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여러 지자체에서도 베네수엘라의 음악 프로젝트를 참조한 ‘한국형 엘 시스테마’가 많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우아하고 격조 있는 클래식을 가난하고 못 배운 아이들에게도 한 번 가르쳐보자’는 식의 저열한 인식으로 인해 대부분은 시혜적 차원으로 그쳤다.
연초에 어느 지자체의 문화사업을 살펴볼 일이 있었다. 세금으로 조성된 재원이 주민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하여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 만약 부족하다면 어느 분야를 어떻게 더 보완해야 할 것인가를 여럿이 함께 검토했다. 내가 판단해야 할 분야는 음악이었다. 클래식을 포함한 여러 음악 프로젝트의 현황을 살피면서 담당 공무원뿐만 아니라 해당 장르의 지휘자, 연주자, 기획자 등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빠듯한 지원금과 인력을 최대한 배려하고 격려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토의 중에 가장 빈번히 언급된 단어가 있었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였다. 세계적인 관심과 찬사를 받은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재단이다. 정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FESNOJIV). 가난한 아이들에게 악기를 나눠주고 클래식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인기까지 얻게 되어 여러 나라들에 이 프로젝트를 접목시키고자 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지자체와 뜻 있는 음악가들이 이 프로젝트를 현실화하려고 노력했다.
2011년 6월,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관현악단이 브라질 사우바도르에서 공연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 flickr agecombahia
20세기 예술교육의 혁명 ‘엘 시스테마’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는 않은데, 연초의 그 논의에서 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한국형 엘 시스테마는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었다. 지금도 그렇다. 우리의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의 겉모습만 복사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해보자.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는 그야말로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한, 20세기 교육과 예술의 혁명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경제학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1975년에 지하차고에서 시작한, 음악을 통한 사회개혁(Social Action for Music)의 일환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사회개혁(Social Action)이다. 엘 시스테마 프로젝트의 정신과 가치, 그것은 곧 사회개혁이다. 아브레우는 베네수엘라의 극빈층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구제하고 이들의 원활한 사회 진출을 도모하는 한편, 나아가 문화적 차별과 소외를 해결하고 빈부격차까지 최대한 좁혀볼 수 있는 방안으로 비경제적인 분야, 즉 음악을 활용하기로 했다. 여기에 베네수엘라 특유의 급진 정치 분위기까지 더해져서 전국 곳곳으로 이 사회개혁운동이 번져갔다.
아브레우는 극빈층 아이들이 각종 위험과 범죄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긴급히 구출하기 위해 빵을 나눠주는 대신 악기를 나눠줬다. 악기를 시장에 내다 팔지 않고 다시 가져오면 음악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전과 5범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음악을 배우러 그 악기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아브레우는 지역의 음악가들을 수소문하여 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한편 장차 정부의 기관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이 재단을 통하여 30만명 가까운 아이들이 음악을 배웠다. 그렇게 음악을 배우는 과정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는 힘을 길러 베네수엘라의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였으며, 그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실력이 있고 스스로 지속적인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의 일원이 되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같은 최고 수준의 지휘자들이 이들을 격려하며 이끌었고, 한국의 지휘자 곽승 또한 엘 시스테마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지휘법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렇게 배운 아이 중에 구스타보 두다멜이 있었는데, 지금은 LA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세계적 반열의 한 사람이다.
만약 아브레우가 그저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고급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해주자’는 식의 시혜적 차원으로 했더라면 몇 번 시늉을 내다가 그쳤을 것이다. 그가 아주 고약한 위선자였다면 ‘역시 클래식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맞지 않아’ 하고 짐짓 헛기침이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진솔한 사람이었고, 가난한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했고, 음악의 무한한 힘을 신뢰했다. 그는 사회개혁을 위하여 음악의 미덕을 훌륭히 활용하였다. 그런 정신과 가치가 엘 시스테마를 지탱했다. 이 아이들로 구성된 교향악단의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시몬 볼리바르, 즉 남미의 자유와 연대와 저항의 상징 인물을 교향악단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선심성 프로젝트로 접근, 손쉽게 중단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여러 지자체에서도 이 음악 프로젝트를 참조한 ‘한국형 엘 시스테마’가 많이 시도되었다. 어디 아브레우 같은 사람이 베네수엘라에만 있겠는가. 낮은 자리에서 가난한 아이들과 진심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는 뜻 있는 분들과 소신 있는 음악가들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시혜적 차원으로 그쳤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아브레우 정신과는 거리가 먼, 그런 사회개혁에 대해 오히려 반대입장을 가진 정치인들이 선심성으로 이런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졌다가 선거라든지 그밖의 현실적 이득에 그리 효과가 없다는 걸 금세 알고는 손쉽게 중단하기도 했다. 가난한 삶에 대하여 순정하지만 그러나 지극히 순진한 차원으로 접근했던 음악가들도 ‘진짜 가난’을 몇 번 만나고는 뒷걸음질치기도 했다.
한때 핀란드 교육을 배우자 하는 열기도 있었다. 핀란드 교육방식, 그 교실 풍경, 아이들이 서로 돕고 뛰노는 환경을 현지에서 ‘벤치마킹’하여 한국의 비인간적인 교실 풍토를 바꿔보자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핵심을 간파하는 노력 없이 표피적인 풍경만 복사하는 것으로는 ‘핀란드식 교육’이 접목될 리 없다. 그 ‘핵심’이라는 게 무엇인가. 노동을 신성시하고, 노동자를 존중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최고 수준에서 보장하는 핀란드의 오랜 사회적 가치에서 뭔가를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노동을 천시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묵살한다. 중·고교 교육과정에서는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텔레비전의 뉴스와 드라마에서는 노동자를 매우 거칠게 묘사한다. 이런 나라에서 ‘핀란드 교육’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엘 시스테마 또한 마찬가지다. 깊은 연민과 사랑으로 가난한 삶을 응시하고 그 혼잡한 거리의 아이들을 마음 깊이 존중하면서, 이 어두컴컴한 삶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그리하여 사회 전체를 개혁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진지한 고뇌 끝에 ‘아, 그렇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보자’ 하는 진실된 결론에 이르러야 겨우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지자체장이 선심성으로 몇 번 지원해보고, 일부 음악가들이 시혜적이거나 때로는 자기 만족을 위하여 몇 번 참가해보는 것으로는 ‘엘 시스테마’는커녕 오히려 회복하기 힘든 문화적 위선과 차별만 드리울 뿐이다. ‘우아하고 격조 있는 클래식을 가난하고 못 배운 아이들에게도 한 번 가르쳐보자’는 식의 저열한 인식이 서양음악 좀 공부하고 연주했다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한 ‘한국형 엘 시스테마’는 오만과 위선의 장이 될 뿐이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