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국정화와 신용정보의 정부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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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국정화와 신용정보의 정부 집중

입력 2015.11.03 15:30

수정 2015.11.0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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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서울 강북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그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서로 아주 잘 통하는 동일한 사고의 다른 표출일 뿐이다. 왜 그럴까?

# 장면 1 지난 10월 25일 밤, 서울 종로구 동숭동 국립국제교육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교육부 태스크포스가 야당 의원들과 언론에 그 실체의 일부를 드러냈다. 당초 알려진 ‘감금’ 대신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잠금’이 진실이라는 새로운 팩트도 드러났다.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기 위한 정부의 꼼수가 민낯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찼다.

# 장면 2 그 다음날인 10월 26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 전국은행연합회 노조 위원장이 노조원들을 상대로 정부가 추진 중인 종합신용정보 집중기관 신설 등 신용정보 집중체계와 관련한 설명회를 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위의 압박이 너무 심해서 더 이상 종합신용정보 집중기관의 신설을 막기 어려워져 조건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내용은 제대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하루를 보냈다.

김태년, 유은혜, 도종환, 정진후 의원(왼쪽부터)이 10월 25일 국정 교과서 비선조직들이 9월 말부터 한국사 태스크포스 사무실로 운영해 온 서울 방송통신대학 옆 국립국제교육원 앞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김태년, 유은혜, 도종환, 정진후 의원(왼쪽부터)이 10월 25일 국정 교과서 비선조직들이 9월 말부터 한국사 태스크포스 사무실로 운영해 온 서울 방송통신대학 옆 국립국제교육원 앞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감금’ 대신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잠금’
이 두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서울 강북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인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이 두 사건을 연결해서 분석하는 시각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그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서로 아주 잘 통하는 동일한 사고의 다른 표출일 뿐이다. 왜 그럴까?

우선 쉬운 것부터 살펴보자.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다. 여기서의 상식은 ‘역사란 하나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팩트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도 있고, 설령 팩트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고 해도 여러 팩트를 어떻게 조망하고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가에 대해 오직 한 가지 해답만 있을 수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상식이다. 이것은 분단국가에서도 상식이고, 저개발국가에서도 상식이다. 과거에도 상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사건이다.

오직 하나의 역사만을 가르치는 것은 “마치 동일한 분량, 동일한 내용, 동일한 조미료의 음식을 모든 사람에게 먹이는 격이어서 선택의 여지와 자유가 박탈”된다고 일찍이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거두인 이병도 박사가 갈파한 바 있다. 즉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천명하고 있는 우리나라 헌법의 정신과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들이 현 상황을 우려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과 마치 외계어 같은 느낌을 주는 ‘종합신용정보 집중기관 신설’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신용정보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용정보란 개인이 예금이나 대출, 신용카드 구매 등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여러 금융서비스를 이용한 기록을 말한다. 특히 불량 신용정보는 이 중에서 금융거래질서를 문란하게 한 기록, 예를 들어 연체 기록, 부도 기록 등을 말한다. 신용정보는 보다 큰 범주인 개인정보의 한 구체적 형태로서 개인의 신용 능력을 평가하고 신용등급을 산정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금융위, 새로운 기구 출범 서둘러
신용정보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금융거래의 안정성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가는 신용정보를 만들거나 이용하거나 집중해서 보관하는 기관에 커다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 초에 우리나라 금융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엄청난 규모의 개인신용정보 유출사태가 있었다. 이에 따라 국회는 신용정보의 관리를 강화하는 다양한 조치를 담은 신용정보법(정확히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정부·여당은 물론 일부 야당 의원들이 은행연합회나 각종 협회들이 보관하고 있는 개인 신용정보의 관리가 허술하다며 이를 화끈하게 한 곳에 집중해서 관리하자는 주장을 펴게 된 것이었다. 귀중하기 짝이 없는 신용정보의 보관상태가 부실하니 이곳저곳에 산재한 신용정보를 다 한 곳에 몰아줄 터이니 국가가 알아서 잘 관리하라는 말이었다. 종합신용정보 집중기관은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다.

언뜻 생각하면 잘한 일이다. 국가가 관리하면 아무래도 개별 민간기구가 하는 것보다 더 잘할 수도 있고, 또 개인적 이익에 눈이 멀어 소중한 개인신용정보를 유출시키는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다. 이런 생각이 어떤 오류를 가지고 있는지는 검인정 교과서가 문제가 많다고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방식의 문제점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검인정 역사교과서가 부실할 수도 있고 일부 측면에서 잘못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국정화가 답인가? 아니지 않은가. 정답은 검인정 교과서가 더 수준 높은 교과서가 되도록 규제하거나 지원하는 것이다.

신용정보의 관리도 똑같다. 물론 개별적으로 신용정보를 관리하고 있는 은행연합회나 개별 금융권 협회들에 문제가 많다. 일례로 은행연합회는 과거 삼성생명의 꾐에 빠져 서버에 있는 개인정보를 그대로 디스크에 복사해서 넘겼던 부끄러운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이를 집중해서 관리하는 것이 정답인가? 아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이들 민간기구가 조금 더 안전하게 신용정보를 관리하도록 규제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할 수도 있다. 역사교과서를 국가가 하나로 단일화하는 것이야 사상과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저촉될 수 있으니 반대할 만한데, 신용정보를 국가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신용정보는 개인정보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궁극적 결정권은 당해 개인에 속한다는 ‘개인정보의 자기 결정권’을 중요한 헌법적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헌법은 개인이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 받지 않을 자유를 중요한 기본권으로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권의 보호란 기본적으로 국가의 공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해야 할 가장 원초적인 상대방은 국가의 공권력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종합신용정보 집중기관의 신설이 왜 문제가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신용정보의 유출을 우려한 나머지 신용정보를 탈탈 털어서 국가의 손아귀에 갖다 바침으로써 개인정보 보호의 본령인 국가로부터의 사생활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몰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일기장을 잘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모든 국민의 일기장을 다 걷어서 국가 관리 아래에 두면 도둑들이 일기장을 훔치지 못할 것이라는 사고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국회도 이런 가능성을 염려해서 신용정보법을 개정하면서 아주 예외적으로 부대의견을 달아서 새로운 종합신용정보 집중기관은 민간기구인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설치하도록 하여 노골적인 정부기구화 하는 데 대한 최소한의 방지장치를 두었다. 그러나 금융위의 창조적인 꼼수는 이런 방지장치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금융위는 은행연합회의 산하기관도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신설”하는 것 아니냐면서 억지춘향 격으로 새로운 기구의 출범을 서두르고 있다. 말이 산하기관이지 금융위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 눈에 선하다. 역사는 거꾸로 흐르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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