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사법기관 ‘단 1표’의 메커니즘… 헌법재판소는 누구라도 ‘캐스팅 보트’
지난 9월 대법원 양승태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대회의실에 모두 모였다. 2013므568 사건. 이른바 파탄주의 이혼을 채택할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는 이혼의 원인이 자기에게 없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수십년을 별거해도 이혼소송을 제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는 불분명하므로 이미 관계가 파탄났다면 이혼소송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파탄주의였다. 재임기간이 짧은 박상옥 대법관부터 재임기간이 긴 순서대로 의견을 말했다. 대법관 가운데는 마지막으로 퇴임을 앞둔 민일영 대법관이 파탄에 손을 들면서 6대 6. 이제 양승태 대법원장의 선택만 남았다.
“8대 5 정도는 돼야지 7대 6은 부담”
이 사건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 직전 전직 대법관을 포함한 법조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파탄주의 전환 여부는 전에도 13명 전원합의체에서 논의가 있었다. 그때마다 유책주의 결론이 나왔고, 주심이 4명으로 이뤄진 소부로 다시 가져가서 선고했다. 전합으로 판례를 남기면 4~5년은 뒤집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심 대법관이 자신이 있으니 공개변론까지 연 것이고 판례가 뒤집히는 게 확실하다.” 그리고 법조계 핵심 관계자 설명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파탄주의자를 지지했다. 일부 대법관은 공개변론 이후 유책주의로 돌아섰지만 양 대법원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파탄주의자다.”
그런데 이날 양승태 대법원장은 유책주의에 손을 들었다. 결과는 6대 7. 파탄주의의 패배였다. 당대의 최고 이론가라는 김용덕 대법관의 ‘파탄주의 프로젝트’는 법조계의 예상을 뒤집고 실패로 끝났다. 법조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만약 양 대법원장이 파탄 쪽에 손을 들어주면 겨우 한 표로 수십년 논쟁이던 판례가 바뀌는 것이다. 대법원장이 그런 첨예한 상황을 원하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8대 5로는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런 얘기에 대한 서초동 중소로펌 변호사의 반응이다. “그런 이유에서 유책에 손을 들었다면 존경스러운 일이다. 대법원장이 자신의 주장보다 대법원의 역할을 먼저 고민한다는 증거다.”
박한철 헌재소장(왼쪽 두 번째)은 결정에서 소수의견을 내는 사람이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오른쪽 두 번째)은 소수의견을 내지 않거나 못 내는 사람이다. 지난 4월 24일 제52회 법의날 기념식에서 두 사람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하지만 법조계 최고위 인사의 평가는 다르다. “대법원이 전합 합의를 하면서 임명일자 역순으로 의견을 말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대법원장이 가장 마지막에 의견을 말하니 이번처럼 상황을 통제하고 조율하게 되지 않느냐. 그냥 종이에 써서 투표하는 게 맞다.” 이게 무슨 소릴까. 대법원장은 4명 소부 판결에는 관여하지 않고 13명 전합에만 참여하는데, 절대로 소수의견을 내지 않는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재임 6년 동안 95건 전합에서 모두 다수의견을 냈다. 그는 2011년 퇴임 직전 기자에게 “명색이 대법원장이 그 정도는 돼야지”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대법원장이 소수의견에 서면 대법원을 주도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양승태 원장이 소수의견이 있지만 대법관 시절에 밝힌 입장을 뒤집지 못한 것뿐이다.”
만약 대법원이 전원합의에서 기명 쪽지 투표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결론이 뒤집혔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도 많다. 합의과정에서 대법관들의 성향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차피 대법원장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임명일자 역순으로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대법원장이 모든 사건에서 100% 다수의견에 서는 마술을 부리기는 어렵다. 토론과정에서 대법관들의 의사가 드러난다고 해도 매번 확실하지는 않아서다. 결국 대법원장은 법관으로서의 의사가 아닌 원장으로서의 의사를 표명해온 것이며, 정책적 표결이라고 부를 만하다.
양승태 대법원장(가운데)를 포함한 전원합의체가 지난 9월 15일 이혼 원인을 일으킨 사람도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이날 양 대법원장은 예상을 깨고 이혼소송을 낼 수 없다는 의견을 내면서 판례를 유지시켰다. / 김창길 기자
대법원장 발언순서가 어떤 영향 줄까
이런 비판에 대해 법원 관계자들은 반론한다. “대법원장이 마지막에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대법원장 이후에 말하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의견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현재 임명일자 역순으로 의견을 내는 것은 경력에 눌리지 말고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라는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짜 그럴까. 헌법재판소의 경우를 보면 대법원의 설명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헌법재판소도 최근에 임명된 재판관부터 의견을 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장이 언제나 다수에 서는 것이 아니다. 현재 박한철 소장을 비롯해 역대 소장이 소수의견에 들어간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당장 현재 논란 중인 국회의원 선거구에 대한 지난해 10월 헌법불합치 선고 때도 박한철 소장은 반대의견을 냈다.
외국과 비교해도 대법원의 분위기는 특이하다. 미국 연방대법원장도 소수의견을 낸다.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결 당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반대의견이었다. 일본 최고재판소 소장도 마찬가지로 일상적으로 반대의견을 낸다. 다케사키 히로노부(竹崎博允) 전 최고재 소장이 2008~2014년 재임기간 중 한국 대법원장처럼 반대의견 등 개별의견을 전혀 내지 않아 논란이 됐을 정도다. 이런 경우는 1947~1950년 재임한 초대 장관 미부치 다다히코(三淵忠彦) 이후 처음이었다. 더구나 한국의 대법원장은 소부 판결에는 관여하지 않고 전합에만 관여하지만, 일본 최고재 소장은 재판관 15명의 대법정뿐 아니라 5명인 소법정에도 참여한다.
차이는 말하는 순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에게 평생 신세를 진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제청을 해주기 때문이다. 반면 헌법재판관은 자리에 오르면서 헌재소장에게 빚을 지지 않는다. 재판관 가운데 소장의 눈치를 보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의 대법원장-대법관과 같은 관계는 외국에도 없다. 치프 저스티스(chief justice)가 저스티스(justice) 임명에 관여하는 일은 제대로 된 법치국가에는 없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은 1972년 유신헌법에서 시작된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아무튼 이 때문에 대법원장의 1표는 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미국과 일본의 사법부 수장들은 모두 모든 재판에 참여하며 소수의견도 자유롭게 낸다. 하지만 한국 대법원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수의견만 낸다. 존 로버츠 미국연방대법원장이 2005년 청문회 당시 청문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소장을 비롯한 9명 모두가 재판관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제일 위에 ‘대법원장 양승태’가 있고 나머지는 ‘대법관 이인복’ 등 대법관 12명이 나열돼 있다. 대외적으로는 물론 대내적으로도 지위가 다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보면 ‘재판관 박한철’을 비롯해 9명 모두가 재판관이다. 소장이 대외적으로 재판소를 대표하지만 적어도 재판에서는 동등한 재판관이다. 그래서 헌재에서는 사건마다 캐스팅 보트를 쥐는 재판관이 따로 나오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일이 2008년 간통조항에 대한 마지막 합헌 결정이다. 당시 위헌에 필요한 6명에서 1명이 모자란 5명으로 아슬아슬 합헌이었다. 간통 처벌 자체가 헌법위반이라는 재판관이 3명, 벌금형이 없어서 헌법위반이라는 재판관이 2명이었다. 그런데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4명 가운데 민형기 재판관만 의견을 따로 썼다. “벌금형이 없어 문제이고 따라서 헌법불합치”라는 김희옥 재판관과 내용이 유사했고, 결론만 틀었다. “벌금형이 없어서 문제인데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적었다. 마지막 순간에 결론만 합헌으로 바꿨을 가능성이 컸다.
당시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런 추측은 거의 맞아 보인다. 민 재판관은 막판까지 위헌 의견이었는데 선고 직전에 합헌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첨예한 사안에서 간통을 없애는 것도 아니고 벌금형만 추가하라는 결론을, 더구나 6명을 가까스로 채워 발표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차라리 논의를 더욱 숙성시켜 다음 기회에 확실하게 결론을 내는 게 낫다.”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누구라도 1표의 힘으로 상황을 주도하는 게 가능한 구조다.
헌재 소장의 리더십은 재판 내용에 대한 관여보다는 형식을 세련되게 하는 데서 발휘된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 결과는 불과 선고 30분 전에야 나온 것이다. 박한철 소장이 선고일보다 앞서 표결을 하면 억측이 나오거나 결론이 유출될 수 있다며 당일 오전에 표결하자고 했다. 이 때문에 전날 자정까지 조율에 조율을 거듭해 2개의 결정문을 만들어 놓고 선고 직전에 재판관들이 사인하는 방식을 택했다. 헌재 고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잘된 것이다. 소장이 그런 면에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헌재내부의 관계는 수평적이어서 소장과 재판관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퇴임 이후에도 만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들은 괴로울지 몰라도 시민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대법원이든 헌법재판소든 사법기관은 표결이 목적은 아니다. 다수결은 입법부의 시스템이고, 사법부는 토론장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사로만 공동체가 조직되면 소수는 배제되고 사회가 살벌해진다. 독일 헌법재판소 같은 곳에서는 4대 4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선고하는 것도 다수결이 아니라 토론이 핵심임을 보여준다.
대법관이나 재판관들이 판결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1표 차 접전에서 미묘한 표결 태도를 보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문제는 동등한 관계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쳤는지 여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법원장이 반드시 다수의견에 서는 관례는 납득하기 어렵다. 대법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봐도 이상하고, 대법관들이 가는 길을 따라간다고 봐도 어색하다. 언제까지 대법원장이 다수의견에만 서는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