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진사 합격 축하연은 사윗감 찾는 ‘혼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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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진사 합격 축하연은 사윗감 찾는 ‘혼인시장’

입력 2015.11.09 18:33

앞길이 창창한 남편감을 만나길 바라는 여자와 권문세가의 사위가 되어 탄탄한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남자, 대갓집 규수는 아버지를 따라 곡강연을 찾고 과거 합격자는 그런 그녀에게 시를 바치며 마음을 전한다.

봄바람이 살랑인다. 살구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급제화(及第花·살구꽃)가 핀 행월(杏月·음력 2월) 방방일(放榜日·과거 합격자 발표일), 급제자와 낙제자의 운명이 갈리고 그들의 환호와 눈물이 1300년 전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가득 채운다.

수천 명의 응시생 가운데 진사(進士) 합격자는 서른 명 남짓, 창창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그들을 설레게 한다. ‘서른에 명경과(明經科) 합격은 늦은 셈이고 쉰에 진사과 합격은 이른 셈’이라는 당나라 때 속담이 대변하듯, 진사과 합격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재수 삼수는 기본이고, 10년 20년 심지어는 평생을 시험에 매달려서야 겨우 진사에 합격했다. 물론 평생을 바쳐도 끝내 낙방의 쓴잔을 마실 수밖에 없는 이들이 비일비재했다.

“100만이 넘게 사는 장안인데 문 나서면 갈 곳이 없네”<출문(出門), 한유(韓愈)>, “장안에 한 번 들어왔다가 십년 내내 고생”<우거대(寓居對), 손초(孫樵)>. 이들 시에서 토로하듯, 타지에서 온 과거 준비생에게 장안에서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물가가 비싼 수도이니만큼 웬만한 재력가가 아닌 다음에야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그보다 더 그들을 짓누르는 것은 낙방의 두려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합격과 불합격에 온 집안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이 달려 있지 않은가. 고향 떠난 고생과 외로움에다 낙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머리털은 눈처럼 하얗게 세고 마음은 재처럼 사그라지거늘 여전히 장안의 낙방생이 되고 만다”<제숭경사벽(題崇慶寺壁), 온헌(溫憲)>.

곡강에서의 봄놀이를 묘사한 동상. 곡강지유지공원

곡강에서의 봄놀이를 묘사한 동상. 곡강지유지공원

처량한 낙방 신세를 꼬집는 아내의 편지
아름다운 봄날 경치에 낙방생의 신세는 더 처량할 수밖에. 그에게는 낙제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근심스런 일이다. 차마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래도 몸과 마음을 추슬러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내한테서 온 편지가 다시 그의 발걸음을 잡는다.

<em>“당신은 재주가 그렇게 뛰어나신데,
왜 해마다 낙방하고 돌아오시나요?
이제 저는 당신 얼굴 뵙기가 민망하니,
오시려거든 밤중에 오세요.”
</em>

편지를 받은 이는 두고(杜羔)이고, 편지를 쓴 이는 그의 부인 조씨(趙氏)다. 이번에도 낙방이니 동네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워서라도 가만히 돌아오라는 아내의 말이 꽤 충격이었나 보다. 두고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장안에 남았다. 그리고 다음 과거에서 드디어 진사에 합격했다. 아내가 또 편지를 보냈다.

<em>“장안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
융성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넘치지요.
당신은 뜻을 이루셨고 한창 젊은 나이,
오늘밤 어느 술집에서 취해 잠드실지.”
</em>

합격한 남편이 장안의 기생집을 들락거리는 게 영 마뜩잖은 속내다. 과거 합격 여부에 따라 이렇게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낙방생의 좌절은 진사 합격자의 득의양양함으로 변했고, 낙방한 남편을 타박하던 아내가 이제는 남편 간수에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과거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장안의 봄날에 핀 꽃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 누군가는 그 꽃을 즐기지만 또 누군가는 그 꽃에 마음을 다친다. 낙제를 거듭한 끝에 급제한 맹교(孟郊)가 남긴 시는 과거 합격에 울고 웃던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첫 번째 과거에 낙방한 후 지은 <낙제(落第)>에서 맹교는 버려진 처지라 마음이 칼에 베인 듯하다고 토로한다. 남들은 봄꽃이 무성하다고 말하지만 그의 눈에는 꽃 위의 서리가 보인다. 이후 또 낙방, 두 번째 낙방한 후 지은 <재하제(再下第)>에서 맹교는 하룻밤에도 수없이 잠에서 깨어나 한숨 짓느라 꿈에서조차 고향집에 가지 못함을 토로한다. 장안에서 두 차례 낙방한 그는 눈물로 꽃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 드디어 봄꽃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환희에 찬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봄바람에 득의양양하여 말 타고 내달리며, 하루 동안에 장안의 꽃 죄다 보리라” <등제(登第)>

고관대작의 수레행렬 줄줄이 이어져
과거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고, 낙방생의 좌절과 급제자의 환희가 교차한다. 장안성 동남쪽의 곡강(曲江) 일대가 시끌벅적해진다. 진사 급제자를 위한 축하연회가 이곳에서 잇달아 열리기 때문이다. 세상물정 모르고 공부만 하던 샌님들이 감당하기에는 행사가 너무 많다. 그래도 문제없다. ‘진사단(進士團)’이라는 토털 서비스 업체가 있으니까. 진사 합격자는 진사단을 찾아가서 각종 연회와 관련된 일들을 위임하고 경비를 지불한다. 돈이 없어 빚을 내는 이들도 있지만, 문제없다. 어차피 금방 좋은 벼슬자리를 꿰찰 테니 그까짓 것 걱정하지 않는다.

봄꽃 구경하기에 적당한 이 시기, 진사 급제자 중에서 가장 젊고 잘생긴 두 사람이 ‘탐화랑(探花郞·탐화사(探花使)라고도 한다)’으로 선발된다. 이들은 말을 타고 곡강 부근의 이름난 정원들을 돌아다니면서 진귀한 꽃을 꺾어온다. 급제자들이 함께 돌아다니면서 즐기기도 하는데, 각자 주머니에 술잔을 넣고 말을 타고 가다가 아름다운 꽃을 보면 그 자리에 멈춰서 꽃을 감상하며 술을 마신다. 합격하기까지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랄까, 전에는 눈물로 바라보던 장안의 꽃이었건만 이제 그 꽃을 보며 행복에 흠뻑 취한다.

이맘때쯤이면 장안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된다.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고 곡강에서 연회가 열리는 날, 장안의 내로라하는 명사와 귀족과 부자가 아들딸을 이끌고 진사 합격자들을 보러 곡강으로 몰려든다.

“아들아, 너도 열심히 공부해서 저렇게 돼야 한다.”
“딸아, 저 진사가 어떠냐? 사윗감으로 제격인데 말이야.”

특히 혼기에 다다른 딸이 있는 경우, 곡강연(曲江宴)은 사위를 고르는 중요한 기회다. 오늘의 진사가 내일의 고관이 될 터, 전도유망한 사위를 고르기 위한 고관대작의 화려한 수레 행렬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다산 정약용의 시 <탐화연(探花宴)>은 곡강연의 분위기와 정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 시에 ‘택서거(擇壻車)’가 등장한다. 곡강연이 열릴 때면 “택서거가 수없이 서로 부딪친다”는 것이다. 택서거, 말 그대로 ‘사윗감을 고르려는 수레’다. 혹여나 좋은 사윗감 놓칠까 수레 내달려 곡강으로 향하던 정경을 떠올리면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합격자를 사위로 삼으려는 욕망과 좋은 집안의 사위가 되고 싶은 합격자의 욕망이 딱 맞아떨어지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법. 원치 않는 사람을 억지로 사위 삼으려는 이들도 있었으니, 풍몽룡(馮夢龍)의 <고금소사(古今笑史)>에는 과거 합격자 사위 물색에 혈안이었던 당나라의 세태를 풍자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위 높은 어떤 이가 젊고 잘생긴 과거 합격자를 점찍어 두고 억지로 집까지 오게 한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젊은이에게 귀인이 넌지시 말을 건넨다.

“나에게 아주 괜찮은 딸이 있다네. 자네와 짝을 맺어주고 싶은데 어떠한가?”
“가난하고 미천한 제가 높은 집안에 의지할 수 있게 되면 실로 행운이지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서 집사람과 아이랑 의논해봐야 하는데 어떠신지요?”

젊은이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한바탕 웃으면서 자리를 뜬다.
과거 합격이 삶의 보증수표이던 시절, 과거 합격자 사위 찾기를 둘러싼 희비극이 그 얼마나 많았겠는가. 앞길이 창창한 남편감을 만나길 바라는 여자와 권문세가의 사위가 되어 탄탄한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남자, 대갓집 규수는 아버지를 따라 곡강연을 찾고 과거 합격자는 그런 그녀에게 시를 바치며 마음을 전한다. 곡강연에서의 이런 혼인시장(?)에 꽤 불만이던 이가 벌인 재미난 에피소드가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전해진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온정(溫定)이라는 남자. 그는 기묘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놀리고자 계획한다. 

곡강연이 열리는 날, 그는 대갓집 딸인 양 가마를 타고 계집종을 대동하고서 곡강으로 갔다. 그 행차를 본 젊은이들, 대단한 집 아가씨가 가마 안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서둘러 배에 올라타고서 가까이 다가간다. 다들 가마를 주시하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는 순간, 가마에 드리워진 주렴이 흔들리더니 밖으로 발이 쑥 나온다. 아, 굵은 종아리에 털이 수북하다! 이를 본 젊은이들은 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쳤다. 온정은 그 당시의 경박한 세태에 상당히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가 단순히 경박한 세태에 대한 풍자만은 아닐 것이다. 온정이라는 이가 과거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신 인물이기에, 어찌 보면 그의 소심한 복수는 그 당시 곡강연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낙방생들의 한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곡강의 봄날을 맘껏 즐기는 진사들. 곡강지유지공원

곡강의 봄날을 맘껏 즐기는 진사들. 곡강지유지공원

낙방 전력 지닌 ‘황소의 난’으로 사라져
봄꽃 흐드러지게 핀 날 곡강에서의 축하연회는 당 중종 신룡(神龍) 연간(705~707)에 시작되었다. 봄날 곡강의 왁자지껄함은 170여 년 뒤 사그라지고 만다. 곡강연의 조종을 울린 것은 바로 황소(黃巢)의 난이다.

앞의 온정이 소심한 복수에 그쳤다면 황소는 대담한 복수를 실행에 옮겼다. 황소도 진사과에 여러 차례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한 전력이 있다. 그 역시 곡강연에서 소외되어 피눈물을 흘린 낙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것이다. <전당시화(全唐詩話)>의 기록에 따르면, 황소는 곡강연에서 진사 합격자들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고 실의에 빠진 나머지 분노에 찬 시를 짓는다. 그것이 바로 <낙방한 뒤에 국화를 노래하다(不第後賦菊)>라는 시다.

<em>가을 중양절(重陽節) 다가오면,
국화가 핀 뒤 다른 모든 꽃은 죽으리니.
하늘을 찌르는 향기가 장안에 진동하고,
온 성에 황금 갑옷 가득하리.
</em>

과거에 낙방한 황소의 마음속에 용솟음치던 반란의 욕구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황금 갑옷으로 표현한 국화는 다름 아닌, 황소의 반란군이다. 그의 시는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장안은 황소가 이끈 수십만 농민군에 의해 함락되고 만다. 황소가 과거에 합격했더라면, 그래서 곡강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더라면 황소의 난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곡강연에서 소외되어 피눈물 흘리는 이가 존재하는 한 황소의 난은 언제든 일어났을 것이다. 수많은 좌절과 한숨과 눈물을 외면한 곡강의 페스티벌은 또 다른 황소를 키워냈을 테니.

인재를 제대로 발탁하지 못하는 정부의 부패와 무능은 황소가 당나라에 반기를 든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과거의 모순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재력이 받쳐줘야 과거에 합격할 수 있었던 현실 역시 낙제자를 절망에 빠뜨렸다. 장안 출신으로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한 뒤 출가하여 승려가 된 한산(寒山)은 <나를 농사꾼 아들이라 비웃네(笑我田舍兒)>라는 시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과거에 낙방하면, 돈 없어 떨어진 것이라네. 언젠가 돈 있는 날이 오면, 탑 꼭대기에 이름을 세우리.” 지금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꼬집는 ‘수저 계급론’의 당나라 버전이 아니겠는가.

사실, 최초의 곡강연은 낙제한 응시생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중종 때 진사 합격자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로 변했다. 영광과 기쁨에 대한 축하보다 좌절과 슬픔에 대한 위로가 먼저인 사회, 그런 곳에서라면 봄날의 꽃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시안 동남쪽에 있는 곡강지유지공원(曲江池遺址公園·당나라 때 황가 원림이 있던 곡강 경내에 조성된 공원)은 봄꽃 필 무렵 찾아가는 게 제격이다. 그 꽃에 울고 웃던 이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좀 더 정의로운 사회를 희망하면서….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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