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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체제에서 자유를 갈구한 예술가?

입력 2015.06.30 10:34

우리의 클래식 문화에서 현대 러시아, 곧 구소련의 음악가들은 곧잘 “억압된 체제에서 자유를 갈구한 예술가”로 표현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은 예술가를 지나치게 신비화하고 그가 겪은 일들을 과대포장하는 낭만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지난 6월 23일 밤, KBS 1TV의 공연 프로그램 ‘더 콘서트’를 보았다. 그동안 가수 윤건씨가 진행을 했었는데 바이얼리니스트 신지아씨로 교체되었다. 신지아씨는 당연히 프로 진행자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게다가 또 한 번 당연하게도 마이크 잡고 진행하기보다는 좀 더 연주에 몰두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날은 6·25 특집으로 ‘전쟁과 평화’에 따라 몇 곡의 중요한 레퍼터리들이 들려왔다. 그 중 가이아 콰르텟이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 8번을 유심히 들었다. 연주는, 비록 2악장만 연주했지만, 정밀했다. 연주를 마치고 진행자와 얘기를 나누는 것도 들었다. 이 곡에 대하여 가이아 콰르텟의 바이얼리니스트 최혜성씨가 설명을 했다. 대강의 요지는 이렇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작곡했다. 드레스덴은 아름다운 도시인데 2차대전 때 파괴됐다. 쇼스타코비치는 체제에 순응한 게 아니라 저항한 음악가이기도 한데, 파괴된 드레스덴의 참상을 이 곡에 담았다. 전쟁에 대해, 그리고 파시즘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한….”

이상하다. 일단 드레스덴을 파괴한 것은 독일군이 아니었다. 2차대전의 막바지에 연합군, 특히 영국 공군이 무자비하게 공습을 한 것이다. 영국군이 파괴한 도시를 보고 전쟁에 분노할 수는 있어도, 파시즘에 저항하여 곡을 쓰기는 어려운 일이다.

1950년 동독 라이프치히를 방문한 쇼스타코비치 / 도이치 포토텍

1950년 동독 라이프치히를 방문한 쇼스타코비치 / 도이치 포토텍

파시즘에 저항한 쇼스타코비치?
이 드레스덴 폭격은 정확하게 군사적 목표물을 타격하기보다는 드넓게 도시 전체를 목표물로 삼아 포탄을 쏟아붓는 공략, 즉 카페트를 펼치듯이 폭격을 한다고 해서 ‘융단 폭격’(Carpet bombing)이라는 말까지 낳은 참상이다. 1945년 2월 13일 밤 10시14분, 영국의 랭카스터 폭격기 234대가 첫 폭격을 시작하고 3시간 후 500여대가 또 날아와서 고도를 파괴했다. 도시의 일정한 구역(Block)을 한번에 파괴(buster)시킨다고 해서 블록버스터(Block buster)라는 말도 이 공습 때문에 생겼는데, 요즘 이 단어는 헐리우드 대작 흥행 영화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온 도시가 파괴되고 무려 13만여명이 숨져간 참상에 대하여, 당시 드레스덴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던 23살의 미군 병사 커트 보네거트가 훗날에 소설 <제5 도살장>으로 기록해 영원히 분노하였다.

어쨌든 쇼스타코비치는 틀림없이 전쟁에 분노하고 파시즘에 저항했지만, 이 곡이 그 증거품은 아니다. 이 곡을 언제 작곡했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 1960년이다. 스탈린 시대가 아니다. 스탈린은 1953년 3월에 죽었다. 같은 날, 스탈린 체제에 신음했던 작곡가 프로코피에프도 세상을 떠났다. 스탈린 장례식장에 와서 연주를 하라는 전보를 받고 우크라이나에서 화물용 비행기를 급히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한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가 음악계의 큰 별 프로코피에프의 장례식에 가지 못하고 국장이 진행되는 곳에서 슬픔에 잠긴 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비감에 잠겨 칠 수밖에 없었다는 유명한 얘기도 리히터 자신의 자전적 기록에 남아 있다.

스탈린 사후 쇼스타코비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동안 작곡은 하였으되 공개할 수 없었던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후기 교향곡들과 현악사중주곡들이 장엄하게 펼쳐졌다. 그러는 중에 드레스덴을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여전히 파괴된 채 제대로 복구되지 못한 드레스덴의 상처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그 일대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에 대해 분노했다. 그래서 스탈린 사후의 몇몇 작품들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전쟁에 반대하고 파시즘에 저항’하는 곡들이 확연히 발견된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의 검은 계곡, 즉 ‘바비 야르’에서 벌어진 대규모 유대인 학살을 다룬 교향곡 13번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황 때문에 ‘더 콘서트’에서 연주된 현악사중주 8번도 같은 맥락의 작품이라고 종종 소개되는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대부분 ‘파시즘에 저항’한 곡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정작 쇼스타코비치는 이러한 설명에 반대한다. 솔로몬 볼코프가 쓴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증언>을 참조하면 이렇다.

1945년 가을, 시청 청사에서 내려다본 드레스덴의 모습 / 도이치 포토텍

1945년 가을, 시청 청사에서 내려다본 드레스덴의 모습 / 도이치 포토텍

1960년에 쇼스타코비치는 현악사중주 8번을 발표하는데 이를 흐루시초프 정권이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작품”으로 헌정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스탈린 사후 권력을 장악한 흐루시초프는 대대적인 스탈린 격하 운동을 전개하는 중이었다. 그 격하 운동 중에는 스탈린의 전반적인 억압정책뿐만 아니라 2차대전 때 벌어진 독일군의 유대인 학살에 스탈린 정권의 묵인 또는 협조가 있었다는 점까지 포함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흐루시초프 정권은 쇼스타코비치의 비통한 현악사중주를 ‘파시즘에 저항’하는, 다시 말해 그 파시즘에 묵인 또는 협조한 ‘스탈린에 저항’하는 작품으로 규정하고자 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강력한 권력의 ‘권고’에 익숙하게 따랐던 쇼스타코비치는 규정에 순응했다.

그러나 <증언>에서 그는 “이 작품은 ‘파시즘의 폭로’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귀머거리에 장님이 되어야만 한다. (중략) 나는 여기에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1934년에 초연된 오페라)과 교향곡 1번, 그리고 5번을 인용했다. 이 작품들이 대체 파시즘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곡은 자전적인 작품이다. 나는 그 안에서 누구나 아는 ‘괴로운 노예 노동으로부터 고통받다’라는 노래를 인용했다”고 증언한다.

자신의 생애를 반추한 자전적 작품
다시 말해 현악사중주 8번은 그 자신의 기복이 심했던 작곡의 이력과 꽤나 신산했던 생애를 한 번 더 뒤틀어서 반추하는 ‘자전적 작품’인 것이다. ‘스탈린, 공산주의, 억압 대 쇼스타코비치, 예술가, 자유’ 등의 말들을 적절히 조합하여 그의 생애와 작품을 “억압된 체제 안에서 자유를 갈구했던 예술가” 같은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익숙한 일이다. 우리의 클래식 문화에서 현대 러시아, 곧 구소련의 음악가들은 곧잘 그렇게 표현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은 예술가를 지나치게 신비화하고 그가 겪은 일들을 과대포장하는 낭만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스스로를 ‘유로지비’라고 표현했다. ‘성스러운 바보’라는 뜻의 러시아 말이다. 유로지비는 풀어헤친 머리에 누더기 옷을 입거나 심지어 쇠사슬 같은 것으로 몸을 속박하고서는 거친 행동이나 광언을 내뱉는데, 그 안에 어떤 진리와 예언이 담겨 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도 이런 인물이 황야를 떠도는 리어왕 곁에서 광언 속의 암시를 들려준다. 물론 러시아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요 작품들에 어김없이 나타난다. <죄와 벌>, <백치>, <악령> 등에는 알 수 없는 말과 예기치 못한 행동으로 19세기 중엽의 제정 러시아의 혼돈을 일거에 드러내는 인물들이 출몰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위엄 있는 완성자 조시마 장로가 젊은 날의 자신을 유로지비라고 회고한다. 아니, 도스토예프스키 그 자신이 유로지비였다.

쇼스타코비치가 스스로를 유로지비로 자처하고자 한 맥락이 여기에 있다. 그의 예술가적 전성기는 스탈린 체제의 성립과 몰락에 일치한다. 그 시대를 영광과 오욕으로 견뎌내고, 그 이후의 또 다른 정치적 맥락에서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가면서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시대와 그 자신의 작품에 배어 있는 광기의 힘들을 다시 살피고 정련하고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 결실이 현악사중주 8번이다. 반파시즘의 어떤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신의 일그러진 내면을 날카롭게 도려내서 드러내는 자학적인 작품으로, 새롭게 들을 만하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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