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외무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함. 기자회견 내용은 앞으로 동·서독이 더 자유롭게 왕래 가능한 관계를 도모한다는 내용인데, 장관이 전날 과음해서 감성적으로 오버하면서 발표함. 독일어가 서툰 이탈리아 통신 ‘신삥’ 기자가 혼자 착각하고 본국에 ‘지금부터 동서독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고 타전, 이탈리이발 ‘속보’를 인용한 서독TV 뉴스를 본 동베를린 주민이 장벽에 쏟아져나오면서 통제불능→통일.” ‘독일 통일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오른 글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그 역사적 사건이 몇 가지 착각과 우연이 겹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
해당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 다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큰 틀로 보아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디테일에서는 여러 ‘오류’를 안고 있다.
하나씩 짚자. 일단 “언제부터 그 조치가 실현되느냐”는 질문에 “내가 아는 한은… 지체없이, 지금 당장”이라는 유명한 ‘말실수’를 한 귄터 샤보브스키는 외무부 장관이 아니다. 동독 집권당이었던 통일사회당 정치국 선전상(propaganda minister)이었다. 한국 식으로 말하면 공보장관 겸 당 대변인 격이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위에 모인 동·서독 시민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날 과음했거나 감성적으로 오버했다’는 설명은 ‘오버’다. 기자들의 공세적인 질문에 ‘정말 가진 정보가 없어’ 당황했을 뿐이었다.
이탈리아 ‘신삥’ 기자가 독일어에 서툴렀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소리(VOA), 독일 빌트지 기자 등과 함께 공세적인 질문을 퍼부었던 이탈리아 통신사 ANSA의 ‘통신원’은 리카르도 에르만이다. 그는 1929년 폴란드 유태인 출신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 회견에 참석했을 때는 60살, 노련한 베테랑 기자였다. 그가 이날 저녁 7시31분 타전한 최초 기사에 언론계 용어로 ‘초를 쳐’ 과장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 그런데 이건 2009년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그날 결정적인 답을 이끌어낸 사람이 누구였는가’ 논란을 일으킨 빌트지의 브링크만도 만만치 않았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고, 최초 보도는 에르만이 맞다.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에 사는 에르만은 브링크만의 험담에 불만을 가졌는지 이탈리아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 바보(브링크만을 지칭)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독일인 유모를 뒀고, 괴테의 아름다운 언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저나 ‘세기의 말실수’로 뜻밖의 독일 통일을 불러온 샤보브스키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통일 후 그는 다시 언론인으로 돌아와 지방지를 8년간 만들다가 정치로 컴백했다. 뜻밖에 그의 선택은 기민당이었다. 동독 시절 월경자 사살 책임자로 그도 1997년 기소된다. 3년형을 받았지만 딱 1년만 살고 사면됐다. 2014년 7월 11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보도에 따르면 그는 현재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베를린의 요양원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