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소리는 재즈” 타는 내내 연주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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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소리는 재즈” 타는 내내 연주를 듣는다

입력 2015.06.15 17:22

이 ‘연주’에서 가장 숨 막히는 순간은 기차가 요동을 칠 때다. 역에서 정차하였다가 출발할 때, 여러 선로들 중에서 하나를 고를 때, 터널에서 빠져나와 곧장 철교를 지나고 다시 터널로 진입할 때 기차는 불협화음을 들려준다.

나는, 기차를 타면, 재즈를 듣는다.

평소 좋아하던 재즈음악들을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다가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멀리 갈 때, 그 중 하나를 선택하여 이어폰을 귀에 꽂고 열심히 듣는다는 것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그런 얘기가 아니다.

나는, 기차를 타면, 재즈를 듣는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기차 소리가 곧 재즈라는 얘기다. 오래전부터, 재즈라는 음악을 알기 전부터 나는 기차 소리를 들으면서 컸고, 기차 소리에 매료되어 지금도 휴대폰에 여러 종류의 기차 소리가 저장되어 있을 정도인데, 재즈라는 음악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이후로부터는 기차를 탈 때마다 그 둔중하면서 경쾌한 소리들을 재즈처럼, 아니 진짜 재즈 연주로 들어왔다는 얘기다.

2005년 영국 첼트넘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오넷 콜맨이 연주하고 있다. / flickr Andy Newcombe

2005년 영국 첼트넘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오넷 콜맨이 연주하고 있다. / flickr Andy Newcombe

하나의 선로, 재즈의 즉흥성과 닮아
가령 중앙선을 타고 원주 지나 단양 쪽으로 가보라. 이미 기차는 청량리역을 출발할 때부터 흡사 찰스 밍거스가 이끄는 아방가르드 빅밴드 스타일로 둔하면서도 거친 리듬을 타면서 특유의 마찰음을 빚어낸다. 여러 선로들이 뒤엉켜 있고 그 중 유일하게 하나만이 이 거대한 기차의 종착역으로 지향한다.

그 하나에 올라서기 위해 기차가 몸을 비틀면서 여러 선로들을 가르고 합치고 나누고 흩어지게 하면서, 결국 어느 종착역을 향하여 쾌속의 질주가 가능한 단 하나의 선로에 올라서는 순간은, 최소한의 약속만을 믿고 거침없이 연주를 감행해버리는 재즈의 즉흥성에 닮아 있다. 기차의 선로들이 그렇듯이, 재즈의 이 즉흥성이 무작정 연주부터 해놓고 보자는 식의 열병의 소산은 아니다. 기차가 수많은 선로 중 하나를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규칙 위에서 선택하는 것처럼 즉흥의 재즈 역시 고도로 숙련된 테크니션들이 일정한 밑그림 위에서 작곡과 동시에 연주를 감행할 따름이다.

이제 기차는 동쪽으로 쭉 뻗은 선로를 달린다. 팻 매스니 그룹의 지적이고 세련된 재즈 드라이브를 연상시킨다. 아닌 게 아니라 팻 매스니는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출신으로 이 대평원의 도시는 19세기부터 철도의 중심지였다. 팻 매스니는 ‘Last Train Home’ 같은 보석 같은 곡으로 자신과 자기 고향의 삶, 즉 선로 위의 삶을 추억한 바 있다. ‘Are You Going With Me’ 같은, 팻 매스니를 국제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곡 또한 어린 시절부터 기차를 보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선로의 소리를 들려준다.

이제 기차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고 나면 이 육중한 물체를 가로막을 힘은 없어 보인다. 물론 실제 속력으로는 쾌속의 KTX에 미치지 못하고 인접하여 달리는 고속도로 위의 차량들보다 느리다. 그러나 기차가 경기 동부의 철로를 달릴 때, 그러니까 왼쪽으로는 절벽이고 오른쪽으로는 한강이 펼쳐져 있는 풍경 속으로 달릴 때, 그 순간 온몸으로 쿵쾅대는 소리는 물리적 속도 측정과는 무관한 시속을 들려준다.

그뿐인가. 이제 비로소 기차는 경기도와 강원도의 산악을 관통하면서 줄지어 등장하는 터널을 지나가게 된다. 터널과 터널 사이를 직행하는 동안 기차는 이제 막 피치를 끌어올린 재즈맨들의 육박하는 힘들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양수리 철교를 지날 때, 기차 소리는 평지 위의 마찰음과는 전혀 다른, 흡사 무저갱으로 뚝 떨어지는 듯한 강렬한 펀치를 들려준다. ‘블랙 파워’ 시절의 아프리카 정체성을 찾아 헤맨 재즈 드러머 맥스 로치의 타격과도 같다. 아쉽게도 선로가 매듭 없이 이어져 있는 KTX는 이런 ‘연주’를 하지 못한다. 과거의 선로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끊겨 있어서 특유의 쿵쾅대는 소리를 때로는 정박으로, 때로는 엇박으로 들려주는 것이다.

2008년 이탈리아의 재즈 페스티벌에서 팻 메스니가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 위키백과

2008년 이탈리아의 재즈 페스티벌에서 팻 메스니가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 위키백과

선로에 매듭 없는 KTX와는 다른 연주
경기도를 벗어나 강원도로 접어들고 거기서 남쪽으로 선회하여 치악산을 관통할 때 기차 소리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의 주체할 수 없는 신음소리처럼 처절하다. 치악산의 금대리 부근을 지날 때, 기차는 세계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철로가 뱀이 똬리를 튼 듯한 터널을 길게 회전하게 되는데, 풀 파워로 출력을 높여서 이 거대한 똬리 터널을 통과하는 기차가 내는 작렬음은, 마일스 데이비스 휘하의 색소폰 주자 케니 가렛이 온몸이 파괴될 정도로 불어대는 소리에 비길 만하다.

이윽고 기차는 터널을 빠져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연주가 끝이 난 게 아니다. 강원도와 충북과 경북의 모서리들이 합쳐지는 소백산 북쪽과 남쪽을 관통하기 위하여 기차는 1940년 5월에 개통된 길이 4500m의 죽령터널 속으로 제 머리를 쑤셔박는다. 이제 연주는 진실로 막바지로 치닫는다. 거대한 몸체가 터널을 빠져나오면 풍기와 영주로 이어지는데, 그 후의 선로들은 평야지대로 모든 소리들이 잔잔하게 잦아든다.

소백산 아래 순흥이 고향이었던 까닭에 나는 이 거침없는 소리들을 어린 시절부터 늘 들어왔고, 사춘기 시절에 재즈를 들은 이후로 늘 기차 소리와 재즈 소리를 겹쳐서 들었으며, 지금도 기차 소리만 나면 잠시 동작을 멈추고 경건하게 산야를 우러러본다. 막 터널을 빠져나온 기차가 산의 중턱이나 드넓은 평야를 직행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재즈를 듣는다.

이 ‘연주’에서 가장 숨 막히는 순간은 기차가 요동을 칠 때다. 역에서 정차하였다가 출발할 때, 여러 선로들 중에서 하나를 고를 때, 터널에서 빠져나와 곧장 철교를 지나고 다시 터널로 진입할 때 기차는 불협화음을 들려준다.

나는 이런 상황을 짐작하고 일부러 객차와 객차 사이에 서 있을 때도 있다. 한 발은 이쪽 객차 출입구 쪽에, 다른 발은 반대편 객차 쪽에, 그렇게 서 있으면 뒤틀리는 객차들에 의하여 내 몸도 요동을 친다.

기차의 수많은 부속들이 뒤흔들리면서 모조리 뽑혀 나올 듯하다. 차창도 흔들리고 출입문도 흔들린다. 객차 하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욱 거칠다. 불협화음의 연속이지만 기묘한 협화음이다. 이곳 저곳에서 즉흥의 기계 마찰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나와 내 몸을 감싼다. 터널에라도 진입하게 되면 그 충격의 불협화음들은 더욱 광포한 힘이 되어 나의 청각이 아니라 촉각까지 강타한다.

발터 벤야민의 말을 잠깐 비틀건대 그야말로 ‘청각적 촉각성’, 즉 귀로 들려오는 소리들이 내 온몸을 강타하면서 가공할 만한 불협화음의 아비규환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나는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면서 그 소리들을 듣는다. 불규칙하지만 규칙적이다. 불분명한 소음 같지만 틀림없는 메시지가 있다. 자유! 기차는 제 몸을 뒤틀면서 그토록 강렬한 비명을 질러댄다.

바로 그런 재즈 음악가가 있었다. 오넷 콜맨!
1958년, 모던 재즈의 종착역에서 ‘Something Else!!!’로 데뷔하였고 이듬해인 1959년에 돈 체리(트럼펫), 찰리 헤이든(더블베이스), 빌리 히긴스(드럼) 등을 불러모아 자신의 콰르텟을 형성한 후 ‘The Shape Of Jazz To Come’이라는 프리 재즈의 시발역을 세웠던 충격과 모험의 재즈 탄환이었다. 정치적 자유, 실존적 자유, 재즈 규범의 자유를 구가하는 프리 재즈라는 기차가 그를 시발역으로 하여 출발하였다. ‘The Shape Of Jazz To Come’, ‘This Is Our Music’, ‘Tomorrow Is The Question!’, ‘Song X’ 등의 격렬한 기차역을 질주했던 오넷 콜맨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타계했다. 이제 비로소 ‘프리 재즈’라는 기차가 종착역에 도착했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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