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주의’는 크게 두 번의 변이를 거치면서 브라질 특유의 대중음악을 형성했다. 그 하나는 1950년대의 보사 노바(Bossa Nova)다. 그리고 1960년대 일련의 음악가들이 또 등장한다. 식인주의를 과감하게 실천한 ‘열대주의 문화 운동(Tropicalismo)’이 그것이다.
네이마르의 ‘사포’가 잠시 논란이 되었다. 은하계 극강의 축구팀 FC바르셀로나의 남미 3인방 MSN(아르헨티나의 메시, 우루과이의 수아레스, 브라질의 네이마르)을 이루고 있는 브라질 출신의 네이마르가 지난달 31일, 홈구장 캄프 누에서 열린 빌바오와의 스페인 국왕컵(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상대 수비수를 조롱하는 듯한 기술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동료 메시가 2골을 넣었고 그 자신도 한 골을 더하여 이미 3-1로 우승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네이마르는 경기 종료 직전, 일명 ‘사포’라 불리는 기술, 즉 레인보 플릭을 시도했다. 뒤꿈치로 볼을 차올려 수비수 머리 위로 넘기는 기술이다. 이에 빌바오 선수들은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 네이마르가 빌바오를 조롱했다고 여겨 거세게 불만을 표출했다. ‘농락’을 당한 수비수는 네이마르를 거칠게 밀었고 또 다른 선수는 네이마르의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다.
지우베르투 지우가 문화부 장관 임기를 마친 이후인 2011년, 브라질 바이아 주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 위키백과
유입되는 서구문화 얼마든지 소화
경기 후 네이마르는 “나는 항상 이런 드리블을 해왔고 내 플레이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FC바르셀로나의 루이스 엔리케 감독도 “내가 빌바오 선수였어도 그렇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에서는 일반적인 장면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브라질에서는 일반적인 장면”이라는 말이다. 왜 그런가.
19세기 중엽, 잉글랜드가 축구의 규칙과 제도를 확립하였고 그것이 19세기 말에 유럽 열강들에 의해 전 세계로 ‘보급’되었는데, 그러나 남미에서는 유럽의 축구, 즉 규칙과 협동과 힘의 축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게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감각이 있었다. 공만 받아들였을 뿐, 그것을 차고 뛰고 골을 터트리는 과정은 지극히 브라질적인 차원으로 변화시켰다.
조나단 윌슨은 <축구철학의 역사>에서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는 “영국처럼 체력 중심주의를 덕목으로 삼는 인식이라고는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었고 재간을 부리는 것을 업신여기지 않았다”고 썼다.
문화에서도 그러하였다. 1928년, 브라질의 문화운동가 오스바우지 지 안드라지(Oswald de Andrade)는 브라질 현대문화의 시금석이 되는 충격적인 글 ‘식인주의 선언문(Manifesto Antropofago)’을 발표한다. 당시 브라질은 서구에서 유입되는 강력한 문화들에 의하여 진통을 겪고 있었다. 우리의 구한말이 그랬던 것처럼, 당시 브라질 사람들은 서구의 문화를 어떻게,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때 안드라지는 ‘식인주의(Antropogfagia)’를 선언한다. 여기서 식인주의는 그 무슨 ‘식인(食人)’ 풍습을 뜻하는 게 아니라 서구로부터 유입되는 그 어떤 문화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먹어치우고 소화해내자’는 자신만만한 결단을 뜻한다. 거부하거나 외면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브라질 문화로 빚어내자는 선언이었다.
안드라지는 여러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전개된 브라질 특유의 근현대사를 오히려 신뢰했다. 유럽, 아프리카, 북미, 그리고 여기에 브라질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와 음악이 오랜 세월 동안 뒤섞이면서 이른바 문화 ‘혼종성(Hybrid)’이라는 강력한 저력을 갖게 되었으니 그 어떤 서구의 문화도 일단 브라질에 유입되는 순간, 브라질이라는 거대한 문화의 용광로에 들어가서 전혀 새로운 문화, 곧 ‘브라질의 현대문화’로 재창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안드라지는 ‘브라질 원주민과 같은 자유로운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라’는 관점을 설파했다.
이 ‘식인주의’는 크게 두 번의 변이를 거치면서 브라질 특유의 대중음악을 형성했다. 그 하나는 50년대의 보사 노바(Bossa Nova). 강렬한 리듬과 빠른 템포의 춤곡 삼바가 지배하던 시절에 일련의 중산층 엘리트 출신 음악가들이 전통적인 삼바에는 결여되었던 지극히 우아한 선율과 속삭이는 듯한 창법, 시의 경지에 이른 가사를 들고 나왔으니 이것이 곧 보사 노바다. 삼바에 비해 지적이고 세련된 음악이었다.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Antonio Carlos Jobim)과 주엉 지우베르투(Joao Gilberto)가 이 유려한 음악을 선도했다. 깊은 밤에 연인과 밀어를 나누는 듯한, 여름밤 해변에 일렁이는 바람과 같은 이들의 노래는 브라질은 물론 세계의 팝시장까지 휩쓸었다.
나는 그들의 미려한 명곡들, 이를테면 ‘a girl from ipanema’나 ‘desafinado’ 같은 곡들을 사랑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요즘 흔한 인터넷 용어대로, 이미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조빙의 명곡 ‘o grande amor’를 듣는다. 그러면 뭐라도 하고 있다가도,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몸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깊은 밤의 숲속이나 검푸른 해변을 걷고 있다.
보사 노바를 주도한 브라질의 음악가 조빙의 1960년대 모습. / galleryhip.com
저항의 퍼포먼스를 융합한 문화운동
그러나 60년대의 브라질은 보사 노바의 살랑거리는 밀어를 듣고 있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상황이었다. 미국의 통제, 지독한 가난, 부패한 군사독재가 브라질을 압도했다. 이런 때에 조빙이나 지우베르투의 속삭이는 듯한 밀어는 사치스러운 일탈처럼 느껴졌다. 이를 뚫고 일련의 음악가들이 또 등장한다. 안드라지의 식인주의를 과감하게 실천한 ‘열대주의 문화운동(Tropicalismo)’이 그것이다.
화려한 삼바 대신 지극한 절제의 미학을 추구했던 보사 노바,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다양한 악기와 연극무대 같은 퍼포먼스와 절규하는 듯한 노래들이 60년대의 브라질을 압도했다. 안드라지는 “외국 문화를 거부할 게 아니라 영악할 정도로 적응하고 변형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60년대의 열대주의자들이 실천했다.
언론을 탄압하고 예술을 통제하는 군사독재에 맞서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 지우베르투 지우(Gilberto Gil), 나라 레엉(Nara Leao) 등은 거의 모든 음악 경향과 무대예술과 저항의 퍼포먼스를 융합한 음악 문화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의 앨범
이런 문화사적 기록들을 두루 살필 때, 브라질 출신의 테크니션 네이마르가 이미 승패가 확연한 상황에서 기술을 부린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바로 그 순간에 그런 기술을 썼어야 했는가 하는 점은 별개로 남지만, 브라질 선수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자신의 몸과 공을 하나로 엮어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를 창조해 왔음을 네이마르의 동작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조별 리그 당시 브라질의 신예 스타 호나우지뉴는 볼보이들이 스로인하라고 던져주는 공을 손으로 받은 일이 거의 없다. 가슴으로, 무릎으로, 어깨로 퉁 튀긴 다음에 손으로 잡아 스로인을 했다. 수백년의 역사가 그들의 몸을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그게 브라질이다. 그게 브라질 문화의 위대한 힘, 식인주의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