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의 내용을 채우는 데 27년/ 문장으로 만들어 쓰는 데 7일/ 제출하는 데만도 1시간이 걸렸는데/ 당신이 뭐라고/ 날 몇 분 만에 판단하나요?” 9월 중순 한 인터넷커뮤니티에 ‘좋아요 4만개 돌파한 자소서ㄷㄷ.jpg’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게시물이다. ‘자기소개서’ 용지에 검정사인펜으로 쓴 글이다.
실제 낸 자소서일까. 댓글을 보면 대부분 ‘반응’은 냉소적이다. 이런 식이다. “그래 판단 안 할게 탈락.”, “면접관: 네, 다음 허세ㅋ”
구글 이미지로 검색해보니 ‘패기의 자소서’ 등의 이름을 달고 지난 8월 중순부터 여러 커뮤니티를 휩쓸고 지나간 글이다. 이 이미지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캡처한 것이다. 작성자 이름은 지워져 있지만 페이스북 페이지 제목은 노출돼 있다. ‘읽어보시집’이라는 페이지다. 지난 8월 6일 올라온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좋아요’ 수는 6만4000건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본진’이라 “속 시원하다”는 반응도 많지만 역시 댓글 중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다음과 같다. “27년 동안 알아가면서 판단할 수 없잖아요. 다음 들어오세요.” 실제 이런 자소서를 받은 면접관이라면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패기의 자소서’ 등의 이름으로 화제를 모은 자기소개서. ‘SNS 시인’ 최대호씨가 쓴 시다. / ‘읽어보시집’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지 운영자는 최대호씨(28)다. 다른 게시글을 보면 저런 형태로 종이에 시를 쓴 게시글이 메인 콘텐츠다. 다시 말해 실제 낸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시다. 찾아 보니 ‘읽어보시집’이라는 페이지 명은 그가 올해 초 출판한 시집 제목이다. ‘읽어보시지+시집’의 언어유희다. 출판사에 문의해 보니 마침 두 번째 시집도 막 발간된 참이다. ‘이 시 봐라’라는 제목이다. 역시 중의적인 언어유희가 들어가 있다. 위 ‘자소서’ 시도 두 번째 시집에 들어가 있다.
“아… 새로 낸 시집에도 페이스북에 올린 것과 똑같이 자소서를 배경으로 해달라고 했는데, 디자인을 맡은 분이 곤란하다고 해서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최씨의 말이다. 중2병, 허세라는 평가가 많은데. “며칠 몇 개월에 걸쳐 평가를 할 수는 없겠죠. 자기소개서-면접이라는 프로세스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에요. 사실 좀 더 뜯어보면 누구나 다 괜찮은 사람인데, 그렇게 빠르게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느냐는 취준생(취업준비생)의 아쉬움을 토로한 것입니다.” 취준생의 입장에서 쓴 시인데, 사람들이 면접관의 입장에서 그 시를 보는 건 실제 취업이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각박해진 세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라고 그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 대목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저런 내용으로 자소서를 낸 적은 있는지. “자소서를 배경으로 한 것은 시의 맛을 더하는 형식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실제로 저렇게 제출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비 출판한 첫 시집까지 포함하면 이번에 낸 시집은 세 번째 시집이다. 꿋꿋하게 활동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