계’가 그려져 있는 에밀 졸라의 <나나>를 읽었다. 그것은 어른들의 세계, ‘어찔하고 자릿한’ 세계였기에 ‘몰래 읽었다.’ 소년 독고준은 “나나가 벽난로 앞에서 맨몸뚱이가 되어 불을 쬐는 대목을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다”고 최인훈은 썼다.

경북 상주시 함창시장의 씨름 벽화.

경북 상주시 함창시장의 씨름 벽화.

최인훈의 빗소리 ‘철, 철, 철, 텀벙, 텀벙’.
그렇게 ‘거꾸로 선 세계, 물구나무 선 마음의 나라’로 망명을 떠나던 때에 비가 내렸다. 방 바깥의 처마 끝에는 옹기 도가니가 빗물받이로 놓여 있었다. 비는 어떤 소리를 냈는가.

최인훈은 그렇게 썼다. 비는 어느덧 그친 것일까. 처마의 파인 부분으로 또, 르, 르 흐른 물이 줄기가 되고, 더러는 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철, 철, 철, 텀벙, 텀벙, 역시 자연의 소리를 문자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데, 그렇기는 해도 독고준과 그를 둘러싼 위험한 비밀의 세계가 이 소리를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철, 철, 철, 텀벙, 텀벙, 하는 소리는 전쟁 직전의 음산한 위기를 느끼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곧 사태가 발발한다. 멀리서 폭격 소리가 들린다. 어디라고 했는가. W, 즉 원산이다. 20세기 대규모 전쟁 중의 공중 폭격에 대해 군사적·정치적 본질을 파헤친 김태우의 <폭격>(창비)에 따르면 1950년 한국전쟁은 ‘폭격’이라는 공중전술의 과도기였다고 한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정확한 군사시설만 폭격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군사시설이 아니라 하더라도 궁극적 승리를 위해 인구가 밀집한 도시 전체를 목표로 할 것인가. 전쟁 초기에 미국은 인도주의적 전술을 견지하려고 했으나 실제로는 정밀 폭격이 아니라 맹목 폭격(blinding bombing)에 흡사했다. 레이더 수준이 초보적이었고 구름 등에 의해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 폭탄을 투하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의 융단폭격이 되고 말았는데, 그 목표 도시가 바로 평양과 흥남, 그리고 W, 즉 원산이다. ‘원산폭격’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원산 사람들은 공습을 피하여 달린다.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여 방공호로 대피한다. 방공호라고 하지만 굴을 더 깊이 판 듯한 곳이다. 소년 독고준은 누나 또래의 여자 손에 이끌려 캄캄한 방공호로 들어간다. 비좁은 방공호 속으로 사람들이 밀려들어온다. “사람의 훈김과 정오 가까운 한여름의 열기”로 숨이 막힐 지경인데, 또 폭격 소리가 들리고 “그때 부드러운 팔이 그의 몸을 강하게 안았다.” 다시,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 소리가 들리고 소년 독고준은 누나 또래의 여자 품에 안기게 된다. “뺨에 닿은 뜨거운 살, 그의 몸을 끌어안은 팔의 힘, 가슴과 어깨로 밀려드는 뭉클한 감촉이 그를 걷잡을 수 없이 헝클어지게” 만들었다. 이 체험, 귀청을 뚫는 폭음과 아우성소리 그리고 빗소리, 철, 철, 철, 텀벙, 텀벙, 이런 소리들은 한 사람의 생애 전체에 드리워지는 감각의 원형이 된다.

음악가들은 그런 소리들을 완벽하게 조율된 악기와 엄정한 규칙을 따르는 악보로써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바로크 시대의 성당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그토록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한 까닭은 신의 노여움과 자애로움을 압도적인 스케일로 들려줄 수 있는 악기였기 때문이다. 관악기들도 애초 그것이 만들어질 때는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기 위해서였거나 아니면 자연에 선사하는 이로움을 슬기롭게 활용하기 위한 일, 즉 농업이나 목축의 용이함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렇기는 해도 자연계의 소리를 그대로 모방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음악의 재현성과 추상성이 극도로 발전함에 따라 특정 악기가 어떤 자연의 음향이나 현상을 1대 1로 대응하여 재현한다는 목적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알프스 목동의 호른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되면서 극한의 추상성을 확보하게 된다.

함창시장의 물레 벽화.

함창시장의 물레 벽화.

의미 있는 함창의 마을미술 프로젝트
그래서 어떤 음악가들은 아예 자연의 소리 또는 생활의 소리 그 자체를 자기 음악의 원천으로 삼기도 했다. 주로 20세기 중엽 이후 전위파들, 그러니까 존 케이지는 부엌의 소리들이야말로 진짜 음악이라고 주장했고, 필립 글래스나 스티브 라히이 같은 도시의 미니멀리스트들은 차량의 소음, 금전등록기, 사이렌 소리들을 ‘음향’이 아니라 ‘음악’의 일부 혹은 전부로 활용하였다. 그들의 그 작업들은 쇼킹한 퍼포먼스를 넘어 이 거대한 도시의 창백한 정서를 증빙하는 중요한 유류품이 되었다.

지난주에 경북 함창에 갔다. 함창에 가기 전에는 충북 음성에 갔고, 함창을 둘러본 후에는 광주로 갔다.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미술 프로젝트, 즉 마을공동체의 활기와 재생을 위한 공공미술의 현황과 결실을 평가하는 여정이었는데, 다른 곳에서도 귀한 소출을 보았지만 특히 함창의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각별한 성취와 의미를 거둔 곳이었다.

우선 눈으로 확인되는 작품들이 환경미화 차원을 넘어 작가의 조형적 욕망과 함창의 삶이 제대로 흡착하여 높은 차원에 도달했다. 함창시장의 ‘씨름 벽화’는 여느 지역의 알록달록한 페인트칠과 달리 돈후한 무채색으로 함창의 을 존숭하였다. 흡사 노원희나 민정기 화백의 걸작을 보는 듯하였다. 함창역 앞에 설치된 육근병의 설치작품도 여느 지역이 해당 지역의 특산물이나 인물로 일종의 ‘관광자원 조형물’을 세운 것에 비한다면 대단한 선택과 모험의 쾌작이 아닐 수 없다. 세계 미술제나 큰 도시의 대형 미술관에 가서야 볼 수 있는 육근병의 작품이 함창 사람들의 삶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2004년에 폐쇄되어 흉물로 방치되었던 읍내의 양조장은 갤러리로 변신하였는데, 단지 옛것을 보수한 정도가 아니다. 스웨덴 작가 요아킴은 양조장과 연관된 함창 사람들의 기억을 민담과 전설, 나아가 어떤 제의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재현하였다. 최현주 작가가 지역민들과 협업으로 만든 ‘함창 명주 배냇저고리’ 역시 지역 특산물의 관광상품화가 아니라 ‘생명 탄생의 경이’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이 양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작은 갤러리가 하나 더 있다. 들어서면 행위예술가 김석환의 작품을 먼저 볼 수 있고, 그 안쪽으로 ‘음악’이 설치되어 있다. 젊은 음악가 ‘있다’(itta, 본명 최정은)의 작업이다. ‘있다’는 ‘내가 여기 있다, 여기 존재한다’는 뜻이다. 2002년, 혼자서 작사·작곡·편곡·연주·노래·앨범 디자인 등을 다해서 만든 앨범 ‘나는… 있다’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홍대앞의 인디씬은 물론 현재는 일본, 미국 등으로 그 활동 폭과 음악세계를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확장한 뮤지션이다.

‘함창감음’은 2014년 11월, ‘있다’가 1개월 동안 함창에 ‘있으면서’ 채집한 소리들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아니다. 일단 함창의 오래된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런가 하면 지금의 함창 소리도 스며든다. 어른들의 소리, 아이들의 소리, 일하는 소리, 쉬는 소리, 오래 전 은성했던 마을 함창을 살찌워준 소리, 여러 원형질의 소리들이 채집되어 일곱 개의 음악에 배치된다. ‘소리의 역사는 장소의 역사이며, 거기 모인 사람들의 모든 축적된 역사’라고 생각하는 ‘있다’는 이 소리들을 단순히 재현하지 않고, 그 바탕 위에 자신의 현대적인 사운드를 흡착시켰다. 옛 삶과 오늘의 삶, 옛 소리들과 오늘의 소리들이 함창의 명주실처럼 직조되었다. 한참을 서서 갤러리에 비치된 헤드폰을 끼고 ‘함창감음’을 들었다. 듣는 동안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이 생각났다. 그 빗소리. 철, 철, 철, 텀벙, 텀벙.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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