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해는 조고를 만날 수 없었다. 황제가 아닌 왕이 될 수도, 왕이 아닌 제후가 될 수도, 제후가 아닌 평범한 백성이 될 수도 없었다. 이렇게 호해는 이사가 죽은 지 1년 만에 자살하게 되었다. 부소를 자살로 내몬 지 3년 만이었다.’
진시황의 막내아들 호해(胡亥)는 이사(李斯)·조고(趙高)와의 음모를 통해 제위에 올랐다.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는 2세 황제를 불안과 의심, 그리고 이에 따른 잔혹함으로 내몰았다. 그는 몽염과 몽의 형제를 죽게 한 것을 필두로 기존의 대신들을 모두 제거했다. 또한 본래 황제가 되었어야 할 부소를 죽게 했을 뿐만 아니라 손위 형제자매를 죄다 잔인하게 죽였다. 신하들과 공자·공주의 죄를 심리하고 처형하는 일은 조고의 몫이었다. 진시황의 수레와 옥새를 관리했던 조고는 호해를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조고는 호해의 마음속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호해의 불안과 호해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고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혔다. 어쩌면 조고는 호해의 불안과 욕망을 구실로 자신의 불안과 욕망을 충족시켰던 것이리라. 일찍이 조고에게 사형을 판결했던 몽의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되지 않았던가. 또한 조고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눈엣가시 같은 인물들을 법망에 걸려들게 하여 제거해나갔다. 다들 몸을 사렸고, 간언의 소리는 사라졌다.
잇따른 반란, 황제는 궁전 깊숙한 곳에
음침하고 살벌한 기운은 진나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법의 집행은 진시황 때보다 더 가혹해졌다. 신하들뿐만 아니라 백성들 모두 생존의 위험을 느꼈다. 아방궁 공사가 재개되고 치도와 직도를 정비하느라 세금이 가중됐으며 부역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2세 원년(기원전 209년), 마침내 진승(陳勝)이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진승은 북부 변방 수비를 위해 징발된 900명을 이끌고 어양으로 가던 길에 큰비를 만나 정해진 날짜 안에 도착할 수 없게 됐다. 기한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사형이었기에, 어차피 죽을 바에야 진나라에 반기를 드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진승 일행은 진시황의 큰아들 부소와 초나라 장수 항연의 이름을 내세워 봉기를 일으켰다. 진승에게 동조하는 반란이 옛 육국 지역 곳곳에서 잇따라 일어났다. 수많은 반란의 공동 목표는 ‘진나라 토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호해는 진나라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동쪽으로 갔던 사신이 돌아와 반란을 보고하자 호해는 노하여 그를 하옥시켰다. 그 다음 사자가 돌아와 그다지 염려할 게 없다고 보고하자 호해는 기뻐했다. 이렇게 진실이 가려진 사이에 옛 육국이 하나씩 부활했다. 진승이 파견한 주장(周章)의 10만 대군이 함곡관을 돌파하고 여산 동쪽의 희수(戱水)까지 이르러서야 호해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죄수들에게 사면령을 내려 병력으로 동원하는 비상조치까지 취했다. 그런데 이 비상시국에서 호해는 모든 국사를 조고에게 맡기고 만다. 조고는 황제가 조정에서 신하들과 국사를 논하다가는 단점을 노출하게 된다면서 호해에게 궁전 깊숙한 곳에서 지내라고 권했다. 호해는 조고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다른 신하들은 황제를 볼 기회조자 없었다.
반란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승상 이사가 나서서 간언했다. 도적이 많아지는 것은 병역과 요역과 세금이 과중하기 때문이니 아방궁 공사를 중단하고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호해는 도리어 이사를 질책하며 그를 심문하게 했다.
2세 황제 호해의 묘. 시안 남쪽의 진이세황제능원 경내
이사의 죽음과 조고의 지록위마
사실 이사에게 황제를 만나 간언할 것을 부추긴 사람은 조고였다. 조고는 이사에게 말하길, 함곡관 동쪽에서 도적 떼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황제가 아방궁이나 짓고 있으니 승상이 나서서 간언해야 한다고 했다. 이사가 자신도 그러고 싶지만 황제가 조정에 나오지 않아 간언할 수 없다고 하자 조고는 황제가 한가한 때를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조고는 일부러 호해가 연회를 즐기고 있을 때마다 이사를 오도록 했고, 이로 인해 호해는 이사에 대한 반감이 깊어졌다. 조고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는 이사가 왕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으며 이사의 아들이 반란군과 내통하고 있다고 호해에게 말했다.
불과 2년 전 함께 어마어마한 음모를 꾸몄던 이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생긴 것이다. 조고가 자신을 모해한 것을 알게 된 이사는 호해에게 상서를 올렸다. 신하가 군주와 알력이 있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는데, 조고는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기에 지금 그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호해는 조고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이사의 말을 털끝만큼도 수긍할 수 없었다. 호해에게 조고는 일편단심으로 자신에게 충성하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호해는 자신이 어려서 선친을 잃고 제대로 아는 게 없는 데다 이사가 고령이라 언제 세상을 뜰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고에게 국사를 맡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이로 보자면 이사는 호해에게 할아버지뻘이고 조고는 아버지뻘이었다. 사실 호해는 조고를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다. 그는 혹시라도 이사가 조고를 죽일까 봐, 이사가 조고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고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조고는 자신이 죽으면 이사야말로 군주를 시해하고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호해는 이사를 조고에게 넘겨 심문하게 했다.
조고의 손아귀에 넘어간 이상 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사는 모반죄로 추궁당했다. 이사는 황제가 자신의 결백함을 알고 사면해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가 옥중에서 올린 상서를 조고가 폐기시켰다. 조고는 가혹한 고문으로 이사에게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호해는 조고가 아니었다면 이사에게 당할 뻔했다며 기뻐했다. 결국 이사는 함양의 저잣거리에서 허리가 잘려 죽었고 삼족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사는 처형되기 직전에 감옥에서 나오며 둘째아들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와 함께 누런 개를 끌고서 고향 상채(上蔡)의 동문 밖으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구나!” 부소를 죽게 하고 호해를 옹립하는 음모에 가담했던 이사는 이렇게 호해와 조고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부소가 죽은 지 2년이 되던 때였다.
이사가 죽자 호해는 조고를 승상으로 삼았고 모든 일을 조고가 결정하게 했다. 조고는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조고는 신하들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서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호해는 웃으면서 옆에 있던 신하들에게 물었다. 어떤 이는 침묵을 지켰고 어떤 이는 말이라 했고 어떤 이는 사슴이라 했다.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은 결국 조고에 의해 모함을 당했다.
조고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신하들은 조고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말이라고 했다. 호해는 자신의 정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에 태복(太卜)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태복은 재계(齋戒)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호해는 재계를 하기 위해 상림원(上林苑)으로 갔다. 그런데 그는 재계에 열중하지 않고 사냥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상림원에 들어왔다가 호해가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된다. 조고는 호해에게 말하길, 천자가 죄 없는 사람을 죽였으니 귀신이 제사를 받지 않을 것이고 하늘이 재앙을 내릴 것이라며 황궁을 떠나 기도하며 액막이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호해는 망이궁(望夷宮)에서 지내게 되었다. 조고는 어떻게든 호해를 조정에서 떠나 있게 해야 했다. 조고는 동쪽의 반란군이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거듭 말해왔지만, 연·조·제·초·한·위 육국이 모두 부활했고 다들 서쪽 진나라를 향해 진격해오는 상황이었다. 이때 조고는 관중의 남대문인 무관(武關)을 함락한 유방과 은밀히 접촉하고 있었다. 조고는 2세 황제를 죽이고 진나라를 배반하는 대가로 진나라를 유방과 나눠서 차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호해도 진나라의 불길한 운명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호해는 백호가 자신의 참마를 물어뜯고 자신이 백호를 죽이는 꿈을 꾸었다. 점쟁이에게 해몽을 하게 했더니, 경수(涇水)의 수신이 재앙을 일으킨다는 점괘가 나왔다. 호해는 백마 네 필을 경수에 빠뜨려 수신에게 제사지내고 경수 근처의 망이궁에서 지냈다. 조고는 병을 핑계로 칩거했고, 호해는 사람을 보내 관중으로 진격하고 있는 반란군의 상황에 대해 조고를 문책했다.
조고는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함양현령인 사위 염락(閻樂)과 낭중령(郞中令)인 동생 조성(趙成)을 불러 호해를 폐위시키기로 모의했다. 염락과 조성은 군사를 이끌고서 망이궁을 단번에 점령했다. 염락은 호해를 찾아내 그의 죄상을 열거하며 천하가 모두 배반했으니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라고 말했다. 자살하라는 의미였다. 그토록 신임했던 조고가 배반했는데 호해는 이 마지막 순간에 그를 찾았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조고. 진이세황제능원 대전 내부의 소상
호해와 조고의 최후, 황제는 2세로 끝나
“승상을 만나볼 수 있겠소?”
“안 됩니다.”
“군(郡) 하나를 얻어서 왕이 되었으면 하오.”
“안 됩니다.”
“만호후(萬戶侯)가 되었으면 하오.”
“안 됩니다.”
“처자식과 함께 평범한 백성이 되어서 공자(公子)들처럼 살았으면 하오.”
“신은 승상의 명을 받아 천하를 위해 족하(足下)를 주살하려는 것입니다.”
호해는 조고를 만날 수 없었다. 황제가 아닌 왕이 될 수도, 왕이 아닌 제후가 될 수도, 제후가 아닌 평범한 백성이 될 수도 없었다. 이렇게 호해는 이사가 죽은 지 1년 만에 자살하게 되었다. 부소를 자살로 내몬 지 3년 만이었다.
이제 황위 찬탈의 음모에 가담했던 세 사람 가운데 조고만 남았다. 호해가 자살하자 조고는 자신이 제위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고가 옥새를 가지고 대전에 오르자 대전이 여러 번 무너질 듯했다고 한다. 조고는 하늘이 자신에게 황제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고 신하들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진나라 황족인 자영에게 옥새를 넘겨주게 된다. 조고는 대신들과 공자들을 불러 2세 황제를 주살한 사실을 알리며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는 본래 제후국이었는데 시황제께서 천하를 통치하셨기에 제(帝)라고 칭했소. 이제 육국이 각자 왕을 세웠고 진나라 땅이 갈수록 줄어드니, 헛되이 제라 칭해서는 안 될 것이오. 이전처럼 왕이라 칭하는 것이 마땅하오.”
황제는 2세로서 끝이 났다. 진왕 자영은 조고가 자기를 죽이고 진나라 종실을 멸망시킨 뒤 관중의 왕이 되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영은 두 아들과 함께 조고를 죽이기로 계획했다. 자영이 아프다고 하자 조고가 문병을 왔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조고의 삼족이 함양에서 본보기로 처형되었다. 진나라의 운명이 다한 상황에서 자영이 더 이상 손쓸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왕위에 오른 지 불과 46일 만에 유방에게 투항하고 만다.
일찍이 유조를 조작해 부소를 죽이고 그 자리를 호해가 차지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호해도 이사도 알고 있었다. 조고의 유혹에 호해는 주저하며, “천하가 복종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몸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고 나라도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고는 “과감하게 행하면 귀신도 피해가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끝내 호해를 설득했다. 이사는 자신을 음모에 끌어들이려는 조고에게 하늘의 뜻을 거스르면 나라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며 “나도 사람인데 어찌 그런 음모에 참여할 수 있겠소!”라고 거부했다. 그러자 조고는 자신의 계획을 따르면 부귀와 장수를 보장받게 되지만 이 기회를 놓친다면 자손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이라며 “처세에 능한 사람은 재앙도 복으로 바꿀 수 있는데 어떻게 처신하시겠습니까?”라며 이사를 회유하고 협박한 끝에 동의를 얻어냈다.
조고의 유혹은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세 사람의 음모가 성공한 지 3년이 지나는 동안, 이사가 죽고 호해가 죽고 결국 조고도 죽었다. 천하가 복종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마저 지키지 못했고 나라도 멸망했다. 악마의 속삭임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도처에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다. 그 속삭임에 쉽게 무너져버릴 나약한 우리 인간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기에.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